[나도, 에세이스트] 7월 대상 - 뜨개하는 삶
40여 년의 내 인생을 나누는 커다란 사건은 내 손에 바늘을 쥔 것이다. 내 인생은 뜨개를 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글ㆍ사진 김혜진(나도, 에세이스트)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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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엄마는 저런 예쁜 집에서 살면 창문을 열고 매일 뜨개질 하겠네?"

전망이 좋은 집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함께 보던 8살 딸이 이야기했다. TV 속의 그 집은 산의 중턱에 위치한 개량된 한옥집으로 들창이 있어서 방 하나를 모두 개방할 수 있는 구조였다. 자연 속에 위치한 그 집을 보며 딸은 뜨개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나는 딸아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그런 집에서 살게 되면 함께 뜨개를 하자고 답해 주었다.

40여 년의 내 인생을 나누는 커다란 사건은 내 손에 바늘을 쥔 것이다. 내 인생은 뜨개를 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중세시대의 기사가 창과 방패를 들었듯이 나는 내 삶을 잘 살기 위해 실과 바늘을 들었다. 거창한 말인 것 같지만 뜨개를 시작한 30대 초반 이후 내 인생 속의 등장인물과 배경은 180도로 바뀌었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육아가 이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머무는 시간을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활동적인 사람이었던 나에게 육아는 단절과 한계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의 세계는 자연스럽게 좁아질 수밖에 없었고 물리적인 생활 반경이 줄어들었다고 생각되면서 나의 생각 반경도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나의 존재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의 가치를 다시 되새기고 평가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의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때 우연한 계기로 뜨개를 시작하게 되었다. 뜨개 블랭킷을 갖고 싶지만 그 가격이 비싸다고 느껴져서 내가 떠보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활동적인 성향상 나는 뜨개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블랭킷을 갖고 싶다는 욕구는 도전의식을 불태우게 했다. 바늘을 넣고 실을 감고 감긴 실을 빼고... 반복된 이런 단순한 동작에 나의 머릿속의 답답함, 불안감은 사라진다. 바늘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시간, 그것은 무의식으로 진입하는 것과 같았다. 시공을 초월한 극도의 안정감...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내 손에 완성된 작품이 올라와 있는 것이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 무언가가 내 손에서 완성되었다는 성취감에 취하고, 그 지루한 여정을 꿋꿋이 지나온 나의 대견함에 으쓱해지고, 이 행위에 진지한 나에 대한 자기애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나는 실과 바늘을 종류별, 색깔별, 기능별로 열심히 구입하고 나의 공간을 빼곡히 채워갔다. 그리고 뜨개를 하며 나의 시간을 채웠다. 뜨개를 한다는 것은 나를 완성해 나가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뜨개를 시작하고 나의 인간관계에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실과 바늘, 뜨개라는 취미를 갖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뜨개인들과 자연스럽고 따뜻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도구에 대한 정보나 뜨개 법에 대한 정보 교환은 물론이고 실과 바늘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각자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는 돈독한 사이가 되어 갔다. 그 관계는 마치 뜨개와 같아서 한코한코 실을 떠가듯 한 줄의 실이 엮이고 엮여 촘촘하게 완성되어 갔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 함께 만들고, 나누고, 대화한다는 것은 내 삶의 활력을 북돋아 주는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 삶 속의 뜨개의 의미는 뜨개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더 깊어져 감을 느꼈다. 

걷고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편안한 자리를 찾아 뜨개 하는 것에 고요하게 집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나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뜨개는 비뜨개인들이 생각하듯이 소극적인 사람이 비효율적인 취미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작은 손의 움직임만으로도 내게 필요한 소품과 옷을 직접 만들어내고, 누군가에서 나의 온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선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소극적일 수 없고 자신의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의 행위가 비효율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는 뜨개를 하며 나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삶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시간의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나의 딸이 아름다운 공간을 보고 그 안에서 행복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뜨개 하는 엄마'를 상상한 것은 지금 뜨개 하는 내 모습이 순수한 내 딸의 눈에도 행복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내 삶의 친구이자 동반자, 뜨개를 만난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이자 행운이다. 

김혜진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글이 되어 특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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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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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퐁

2021.07.31

예전에 학창시절에 한번 목도리를 뜨겠다고 한번 해본적 있는데 결과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가 그 다음에는 해보려고 시도조차 못하겠더라구요. 제 주변에 취미로 뜨개질을 하면서 이것저것 나눠주는 동료가 있는데 좋은 취미같더라구요. 진득하게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좋은 취미를 가진게 부럽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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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k10230

2021.07.31

저도 가끔 시간이 남으면 뜨개질을 하곤 하는데 확실히 선물해줄 사람을 위해 뜨개질을 하는 것이 더 손이 잘 움직이더라고요. 물론 장비가 좋으면 확실히 더 손이 잘 움직이겠지만 어찌됐든 그 소중한 마음을 다시한번 더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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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2021.07.30

뜨개질이 정신 안정에도 좋다고 하는데 저는 손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뜨개질 못하겠더라고요.
한창 뜨개질 붐이 불어서 친구들이 뜨개질 하는 것을 보고 호기롭게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로 뜨개질은 쳐다도 보지 않았어요.
요즘처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시기엔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뜨개질이 좋은 취미라는 생각이 드네요.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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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나도,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