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퍼』로 제14회 사계절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십 대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들로 독자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탁경은 작가가 청량한 ‘러닝 소설’로 돌아왔다. 『러닝 하이』는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하빈과 민희가 달리기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러닝 크루에서 만난 두 소녀는 함께 공원을 달리며 각자의 짐을 조금씩 털어 낸다. 자신을 오롯이 느끼는 순간을 만끽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두 소녀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교차 서술되기에 인물들의 심리를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의 레이스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싸이퍼』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에 이어 어느덧 세 번째 장편소설을 펴내셨어요. 혹시 집필할 때나 출간 이후 전작과는 남다른 느낌이 있었나요?
예전 소설들에 비해 이번 소설은 저를 호되게 고생시켰다고나 할까요. 보통 저는 초고를 무척 빨리 쓰는 편인데 이번 소설은 초고를 빨리 써내지 못했어요. 게다가 개작 과정에서도 애를 많이 먹었고요. 그래서 개작과 교정 작업을 하면서 조금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편집자님들 덕분에 불안함을 조금씩 떨쳐 낼 수 있었어요.
『러닝 하이』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리기를 소재로 삼은 이야기입니다. 달리기를 소재로 선정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몸에 관심이 많아요. 신기하게도 몸이 아프면 우울해지고 마음이 금세 허물어지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마음의 건강은 몸의 건강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몸의 건강을 지키려면 잘 챙겨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동이 참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몸을 움직이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움직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은 여성의 몸이죠. 잘못된 다이어트로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분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 비해 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학생들에 비해 여학생들은 활동량도 운동량도 적죠.
『동의보감』에서도 말하지만 하체의 힘이 중요하다고 해요. 건강한 뇌를 위해서도 허벅지 근육이 튼튼해야 하는데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해 보면 결국 걷기와 달리기 같아요. 저는 아직 달리기보다는 걷기파지만 언젠가는 달리기와 마라톤에 꼭 도전해 보고 싶어요. 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예요.
하빈과 민희의 시선이 번갈아 가며 서술되는 게 이번 소설의 큰 특징으로 보입니다. 교차 서술로 구성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두 주인공의 다른 매력을 잘 보여 주고 싶었어요. 뿐만 아니라 각자의 내면을 더 심도 깊게 보여 주고 싶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차 서술이 나왔어요. 쓰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은 덤이었고요.
입양, 존재감 등 두 주인공이 각자의 고민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두 인물을 표현하면서 특히 섬세하게 표현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두 인물 모두 각자 아픔이 있어요. 그런데 민희는 그걸 꽁꽁 숨기는데 익숙한 인물이고 하빈은 아픈 구석을 숨기려고 일부러 밝게 지내는 인물이죠. 민희처럼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높지 않으며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은 채 감정과 분노를 마음에 켜켜이 쌓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것 같아요. 저 또한 이런 면이 분명히 있고요. 그리고 하빈이처럼 대책 없이 밝고 명랑하게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말하지 못하는 상처로 끙끙 앓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빈이가 언니들에게 고민을 솔직히 이야기하듯이, 그리고 민희가 달리기를 통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듯이 변화의 모멘텀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불현듯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두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 중 여성의 비중이 높은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나 의미가 있을까요?
초고를 시작할 때부터 두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써 보자, 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개작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와 설이가 들어오면서 여성 인물의 비중이 확 높아졌어요. 하나와 설이를 주인공 하빈, 민희보다 좀 더 나이 있는 선배로 설정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애정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작가 지망생 시절 정말 외롭고 힘들었을 때 함께 스터디를 하는 언니들로부터 많은 힘을 받았었거든요. 그때의 기억, 그 사랑과 고마움을 한번쯤 다루고 싶었던 것 같아요.
『러닝 하이』를 대표하는 문장이나 장면은 어떤 것일까요? 혹은 작가님께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요. 하빈이가 설이 언니가 일하는 카페로 무작정 찾아가 민희와 다툰 일을 고백하는 장면이에요. 그때 설이가 자신이 장거리 통학러였다는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엄마인 전 여사 어록을 말해 주거든요. (이런 문장들이었죠. ‘엄마, 사는 건 언제쯤 쉬워져?’ 그랬더니 전 여사 왈, ‘죽을 때까지 안 쉬워져. 이번 파도가 지나서 휴, 안도하면 또 다음 파도가 몰려와. 계속 몰려와.’) 이 대사는 실제로 제가 엄마와 나눈 대화에서 가지고 왔거든요. 평소에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엄마가 해 준 이 말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았던 것 같아요. (제가 멋대로 이름 붙이기를 ‘파도 인생론’이라고 부른답니다.)
하빈과 민희처럼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십대들이 많을 것 많습니다. 혹시 작가님께서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독자 분들께 말씀 부탁드려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알아야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고 하잖아요. 완전 동감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은 쉽지 않죠. 청소년 시기에는 더욱 어렵고요. 그래서 저는 십 대는 물론이고 이십 대까지 내가 무엇을 원하고 또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고 방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삼십 대, 사십 대는 무척 다를 거예요.
저도 청소년 시절에는 제 자신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치열한 이십 대를 보내면서 차츰 저와 친해질 수 있었어요. 거창한 것들 말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어요. 일기를 쓰는 것도 좋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보는 것도 좋죠. 친한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 새로운 동아리나 동호회 활동을 해 보는 것도 멋지고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씩, 조금씩 알아 가겠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마음에게 안부를 자주 물어봐 주세요. ‘너 오늘 기분이 어때?’ ‘뭐가 힘들다고?’ 매일 하루에 한 번 거울을 보듯이 마음에게 말을 걸어 준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데 한 발 다가설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탁경은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싸이퍼』로 제14회 사계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 함께 지은 책으로 『열다섯, 그럴 나이』 『앙상블』 『소녀를 위한 페미니즘』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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