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의 선택 일기] 출판사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
‘편집자의 에세이 시리즈 런칭기’라는 아무도 해 본 적 없는 이 유튜브 콘텐츠 프로젝트의 의미는 아무래도 딱 하나인 것 같다.
글ㆍ사진 김화진(문학편집자)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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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4/9

날짜를 먼저 적어 본다. 오늘은 바로 약 6개월 간 출간 준비를 하던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의 첫 책들이 입고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에세이 시리즈를 만들며 그 과정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하는 것은(물론 유튜브 콘텐츠 안에서의 흐름이 있고, 공개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과정을 공개했지만) 퍽 부담이었다. 부담일 줄은 알았지만 큰 부담일 줄은 모르고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이 좋은 원고를 알리고 싶다는 (늘 똑같은) 단순한 마음이 전부였으므로. 그런데 출간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은 커졌다. 책의 입고일에 맞추어 유튜브팀에서는 라이브 방송을 준비했다. 나는…… 전에 없는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이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지? 어떻게 확신하고 그날 바로 라이브를 한다고 해 버렸지? 세상에 불운하고 불행한 일은 산더미처럼 많다. 상상력을 발휘하기만 한다면. 나는 모든 부정적인 영역에 내가 지닌 상상력을 모조리 발휘했고 내가 만든 상상이 내 가슴을, 목을 옥죄었다. 시작하는 마당에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불안은 이제 내 버릇이자 성격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 불안의 상상도를 멈추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날이 오는 것. 다행히, 마주한 책의 실물은 아름다웠고 라이브 방송은 (출연자들은) 떨렸으나 참여해 준 독자 분들이 따뜻하고 재치 넘치는 분들인 덕에 무사히 종료되었다.

나오지 않은 책을 유튜브로 홍보하는 일. 아무도 하지 않는 일에는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누군가가 못한 일을 해내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과정 중에는 알 수가 없다. 늘 지나고 나서 판단되기 마련이니까. 속단하고 짐작하지 않으려고 애써 봐도 자꾸만 움츠러드는 마음이 있었다. 지레 겁먹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하고 스스로에게 바라다가도 잘 되지 않는 순간들이 생겼다. 마음이 튼튼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마음이 약해질 때 그랬다. 나는 내가 일하는 출판사 바깥은 영 모르는데, 수많은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는 누가 우리를 보고 있는지 모른다면 대체로 웃으며 지내다가도 간헐적으로 움츠러드는 것도 당연하지 않느냐고 보이지 않는 곳에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시원하게 왜 그런 생각을 해, 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어깨를 툭툭 털어 준대도 어쩔 수 없이 두려웠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재밌겠다, 책에도 도움이 되겠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문학적인 것’의 재미를 알게 된다면, 그걸 알리는 것은 자신이 있다 하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분명히 보이는 얼굴들이 있었다. 마케팅팀의 동료들, 유튜브 채널 PD들, 책을 이루는 처음과 끝을 디자인한 담당 디자이너, 상상을 실물로 둔갑시켜 주는 제작부와 제작처, 동료 편집자들, 그리고 원고를 준 작가들. 원고를 탄생시킨 작가에게 느끼는 경외감은 늘 새롭고 짜릿하고, 무척이나 중독적이다. 이런 글을 쓰다니. 멋진 사람이구나. 그 글을 엮을 수 있어 너무 기쁘다. 좋은 작가의 좋은 글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느낀다. 그런 감정은 무뎌지지도 않는다. 새롭게 계속 좋다.

미처 몰랐던 놀라움도 있다. 이번에 에세이 시리즈를 런칭하며 제작 과정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디자인과 그 구현의 영역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나는 표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표지는 표지다, 정도로. 좋으면 좋고, 좋지만, 그래도 표지일 뿐이다 하고. 언제나 원고가, 글이 더 중요했고 중요한 구매 요인이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차원의 문제에서 떠나 표지 작업의 신비함, 글이 아닌 다른 영역의 창작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다른 책의 작업 때도 언제나 텍스트와 절묘하게, 혹은 찰떡같이 어울리는 표지를 완성해 주는 담당 디자이너의 실력과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해 왔으나…… 이번이 왜인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던 시리즈의 성격과 색깔을 디자이너가 잡아줬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작업을 목격한 순간. 담당 디자이너는 어리둥절 헐레벌떡, 난생 처음 에세이를 편집하고 시리즈를 런칭하는 두 편집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가능성들과 선택 사항들을 넌지시 일러주고, 마음이 바쁘고 침착하지 못한 편집자들에게 이완이 되는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함께 표지에 찍힐 박 작업을 확인하기 위해 감리를 갔던 날, 책의 후가공 뒤에는 장인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접 보면 더 놀라운 일들. 그것은 상상보다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후가공 업체의 기술자들은 오차 없는 손놀림으로 박이 들어갈 부분을 고정하고 미세하게 다른 압력과 시간으로 기계를 눌러 여러 번에 걸쳐 박을 찍어 냈다. 좋은 책을 위해 고민하는 일은 출판사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밖에도 든든한 동업자들이 있다는 것을 마주하자 이상하게 힘이 났다. 역시 좋네, 계속 좋네, 하고. 서로 의견이 부딪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하지만 책을 위해 이렇게 열심인 공동체가. 수개월 째 ‘매일과 영원’ 시리즈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고 있으면서 그날 처음으로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주 순도 PD라면 이 멋짐과 멋짐 사이 숨어 있는 (줄도 몰랐던) 웃음들도 귀신같이 포착하고 건져낼 텐데. 능력자와 능력자의 만남이 보고 싶었는데.    




‘편집자의 에세이 시리즈 런칭기’라는 아무도 해 본 적 없는 이 유튜브 콘텐츠 프로젝트의 의미는 아무래도 딱 하나인 것 같다. 자기만의 자부를 지니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끊임없는 협업을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가장 크고 깊이 느꼈다. 모든 사람들의 든든한 손을 거친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의 첫 번째 주인공들, 『일기시대』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가 또 누군가의 손 안에 쥐여질지, 그런 것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불안하게 말고 고요하게. 한 장 한 장 차분하게 페이지를 넘겨 줄 그 손들을 믿는다. 출판사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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