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귀갓길은 유독 설렜다. 청소 도우미 앱을 이용했던 날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널브러진 집의 모양새를 보며 귀가 후 청소하고 있을 나를 향해 한숨 짓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종일 행복했다. 신발장부터 정돈된 깔끔한 집에 들어서니 상쾌함이 감돌았다. 집안일도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는 거구나, 역시 돈을 들이는 값을 제대로 하는구나. 장보기가 새벽 배송으로 대체되면서 장보는 시간을 아끼게 된 것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는 비용을 지불하는 건 결국 시간을 사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꼭 집 주소를 입력해야하는 일이 생긴다. 각종 배달, 새벽 배송, 빨래 수거 요청 등 내가 사용하고 있는 비대면 거래는 이미 내 생활에 깊게 파고들었다.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대신해주는 서비스들이 많아진 만큼 내 시간은 좀 더 많아졌고, 이 아껴진 시간들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배송 올 장보기 리스트를 결제 한 뒤 날씨가 꽤 좋은 요즘에는 팟캐스트 하나를 다 들을 때까지 한강을 따라 걷거나 뛴다. 자주 보는 한강이지만 그 때마다 사진을 찍게 되는 걸 보면 나는 꽤나 이 시간들을 사랑하고 있다. 기분에 따라 듣는 팟캐스트도 여러가지다. 라디오를 들을 때도 있고, 시사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책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본업 소식을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한강에서 얻어지는 나의 여유는 내가 지불한 서비스의 값 이상으로 나를 채워주고 있다.
되도록 손으로 해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배달 서비스가 무척 고플 때가 있다. 요즘에는 기다려야 먹을 수 있던 맛집도 배달이 되는 곳이 많아졌다. 되도록 평소에 꼭 먹고 싶었던 음식점을 선택해 배달이 오는 동안 음식과 함께 할 영화나 드라마를 고르면서 설렘을 극대화한다. 언젠가 보겠다고 찜 해 두었던 영화를 틀어놓고 있다가 음식이 도착하는 순간의 기쁨은 모두가 아는 행복일 테다.
겨울 옷들을 진짜로 집어넣어야 할 날씨가 다가와서 며칠 전에는 세탁물 서비스도 이용했다. 세탁소 시간과 나의 귀가 시간을 맞추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게 큰 장점이다. 이전에는 세탁소에 다시 들르는 걸 깜빡해서 한달 가까이 찾아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퇴근 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가도 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근처 백화점에서 구경을 하다가 귀가해도 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가도 세탁물이 집에 와 있다. 문 앞의 편리한 서비스는 그만큼 나를 시간의 제약에서 많이 벗어나게 만들어준다.
적절하게 잘 이용하면 원하는 대로 내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서비스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가끔 이런 서비스들에 너무 길들여진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지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적절히 잘 이용하면 생활에서 자리하고 있던 곳곳의 굴레들이 벗겨지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많은 시간을 채울 수 있다. 건강하게 잘 사는 일이 최고의 고민이었던 내게는 ‘주소를 입력해주세요’가 익숙한 일이 된 게 반갑다. 나를 윤택하게 만들어 준 문 앞의 서비스들에 감사하며, ‘주소를 입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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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도서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