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저는 제가 쓴 게 좋아요 (G. 은모든 작가)
자기혐오가 별로 없는 성향인 것 같아요. 단점도 있고 한계도 있고 그런 얘기도 많이 듣지만, 저는 제가 쓴 게 좋아서. (웃음) 그리고 하나같이 ‘아이구, 내 새끼들’ 이런 마음이 있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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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의 부모님은 빠듯한 경제 사정과 상반된 성격을 골자로 사사건건 부딪치는 관계였다. 두 사람이 서로를 감싸고 다독이는 모습을 본 기억은 드물었다. 자라는 동안 제대로 보고 배운 적 없으니 이제라도 누군가 정확하게 가르쳐준다면 좋을 것 같았다. 혹은 그대로 따라 할 만한 모범적인 예시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흔히 접하는 드라마와 영화와 리얼리티 쇼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커플로 맺어지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혹은 눈앞에 재생되고 있는 드라마처럼 커플 사이의 위기와 갈등에 주목했다. 수미는 시작의 설렘이나 관계의 파국보다는 그 사이에 위치한 미묘한 순간을 다룬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었다. 

은모든 소설가의 『오프닝 건너뛰기』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은모든 작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주류(酒類) 문학’을 이끄는 소설가입니다. 이때의 ‘주’는 ‘술 주酒’ 자예요. 이 분의 소설을 읽다 보면, 사람과 이야기에 취하게 되죠. 은모든 소설가님입니다. 

김하나 : ‘은모든’이라는 이름은 필명이신가요.

은모든 : 네, 필명입니다.

김하나 : 이 성함을 들을 때마다 어감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이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혹시 어떤 뜻 한 바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은모든 : 제가 첫 책을 내기까지 기나긴 역사가 있었는데요. (웃음)

김하나 : 그 역사부터 말씀해 주세요.

은모든 : 전공도 문학이었고, 한 중학교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소설 쓰는 거 밖에 없었어가지고...

김하나 : 중학교 때부터요?

은모든 : 네, 10대 때부터 열심히 백일장도 하시고 그런 분들이 있는데 사실 저는 그렇진 않고 엄청 막연한데 소설 쓰는 것밖에 하고 싶은 일이 없기도 하고 ‘어차피 할 거야’ 같은 느낌으로...

김하나 : 그런데 말만 해두는 타입. (웃음)

은모든 : (웃음) 주변에 열심히 말하지는 않는데 꿈은 다른 걸로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지나서는. 그런데 제가 다른 분들 신촌문예 인터뷰 같은 거 보면서 조금 늦게까지 쓰셨다는 걸 볼 때 항상 나이를 보면 ‘훗, 내가 더 늦게 했지’ 이런... (웃음)

김하나 : (웃음) 내가 이겼다, 이번에도 이겼군.

은모든 : (웃음) 그렇게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해보는데, 본선에도 오르고 하면 이름을 바꿔서들 많이 내보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바꾸다가, 마치 세공하는 것처럼 하다가 최종적으로 낙점됐죠. 뭔가 어감도 기억에 남기 좋은 것 같고 써서 보면 좌우 대칭이 굉장히 잘 되는 글씨여서 그래서 낙점이 됐고요.  사실 그것 자체로의 의미가 탁 떨어지게 있지는 않아요.

김하나 : 말씀처럼 ‘은모든’이라고 써놨을 때 글씨도 예쁘고 어감도 예쁘고 잘 잊히지 않는 이름이어서 발음을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은모든 : 감사합니다. 

김하나 : 대학교 가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면서 습작을 시작하신 건가요.

은모든 : 네. 저희는 수업 자체가 거의 70~75% 정도는 쓰고 합평이었거든요. 그래서 20대 초반부터 제대로 쓰기 시작했죠. 소설의 꼴을 갖춘 형태로.

김하나 : 그러면 전공을 선택하실 때도 ‘나의 꿈은 어차피 소설가니까 문예창작과를 가야겠어’라고 생각해서 가신 거고, 그때부터 차곡차곡 소설가가 되고 싶은 길을 계속해서 따라서 오신 거로군요.

은모든 : 네.

김하나 : 그 기간이 한 15년 됐다고 들었습니다.

은모든 : 중간에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거나 반년 정도 그런 회사 생활을 한다거나 이런 시간들을 빼도 15년 정도 되더라고요.

김하나 : 소설 쓰기를 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노동을 하면서. 그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계실 때 저희가 만났었잖아요.

은모든 : 네. (웃음)

김하나 : 그리고 망원동에 사시고 그러니까, 망원동은 오가다가 사람을 마주치기 참 좋은 동네잖아요. 다들 걸어서 다니고 조그마한 가게들이 많아서 들어갔다 마주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최근 코로나 이후로는 마주친 적이 없어요. 그죠?

은모든 : 그러니까 말이에요.

김하나 : 첫 번째 소설 『애주가의 결심』이 망원동에 있는 온갖 술집들이 망라되고 있습니다.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되게 반갑기도 했는데요. 등단을 하시기도 전에 저희가 알고 있을 때도 계속해서 습작을 하고 계셨었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소설가로 알아줄 계기가 생길까?“ 하는 불안감 같은 것도 들지 않으셨어요?

은모든 : 물론 불안감은 굉장히 있는데. 그게 좀 특이한 것 같아요. 완전히 투 트랙으로 ‘나는 분명히 소설 쓸 건데?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쓸 건데?’라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데 ‘근데 그게 될까?’라고 하는 것도 굉장히 또렷한 불안감으로 투 트랙으로 계속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던 거예요. 첫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래서 그 20~30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어떤 현실적인 방법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는 했지만 뭔가 성공적으로 구체화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간 구독 서비스라든가 아니면 독립 출판을 한다든가 이런 최근에 나온 흐름도 그분들은 그 전부터 준비를 하셨을 텐데, 항상 그런 모습을 보면 ‘난 참 요령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웃음) 지금은 웃지만 당시에는 매번 깜짝 놀랐죠. ‘아니 저런 방법이?’ 하면서.

김하나 : 짧게짧게 다종다양한 알바를 하기도 하셨는데, 그럴 때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알바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추구하고 있는 흔들리지 않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회의가 밀려오기도 하고 그만둘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는 없으셨어요?

은모든 : ‘그만둘까?’는 한 번도 없었어요.

김하나 : 저는 그런 부분이 정말 놀라워요. 대단한 것 같아요.

은모든 : 뭐라고 할까... 자기혐오가 별로 없는 성향인 것 같아요. 누가 봐도 명작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도 막 부끄럽고 도망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들이 굉장히 많이 계시잖아요. 그런 생생한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 (웃음)... 단점도 있고 한계도 있고 그런 얘기도 많이 듣지만, 저는 제가 쓴 게 좋아서. (웃음) 그리고 하나같이 ‘아이구, 내 새끼들’ 이런 마음이 있어요.

김하나 : 『꿈은, 미니멀리즘』 뒤쪽에 있는 문답을 보면, 스마트폰을 이렇게 넘기다가 ‘어머, 이건 사야 해’ 이런 느낌처럼 다니다가 갑자기 ‘어머, 이건 써야 해’라고 속으로 외치는 때가 있다고 하셨는데. 요즘도 일상생활에서 뭔가를 접하거나 했을 때 그런 기쁨 같은 게 계속해서 찾아오는 거군요.

은모든 : 네. 어떤 건 이야기로 오기도 하고 ‘이건 제목감인데?’ 해서 메모하기도 하고.

김하나 : 「앙코르」는 제목이 먼저 왔나요?

은모든 : 아니요. 우리가 어려웠을 때부터 굉장히 많은 작품에서 위기에 빠진 여성을 남성이 구해주면서 어떤 이야기들이 시작되는 것들을 많이 봤잖아요. 그래서 ‘나는 나중에 여자가 위기에 빠진 여자한테 손을 내밀어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써야지’라고 막연하게, 메모를 안 해도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저희 동생이 굉장히 효녀여서 ‘아빠한테 앙코르와트를 보여주고 싶은데?’해서 제가 ‘아... 이렇게까지 효녀란 말인가?’하면서... (일동 웃음)

김하나 : (웃음) 놀랍다, 이렇게까지 효녀란 말인가! 

은모든 : 네, 그러면서 같이 따라갔는데 ‘여기를 배경으로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를 쓰면 어떨까?’라고 해서 화학적으로 딱 붙어서 ‘아, 그러면 되겠다. 동생의 효심 덕분에 또 이렇게 하나 태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웃음)

김하나 : 저는 소설집 『오프닝 건너뛰기』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으로 떠올랐던 말이, 출처가 원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너무 적고 둘은 너무 많다’라고 하는 말이 떠올랐는데. 세 편의 단편 모두 혼자서는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둘이 되는 문제 또는 둘이 되라고 압박하는 사회에 대면하는 문제 등등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고 또 질문을 하는 등장인물들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 둘이 되는 문제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가장 크고 존재적인 질문이기도 하잖아요. 그것에 대해서 누구나 느낄 법한 어떤 부분을 너무 잘 써주신 것 같아요. 공감이 너무 됐었고.

은모든 : 감사합니다.

김하나 : 작가님은 혹시 둘이 되는 문제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야겠다거나 어떻게는 하지 말아야겠다거나, 그런 식으로 다짐하시는 게 있나요?

은모든 : 「오프닝 건너뛰기」에 보면 주요 인물인 수미가 남편 경호를 생각하면서 이 사람의 따스함도 느끼지만 그 단순함 때문에 답답해하기도 하는데 그게, 이를테면 세트로만 판매하는 상품처럼, 그중에 원하는 것만 취하고 아닌 것을 버리거나 도려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상태인데요. 알아도 괴롭기는 하니까 그걸 조율해보려고 분투하는 상태고요. 바로 그 지점을 생각을 많이 해서 썼던 것 같아요. 이게 일단은 세트고, 이 세트 중에서 조금 더 괜찮은 부분이 있고 누가 봐도 취약한 부분이 있으면 두 사람이 각자의 취약한 부분을 서로 달래고 어루만져가면서 살 수는 있지만, 나는 그대로 이 세트를 가지고 가는데 너는 취약한 부분을 도려내고 오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을 인지는 해야 된다, 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감내하는 관계도 세상에는 있지만 그러면 장기적으로 좋지 않거나 끝이 좋지 않다, 라는 점을 커플만이 아니라 아주 밀접한 인간관계라면 오래 볼 사이라면 인지를 하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요. 인지할 걸 인지하고 서로 터놓고 계속 대화하고 서로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이것이 없으면 안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주변하고 많이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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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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