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시와 님의 노래 ‘새 이름을 갖고 싶어’를 좋아한다. “갖고 싶어 새로운 이름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 /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는 듯 새로운 인생” 누구나 한 번쯤, 아니 거의 매일 품는 생각이 아닐까? 지금 가진 것들을 다 버리고 다른 내가 되어보는 것.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내가 되는 꿈은 어디에나 있을지도 몰라.
그 꿈은 어디에서 온 걸까? 가진 것이 많음에도 그것이 지겹고 권태로워서 도망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의 결핍과 한계를 마주할 때, 새로운 나를 꿈꿨던 것 같다. 물론 제약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타고난 제약, 내가 경험하는 억압이 너무 커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걸. 스스로 정하지 않은 가정환경, 경제 사정, 성별, 취향 때문에, 우리는 사회에서 우리 몫의 억압을 지고 살아간다. 그런 제약 없이 가볍게 살아가고 싶을수록, 새로운 나를 발명하고 싶다는 마음은 커져간다.
그런데 최근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으며, 그 꿈에 한 글자를 덧붙이게 됐다. 나를 처음부터 발명하는 게 아니라 ‘재’발명하기.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어떤 면은 공기 같은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다. 그런 조건을 돌아보지 않고 완전한 벗어남이 가능할까. 저자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신의 조건을 성찰했는지를 보면서, 어려운 과정을 생략하고 깃털처럼 가볍게 새로운 나로 태어난다는 꿈이 허황되다는 걸 깨달았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한 사람이 자신을 ‘재발명’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기록이다. 한 편의 자전적 소설 같기도 한 이 책은 저자 디디에 에리봉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시점에서 출발한다. 아버지의 장례식 직후 그는 평생 노동계급으로 살아갔던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자신은 왜 가족의 계급에 대해, 자신의 고향 랭스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나.
자신이 떠나온 고향 ‘랭스’를 되돌아보면서, 그는 자신이 회피하던 삶의 진실들과 마주한다. 왜 자신은 지식인이 되고자 애썼는지, 가족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했는지, 왜 친구들이 고향이나 출신을 물었을 때 수치심을 느꼈는지. 그 과정을 거쳐 저자가 깨닫는 건, 모든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내가 될 수는 없다는 결론이다. 결국 내가 살아온 사회적 조건들을 고통스럽게 대면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조건에서 스스로를 ‘재’발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 이름을 갖고 싶다’는 우리의 소망은 어디로 갈까? 디디에 에리봉이 “무한정 재착수해야 하는 과업”(257쪽)이라고 덧붙였을 때, 나는 그게 절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한 권의 책을 쓰며, 디디에 에리봉은 수많은 책들을 만나고 인용한다. 특히,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읽으며, 그는 그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발견하고, 거기에 힘을 얻어 그만의 이야기를 써 나간다. 아마 우리가 인큐베이터 속에서 새로 태어나지 않는 한, 이 노래는 이어질 것이다. 수없이 고향으로 되돌아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
*황정은, 『연년세세』, 창비, 2020 저자 사인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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