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정경’에서 ‘정경(情景)’이 무엇인지 사전에서 찾아보니 1. 마음에 끌리는 경치, 2. 사람이 처해있는 형편(출처: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이라 합니다. 작품의 원어 제목은 «Kinderszenen»으로 직역하면 ‘어린이의 장면’입니다. ‘장면’에서 오는 일회적이고 객관적인, 현재와 분리된 느낌보다 마음과 연결된 고즈넉한 단어인 ‘정경’이 감정을 통해 어린 시절의 추억을 환기하는 슈만의 음악을 한층 더 깊이 잘 표현해 줍니다.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슈만은 «어린이 정경»을 어린이를 위해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은 자신의 딸을 위해 작곡한 «어린이를 위한 앨범 Album für die Jugend, Op.68 (1848)»이 따로 있었습니다. 어린이가 음악을 배울 수 있도록 각종 형식을 축약해 쉽고, 세심하게 배치한 피아노 교재입니다.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기는 하지만 «어린이 정경»과는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후자는 어린이 시절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어른’을 위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총 열세 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에 슈만이 직접 다음과 같은 소제목을 붙였습니다.
1. 낯선 나라와 낯선 사람들 Von fremden Ländern und Menschen
6. 중요한 이벤트Wichtige Begebenheit
9. 장난감 말을 탄 기사 Ritter vom Steckenpferd
12. 잠 드는 아이 Kind im Einschlummern
13. 시인이 말한다 Der Dichter spricht
첫 곡의 제목부터 발목을 잡습니다. ‘낯선 나라와 낯선 사람들’은 언뜻 보아서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겹쳐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슈만에게 ‘낯섦’은 특별한 의미였습니다. 고단한 현재를 견디기 위해 멀리 있는 무언가를 동경하고, 애타게 그리워하는 우리의 마음을 슈만은 잘 알고 있었죠. 그래서 항상 너무나 당연한 것에서 틈을 벌리고, 새로운 감각을 찾아 낯설게 하면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어른이 되어버린 이에게 혹은 슈만 자신에게 낯설어진 어린 시절의 장면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일단 현재에서 발을 떼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제목과 달리 첫 곡은 듣기에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마치 자장가처럼 들리는 편안한 음악에 조금씩 어긋나는 리듬을 겹쳐서 상당히 익숙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전에는 잘 알았지만, 이제는 멀어진 무언가를 아련하게 불러일으킵니다. 동심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머뭇거리는 어른의 손을 잡고 어린이의 세계로 인도하듯, 슈만은 낯선 세계(1번)를 통해 열세 개 정경의 문을 부드럽게 엽니다.
이어지는 작품은 우리의 기억과 감정을 동시에 환기합니다. 할머니의 무릎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들었던 흥미로운 이야기(2번), 끝없이 뛰어도 피곤하지 않았던 술래잡기(3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엄마를 조르던 장면(4번),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느낀 충만한 행복감(5번)과 어른에게는 별것 아니었으나 어린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내가 주인공이 되었던 경험(6번).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며 조금씩 행복감에 젖어 들 무렵, 슈만은 그 추억에 완전히 잠길 수 있도록 ‘트로이메라이’로 잘 알려진 ‘꿈(7번)’을 들려줍니다.
전체의 정 중앙에 놓인 일곱 번째 곡, ‘꿈’이 끝나면 작품의 후반부에서 또 다른 장면이 이어집니다. 한겨울 따뜻한 난롯가에서 뒹굴며 귤 까먹기(8번), 머리만 있는 막대 말을 타고 이리저리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던 기억(9번), 지금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너무 심각했던 어린 시절의 고민(10번),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놀라게 해서 심장이 쿵쿵 뛰었던 기억(11번), 그리고 곤한 하루를 마치고 스르르 잠에 빠지던 꿈과 현실 사이의 몽롱한 시간(12번). 슈만은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떠올릴 수 있는 갖가지 행복을 모아 엮어서 음악 사진첩처럼 만들었습니다.
첫 곡의 제목이 어색했던 것처럼, 마지막 곡 제목도 이상합니다. «시인이 말한다». 시인이라니, 어느 시인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시인은 어린이와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슈만의 음악 중, 특히 피아노 작품은 음악으로 시적인 순간을 창조하는 시(詩)입니다. 어떤 상황을 눈앞의 이미지처럼 묘사하는 듯싶다가 그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말하듯 전달해주지요. 12번 곡에서 잠으로 빠져든 어린이가 미처 끝맺지 못한 말을 시인이 대신 전하면서 작품을 마무리하는 것처럼요. 4 성부 성가처럼 쓰였으나 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기본 위치가 아닌 화성이 연속되어 미묘한 불안감을 조성함) 13번 곡의 시인은 아마도 슈만 자신이었을 겁니다. 행복한 기억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현실로 방향을 틀면서 불분명해진 조성으로 인해 우리는 발을 디딜 바닥이 없어 불안하면서도 편안하게 공중에 떠 있는 오묘한 시간을 경험하죠.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레치타티보 같은 오른손 독주는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으로 애써 감추었던 슈만의 고통을 결국 드러내고 맙니다. 하지만, 바로 다시 봉합하고 작품은 부드럽게 마무리됩니다.
슈만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20대 초반부터 보인 양극성 장애(조울증) 증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져 평생 슈만을 괴롭혔습니다. 내면의 고통과 고뇌 중에도 음악은 슈만이 자신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장이었습니다. 1838년 슈만은 «어린이 정경, Op.15»과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를 작곡해 연인이었던 클라라에게 선물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크라이슬레리아나»에는 너의 삶과 내 삶, 그리고 너의 눈빛을 담았어.
하지만, «어린이 정경»은 행복한 우리 미래처럼 부드럽고, 달콤하지.
당시, 두 연인은 슈만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알고 있던 클라라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해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크라이슬레리아나»에는 슈만의 우울함과 고뇌가 그대로 담겼습니다. «어린이 정경»은 달랐습니다. 현재의 고통을 잊고, 클라라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싶은 슈만의 희망을 노래하죠.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으로 갈피를 잃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붙들고 싶은 것처럼요. 안타깝게도 «어린이 정경»에서 조차도 슈만의 슬픔은 완벽하게 가려지지 않습니다. 햇살처럼 아름다운 추억들 아래 감춘 슈만의 고통은 손에 잡히지 않는 찰나의 순간에 삐죽이 튀어나왔다 사라지곤 하지요.
근본만을 남긴 듯 단순한 «어린이 정경»은 한음이라도 보태거나 뺄 수 없는 독특하고 유일한 방법으로 슈만이 원하는 마음의 이상향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연주자도 함부로 자신의 해석을 더하지 않고 마치 모르는 외국어를 읊듯, 혹은 이미 사라져 버린 언어를 읽어 내리듯 연주할 때 음악이 빛을 발합니다. 연주자의 개인적 해석이 심하게 가미되지 않은 담백한 거리감은 듣는 이가 매일 달라지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다르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냅니다. 행복한 날엔 행복한 음악으로, 울고 싶은 날엔 가슴 시리게 아픈 음악으로요.
낯선 나라에서 시인이 말한다. 시인은 비교적 편안하게 고통에 대해 말한다.
왜냐하면 «어린이 정경»은, 이제는 성인이 된 그가 과거 자신이었던 아이를 보는, 또한 고통스러운 유년을 보는 그런 이면의 시선에 바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유년이 고통스러운 것은 멀리 있고, 또한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멀게 느껴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미셸 슈나이더, 『슈만, 내면의 풍경』 김남주 역, 그책
어린아이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순수함과 행복, 그것을 상실한 어른이 느끼는 근원적 슬픔,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경계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음악이 «어린이 정경»입니다. 슈만이 그려내는 은밀한 이중성을 탁월하게 살려내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소개합니다. 동일한 음악임에도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신비를 맛볼 수 있습니다. 조르주 데 키리코의 그림에서 어느 날은 빛이 선명한 밝은 길에서 굴렁쇠를 굴리며 달리는 즐거운 아이가 먼저 보이고, 또 다른 날에는 길 끝에 가려진 낯선 이의 검은 그림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요.
마르타 아르헤리치 연주, Universal / Deutsche Grammophon 2005년 녹음 바로가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송은혜
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