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원 칼럼] 단단한 어른이 되는 법 (Feat. Lim Kim) – 마지막 회
물러설 수 없는 때에 맞서 싸울 수 있을 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글ㆍ사진 윤덕원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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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학창 시절을 다룬 창작물들을 좋아했었다. 돌아보면 달콤함과 씁쓸함이 함께 있었던, 감수성 예민하던 그 시절을 시간이 지나도 계속 그리워했던 것 같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지나간 날을 좋았던 기억 위주로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게 낭만적으로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때는 세상의 전부로 느껴졌던 일들이 지금 돌아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그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성장기를 다룬 이야기를 읽을 때 그 속의 씁쓸한 맛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마주하려고 한다. 

그런 평소의 생각이 무색하게 『여름의 겨울』은 온통 쓴맛으로 가득한 성장담이었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이 이야기의 배경은 단맛이라고는 찾기 힘들 정도로 온통 어두운색이다. 소설이 창작의 결과물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무거운 이야기 앞에서는 뭔가 말을 더 얹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모든 유년기에는 그런 어두움이 정도는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얼룩져 있을 것이다. 이 책이 프랑스에서만 3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주인공 소녀는 사냥을 즐기며 자신의 전리품을 방에 전시하는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있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온 어머니는 아메바처럼 단순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주인공이 애정을 쏟아온 남동생 '질'은 아이스크림 기계가 폭발하여 눈앞에서 노인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고를 목격한 이후에 폭력적으로 변해버린다. 다정했던 동생이 동물을 학대하고 죽일 만큼 변해버린 것은 그의 머릿속에 생긴 기생충 때문이라고 생각한 주인공 소녀는 타임머신을 만들어서 시간을 돌리려고 시도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었음을 확인할 뿐이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누구라도 좌절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법한 순간에도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고 위협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온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들이 (이것들은 주인공이 스스로 하나씩 쌓아온, 지켜온 것들이다) 그를 지탱해 준다. 물리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많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성장하고 소중한 것을 다시 되찾으며 어른이 되어간다. 

단순히 버티거나 참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의 운명과 싸워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Lim Kim 이 공백기간을 거쳐서 발표한 곡 'SAL-KI'가 떠올랐다. 한 인터뷰에서 곡 제목이 '살기’라고 하면 공격적일 것 같지만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위해 칼을 갈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여름의 겨울』을 읽고 나서 왠지 이 말에 좀 더 구체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물러설 수 없는 때에 맞서 싸울 수 있을 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다는 것이 성장이라고 한다면 그 과정은 본질적으로 처절하고 외로운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을 받고 난 후 그룹 투개월과 본명인 김예림으로 활동해 온 Lim Kim은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활동명을 바꾸고 기존의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발표했다.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느꼈던 정체성을 담은 그의 복귀작은 뮤직비디오의 강렬한 비주얼과 더불어서 많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Lim Kim의 인터뷰와 영상을 여러 번 보았다.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길에서 벗어나서 스스로의 길을 가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겠지만 그 과정을 거친 눈빛과 목소리는 단단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지난 4월부터 써왔던 칼럼의 마지막 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채널예스>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름의 겨울
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저 | 박경리 역
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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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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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주

2020.12.27

매번 칼럼 올라오면 반갑게 찾아가 읽었는데 벌써 마지막인가요...가만히 있어도 밀려오는 글들 속에서 그래도 찾아읽는 글이었습니다. 좀 휴식하시고 또 반가운 글을 만날수 있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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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zi88

2020.12.26

브로콜리 너마저와 윤덕원 님의 오랜 팬입니다. 담담하고 좋은 글 감사했습니다. 매번 열심히 잘 읽었는데 마지막이라니 아쉽네요. 곧 다음 음악과 글로 만나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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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

뮤지션. 인디계의 국민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1대 리더. 브로콜리너마저의 모든 곡과 가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