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편의점에서 복권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손님이 와서 복권을 달라고 하면 작은 기계를 눌러 복권을 뽑아주는 일이었다. 세상에 복권을 사는 사람이 그토록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실 그전까지 나는 복권을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었다. 확률이 적은 게임에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왠지 도박을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 천생 모범생인 나에게는 좀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는 복권 당첨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복권 따위 거들떠볼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복권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일단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는 거니까 그렇게 나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권을 사러 오는 사람은 남녀노소 다양했다. 매주 월요일 같은 시간에 복권을 사러 오는 아줌마, 아이 과자를 사면서 복권도 한 번 사 보는 아이 엄마, 복권 추첨을 하는 토요일에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일인 양 급하게 사 가는 아줌마, 같은 번호로 여러 장을 사 가는 젊은 남자, 당첨된 돈을 다시 복권으로 바꾸는 아저씨, 꼭 새로 뽑은 걸로 달라는 할아버지...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매주 싱글벙글한 얼굴로 복권을 사러 오는 한 아저씨였다. 그분은 복권을 살 때 ‘벤츠 한 대 주세요’, ‘하와이 여행권 주세요’라고 말했다. 마치 오천 원으로 ‘차 한 대’나 ‘하와이 여행권’을 살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 같았다. 그 아저씨가 그렇게 말할 때면, 나도 오천 원을 받고 외제차 한 대를 내어주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진심으로 그분이 당첨되길 바랐다. 그렇게 내가 알바를 하는 몇 달 동안 아저씨는 복권의 이름을 다종다양하게 바꿔가며 꼬박꼬박 수십 장의 복권을 사 갔다. 하지만 당첨이 안 됐다고 서운해하지도 않고 이번에 안 되면 다시는 안 한다며 으름장을 놓지도 않았다. 그저 매번 오천 원으로 ‘해외 여행권’과 ‘새 집’과 ‘새 차’를 사갈 뿐이었다.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외제차 아저씨’도 까먹어갈 무렵,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자 내 앞의 가능성은 자꾸만 줄어드는 듯했다.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 쉬던 어느 날 나도 충동적으로 복권을 사봤다. 그런데 월요일에 복권을 사고 토요일 추첨을 기다리는 일주일이 아주 행복한 것이었다. 이게 당첨되면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복권에 당첨되진 않았다. 하지만 5천 원을 내고 일주일 동안 상상만으로도 행복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5천 원을 주고 일주일 치 행복을 산 것이라고.
그 후로도 나는 종종 복권을 산다. 지금 하는 일을 때려치고 싶을 때, 새로운 걸 배워보고 싶은데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을 때, 내 집 마련이 너무 멀게만 느껴질 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오천 원어치만 산다. 아직까지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지만 어쩌면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당첨금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즐거운 상상은 언제나 내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권을 선물하기도 한다. 적은 돈으로 일주일 치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물을 하면서 ‘1등 당첨이 되면 반은 나 줘야 돼’ 하는 농담도 잊지 않는다. 그러다가 ‘진짜 내가 선물한 복권이 당첨이 되면 어쩌지?’하고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때로는 갖고 싶은 어떤 걸 진짜로 사는 것보다 언젠가 그걸 살 거라고 기대하는 시간이 더 즐겁다는 생각을 한다. 당첨될 확률이 실낱같은 복권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빵이나 사 먹는 게 나은 것일지 모르지만 빵이 주는 행복만큼 작은 희망이 주는 행복도 무척 달콤하다. 당첨이 되지 않으면 그저 종이 쪼가리가 될 뿐인 복권에 돈을 쓰는 게 사치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가끔 이 사치를 부리면서 위로받고 싶다. 그리고 또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 오천 원으로 무궁무진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사치가 아닐까.
방예지 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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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예지(나도,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