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온화한 소리를 가진 현악기 ‘비올라 다 감바’를 아시나요?
마레는 확신에 찬 부드럽고 풍성한 소리부터 갈등으로 요동치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소리까지 모두 연주할 방법을 찾아 헤맸던 음악가였어요.
글ㆍ사진 송은혜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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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감동을 전하는 ‘일요일의 음악실’ 칼럼이 격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송은혜 작가의 가이드를 따라, 음악의 세계에 한발 다가가 보세요.


<음악수업>, 장-마르크 나티에 (1685-1766)/ 필하모니 드 파리, 시떼 들 라 뮤직 뮤지엄 소장


"백 칸의 방이 있는 거대한 석조 궁정에서 연주하는지 뽕나무 위 흔들리는 오두막에서 연주하는 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게는 손가락의 기교, 듣는 귀나 창의성, 그리고 예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지요. 바로, 내가 이끄는 열정적인 삶입니다. "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사신다고요? " 마랭 마레가 물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열정적으로 삶을 이끌어 가신다고요? "

마들렌과 마랭이 거의 동시에 말하고는 늙은 음악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레씨, 당신은 눈에 보이는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연주하지요. 나는 ‘기쁘게 하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지 않아요. 나는 음악으로 외칠 뿐입니다. 나의 이 두 손으로 소리를 질러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부를 뿐이에요. 

(중략)

나는 명부에 속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제법 괜찮은 작품을 출판할 테고 아마도 그 악보에 능숙한 손가락 번호와 내게서 훔친 장식음들을 가득 넣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저 종이에 적힌 4분음표와 2분음표일 뿐이에요. "

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 Foilo p. 73-74

내장 깊은 곳을 긁어 올리는 울림, 파도처럼 화려한 활쓰기, 엔드핀이 없이 다리 사이에 고정되어 공중에 붕 떠 있는 악기, 그로 인해 생긴 지판-현악기에서 왼손으로 음을 짚는 부분-과 연주자 사이의 거리. 마치 탱고를 추는 연인처럼 절절하고 강렬하게 그리고 우아했던 비올라 다 감바와 연주자가 제게 남긴 첫인상이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감바’는 다리를 말하니 ‘비올라 다 감바’는 그대로 번역하자면 ‘다리로 잡고 연주하는 비올’이 됩니다(팔로 지지하고 연주하는 비올은 ‘비올라 다 브라챠’라고 불렀어요). 첼로와 닮은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우리에게 생소한 이 악기는 15세기 즈음에 나타나 전성기를 누리다가 18세기 말에 사라졌어요. 그리고 20세기에 바로크 음악을 비롯한 예전 음악에 대해 높아지는 관심과 함께 부활했답니다.

비올라 다 감바에는 프렛-기타처럼 반음 단위로 현에 음을 정해주는 지판 위의 낮은 턱-이 있어서 화성을 연주하기가 편했어요. 단선율을 연주하다가도 갑자기 화성을 디리링 연주하기가 수월한 기타를 상상해 보세요. 비올라 다 감바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선율을 연주하지만 수시로 활로 모든 현을 훑어 내듯이 화성을 연주해 극적인 장식 효과를 내었답니다. 제가 처음 감바를 들었을 때 느꼈던 강렬함도 바로 이 화려하고 강력한 아르페지오(화성의 음을 동시에 연주하지 않고 하나씩 분리해 펼쳐서 연주하는 기법) 때문이었어요. 반면, 다른 고악기들이 그런 것처럼 동물의 내장으로 만들어진 감바의 현은 금속 줄 만큼 강하거나 화려한 소리를 내지는 못해요. 그 대신, 소재가 자체가 가진 따뜻함으로 부드러움을 전해줍니다. 활로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내는 여러 악기 중, 가장 온화한 소리를 가진 악기가 비올라 다 감바일 거예요.

마랭 마레(1656-1728)는 이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소리와 표현 방법을 연구했던 작곡가입니다. 감성적으로 마음을 녹이는 소리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거친 소리를 내기 위해 여러 가지 기법과 장식음을 개발했지요.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은 마랭 마레와 그의 스승, 상트 콜롱브, 두 명의 실재했던 음악가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작품입니다. 젊은 학생이었던 마레가 세상에 문을 닫고 자신의 오두막에 은둔했던 그의 선생에게서 비올라 다 감바와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배워가는 이야기지요. 

소설에서 상트 콜롱브는 눈에 보이는 음악만을 연주하는 마레에게 삶과 가치를 자신의 음악에 싣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넘치는 재능과 부족함 없는 조건 덕에 제법 실력이 있는 음악가로 문제없이 살고 있던 마레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선생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사랑을 경험하면서 악보를 넘어서는 음악의 의미, 아니 삶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갑니다. 키냐르는 아마도 마랭 마레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소설을 상상했을 겁니다. 마레의 작품에서 그저 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인간의 온갖 감정을 토해내는 비올라 다 감바의 고백을 듣고는 글로 옮겼겠지요.

11월, 차갑게 깊어지는 늦가을에 처음으로 여러분께 소개하는 음악은 마랭 마레의 < 인간의 목소리Les voix humaines>입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악기로 노래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질문을 바꾸어, 작곡가는 인간의 어떤 목소리를 악기로 모방하고 싶었을까요? 우리는 클라리넷이나 첼로가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음역도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하고 무엇보다도 둥글고 따스한 악기의 음색 때문이지요. 하지만, 음색이라면 비올라 다 감바도 빠질 수 없어요. 동물의 내장으로 만들어진 거트 현의 부드러움과 중후한 음역은 우리가 언제나 듣고 싶어 하는 안정적이고 위로를 주는 목소리와 가장 닮았으니까요.

상트 콜롱브의 제자인 마레가 단순히 우리의 마음을 달콤하게 위로하기 위해 이 곡을 작곡했을까요? 마레는 확신에 찬 부드럽고 풍성한 소리부터 갈등으로 요동치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소리까지 모두 연주할 방법을 찾아 헤맸던 음악가였어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지어낸 다양한 장식음을 <인간의 목소리>에 담았습니다. 인간의 목소리를 닮아 과도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 이미 우리 곁을 떠난 무언가를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비올라 다 감바에 목소리를 주었죠.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상트 콜롱브는 젊은 마레에게 당신은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지만 나는 나의 악기로 그저 소리쳐 운다고 말합니다. 평생, 타인과의 소통을 끊고 오두막에 은둔해 살며 비올라 다 감바만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던 상트 콜롱브는 사실 죽은 아내를 평생 떠나보내지 못하고 자신의 음악을 통해 아내를 이 세상으로 다시 불러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소리쳐 부르던 중이었죠. 명부에 두고 온 에우리디체를 되찾기 위해 연주했던 오르페우스처럼요. 

그리고, 그들의 절망은 우리 마음을 홀리는 예술로 향처럼 피어 오릅니다. 


마랭 마레의 <인간의 목소리 Les voix humaine > 듣기 

조르디 사발 연주 « Les Voix Humaines » 1998년(Alia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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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목소리 #예스24 #다 감바 #초혼가 #예스24 음악칼럼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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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kal

2020.11.29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됩니다. 링크 걸어주셔서 직접 들어보니 쓰신 글을 더 공감하였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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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혜

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