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웹툰 <위대한 방옥숙>, 아파트 부녀회의 세계
부녀회는 한국 사회의 계층 상승 동학의 핵심이었지만 어디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남성들에 비해 부가적이거나 비가시화된다.
글ㆍ사진 권김현영(여성학자)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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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여성학자 권김현영이 영화, 소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에 나온

‘여자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3주에 한 번 글을 씁니다.


웹툰 <위대한 방옥숙>의 한 장면

사는 곳을 통해 알 수 있는 것들

어릴 때 앞동네의 아파트에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이동 책대여점이 오고, 목요일 오후에는 순대와 떡볶이 트럭이 왔다. 매일 달라지는 풍경이 신기해서 그 아파트 장터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너 몇 동 몇 호 애니?” 자전거를 타고 가서 잠시 세워놓고 장터에 새로 온 것들을 구경하고 있던 참이었다. 부녀회 띠를 두른 이가 자전거 한번 나 한번 쳐다보더니 불쑥 말을 걸었다. “저 여기 안 사는데요.” “친구 만나러 왔니?” “아뇨. 책 빌리러 왔는데요.”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오늘 안 와!”라는 그 목소리에 ’너 나가‘ 라는 마음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저는 오늘인 줄 알고....” 수요일인 줄 알고 있었지만 굳이 거짓말까지 해가며 어쩐지 비굴하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사간 동네에 즐비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늘 신기했다. 아파트에서는 아래 윗집에 살아도 서로 인사도 안 한다더라.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퍼졌던 소문을 주로 이거였는데, 실상은 좀 달랐다. 인사를 안 해서가 아니라 너무 서로 생활습관을 간섭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내 눈에 뵈기엔 그저 신기하고 좋아 보였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따라 아파트 상가 안 분식집에 가면 분식집 주인은 아는 척을 하며 외상값을 그어줬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법부터 문을 여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그곳에 사는 친구가 능숙하게 그 모든 것을 물 흐르듯 하고 주변인들이 그 모든 것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신기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재밌어했다. 너는 왜 이층양옥집에 살면서 아파트를 부러워하고 그래. 

이층양옥집과 아파트. 이 두 단어 사이의 연결이 오래 인상에 남았다. 이 두 가지 단어는 그냥 주거 형태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계층의 표식을 드러내는 이름표였다. “아는 삼촌이 살던 동네에 돌아가 떡 벌어지는 이층양옥집을 지었어.” 그런 얘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서의 이층양옥집. “서울에서 아파트를 가졌으면 성공한 거지.” 이런 얘기에서의 아파트가 가지는 존재감 같은 것 말이다. 박해천은 한국의 중산층은 시대별로 특정한 시공간 인덱스를 가지고 있다며 1960년대의 서북계-이층양옥-중상류층, 1980년대의 강남-아파트-중산층, 1990년대의 신도시-이마트-중산층이라는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박해천,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워크룸프레스, 2015).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칼럼을 읽고는 조금 갸우뚱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사는 곳‘을 통해 우리는 많은 정보를 프로파일링할 수 있지 않은가. 


이층양옥집과 아파트라는 욕망의 대상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란 단지 주거 형태나 건축물의 형태가 아니다. 의식주를 비롯한 일상의 경험과 취향의 감각을 전시하고 공유하는 곳이자 한국 사회의 중산층 욕망과 실천의 역동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회문화적 집합체다. 이성애 결혼제도 안에 들어간 중하층계급 여성들이 살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해주는 상징적 구성물이랄까. 문제는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풍요와 안정에 대한 총체적인 감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상징이 된 대상 자체를 욕망할 때이다. 그 대상은 1960년대에는 이층양옥집이었고, 1980년대에는 아파트였다. 이 초과된 욕망이 만들어낸 파국의 장면을 1960년대 양옥집 안에서 그려낸 게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이야기였다면, 1980년대 이후 굳건하게 욕망의 대상이었던 아파트를 둘러싼 여성들의 욕망에 천착한 작품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완료된(아직 무료다! 얼른 보시라) 매미/희세 작가의 <위대한 방옥숙>이다. 

<위대한 방옥숙> 1회는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시체처럼 보이는 물체를 한강에 빠트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방옥숙은 어쩌다 이런 일까지 하게 된 걸까. 17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방옥숙은 인형눈깔을 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방안은 곰인형으로 가득 찬 월세방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있고 누군가에게 얘기를 듣고 있다. “돈 백날 모아봤자 내 집 마련 못 해. 어떻게든 대출받아서 무리하게라도 무조건 아파트를 사야 돼. 그러면 아파트 집값은 무조건 오르게 되어있어. 늙어서 폐지 주워서 먹고 살 거야? 동훈이 장가보내고 재희 시집 보낼 돈은 어떻게 마련할 건데? 우리 같은 서민들한텐 오로지 아파트밖에 없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방옥숙은 이 말을 듣고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입성한다. 그곳에 입성하기 위해 방옥숙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마침내 들어온 집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결코 켜지 않는 에어컨과 최신 체리색 몰딩으로 꾸민 집의 거실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방옥숙은 인생 최대의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앞동네에 재개발이 허가되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 아닌가. 한강조망권이 있다는 이유로 높은 가격이 형성되었던 노블골드캐슬(구 매미아파트)의 가격은 순식간에 폭락한다. 방옥숙을 비롯한 부녀회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웹툰 <위대한 방옥숙>의 한 장면

집값에 진심이신 분들

그동안 재개발 이권 다툼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악역을 맡은 건 조직폭력배와 그들과 은밀하게 손잡은 부패한 담당공무원들이었고 모두 남자였다. 경비원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등 갑질을 하는 주민 역할로 가끔 여자가 악역이 될 때도 있었으나 진짜 문제의 뒤에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가 있다는 식으로 묘사되곤 했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봐왔던 부동산 집값 담합은 부녀회를 위시한 맘카페나 주민 카페 위주였고 주로 여자들이었는데 왜 이들 얘기는 아무데서나 안 다루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위대한 방옥숙>에도 재개발 이권 다툼의 단골 악역으로 조폭 출신 남자 협회장이 등장하여 정치인에게 뇌물도 주고 경찰도 같이 어울리는 장면들이 나온다. 조폭 협회장은 부녀회 핵심 멤버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 “도대체가!!! 아줌마들이 반찬 걱정이나 할 것이지. 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냐고! 여기는 아줌마들의 세계가 아니야. 여기 이 방옥숙 부녀회장님께서 동의서만 순순히 건네줬으면, 지금쯤 다들 집에 돌아가서 씻고 얘기 나눴겠지. 남편 바가지도 좀 긁고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서로 얘기도 하고” 

부녀회 입장에서는 조합장의 이 말이야말로 무슨 꽃노래인가 싶었을터이다. 이들이 누군가. 매미홈타운 아파트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자 노블골드캐슬로 이름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 동네에 구치소가 입주할 때 반대 시위를 조직하고 임대아파트 쪽과 사람이 섞이지 않도록 입구를 막고 유명강남학원을 유치하고 아파트값을 지켜내기 위해 시세보다 싸게 거래한 공인중개사를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이들이 아닌가. 

이들은 집단이기주의 자체로 점철된 인물 군상이며 작가도 그 점에선 조금도 여지를 두지 않고 이들의 전횡을 그려낸다. 하지만 경찰서에 몰려온 이들의 뒤편에서 완전 “집값에 진심이신 분들 또 오셨냐”며 빈정거리며 경찰이 한 말도 놓치지 않는다. 큰 줄거리에 비해 아주 작은 스포를 하자면 이 경찰(작중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다.)은 나중에 재개발 이권의 또 다른 부패의 축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부녀회 사람들이 집값에 진심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산층 삶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다. (“방옥숙 여사는 겨우 이뤄낸 중산층 삶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정말 부단히도 노력했다.”) 작중 인물들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가장으로서의 남성이 수행하지 못했거나 다른 여러 이유로 비워진 틈을 메우기 위해 집값을 지키는데 전력을 다한다. 


이상적인 중산층 가족을 향한 열망

부녀회의 핵심멤버 민서 엄마, 웅진 엄마, 동훈 엄마, 예리 씨와 민호 할머니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판 이상적 가족을 외피뿐일지언정 그럴듯하게 보이고자 하는 인물들이다. 가족임금을 받아 가족들의 생계를 부양하는 남성 가장과 전업주부 여성, 그리고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자식이라는 ’이상‘을 위한 각자의 분투는 모두를 불행하게 하지만 한국 사회가 제안한 유일한 정상적인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아무도 쉽게 레일을  내려오지 못한다. 

가부장제 가족 제도에서 전업주부 여성에게 부여된 역할은 쉽게 말해 성 역할이지 실상은 특정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이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한다. <위대한 방옥숙>은 전업주부 여성들이 적극적인 투자행위부터 저축과 관리, 자녀교육과 집안일, 간병 등 돌봄 노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층 상승의 핵심 키가 바로 이 투자, 관리, 생활습관 등에서 나온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부녀회의 활동은 계층 상승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일이다. 그러나 전업주부의 이러한 경제 활동들은 대체로 집착에서 비롯된 이 과도한 수행성으로 이해되며 매우 부적절한 방식으로만 가시화되어왔다. 그러나 부적절하고 부정적일지언정 이 과잉이 결국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의 허구적 성격을 폭로하는 것도 사실이다. 

방옥숙의 딸 재희는 가출한 아빠가 큰 범죄에 연루되어있는 줄 알고 뒤를 쫒다가 아빠의 말이 대부분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라의 아빠는 사건의 전말을 말한다. “너희 아버지는 그냥 해고당하신 거야.” “왜 그런 거짓말을 하셨을까요?” “음...내 생각엔 말이다. 수컷의 허세 같은 것 아니었을까? 해고당했다는 것보다는 횡령했다는 게 더 남자다워 보이셨나 보지. 남자는 말이다. 특히 가장에겐 실직당하는 게 목숨을 잃는 것만큼 두려울 때도 있단다.” 재희는 여전히 아빠의 가출이 잘 이해가 안 가지만 아빠를 그리워하며 엄마에게 진절머리를 냈던 자기의 감정과 조금은 거리를 두게 된다. 

’여자들의 사회‘에 대한 글을 연재하면서 아파트 부녀회에 대한 글을 꼭 쓰고 싶었다. 부녀회는 한국 사회의 계층 상승 동학의 핵심이었지만 어디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남성들에 비해 부가적이거나 비가시화된다. 


웹툰 <위대한 방옥숙>의 한 장면

여자도 이해관계의 주체다. 당연히

신용중심의 금융경제사회에서 기혼 여성의 신용은 남편에게 귀속되거나 좌우되며, 비혼 여성은 나이 들수록 상대적으로 빈곤해질 가능성이 높다. 4인 가족의 평균 월급만을 가지고는 중산층의 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다. 유산이라도 물려받지 않은 한 중산층이 되기 위해선 부부와 아이가 한 팀이 되어서 각종 제도적 혜택에 손을 내밀고 투자라는 운이 따라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때 가족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는 경제공동체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만약 가부장제하에서의 가족중심주의라는 틀 바깥에서 이러한 경제행위가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최근 들어 주식과 부동산 등에 관심을 가지는 20대 여성들이 부쩍 늘었다. 우선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왜 남자는 주식 얘기를 하며 투자를 하는데 여자는 화장품과 옷 같은 소비재에만 관심을 가지도록 했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해석은 모든 스테레오타입들이 그렇듯이 정확한 현실의 반영은 아니다. 2018년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금융이해력은 여성과 남성 모두 ’낮다‘. 다만 성별에 따라 흥미로운 변별점이 보이는 부분은 있다. 이자와 투자 등 금융 지식의 개념에 대한 이해는 남성이 다소 높고, 저축과 자산 관리 등 실천 행위와 태도는 여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저축과 관리를 더 익숙하게 생각하고 남성들은 투자와 대출 등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투자‘에 남성이 좀 더 익숙하다고 느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실제로 그 투자가 유의미한 성과를 얻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보다 분명한 차이는 소득수준에 달려있는데,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금융 지식 최소목표점수 달성 수준이 높았고, 재무 목표가 있는 경우(69.7%)와 재무 목표가 없는 경우(50.7%)의 격차는 해당 조사가 드러낸 격차 중 가장 컸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재무 목표가 있고, 소득수준이 높은 30대들이 성별 무관하게 가장 금융소득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20대 여성들이 구체적인 재무 목표를 가지게 되면 앞으로 이런 차이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의 주택 소유비율도 2012년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주로 50세에서 69세 사이 1인 가구 여성의 자가소유비율이 증가했는데, 황혼이혼의 증가와 50대 이상 여성 경제활동인구의 증가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은 이해관계의 주체가 되고 계약의 당사자가 되어보는 경험을 해왔고, 주택보유율의 성별 차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로 보아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그럴 것이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중에서도 자가주택소유는 가장 중요한 재무 목표다. 왜일까. 2019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의하면 주택을 보유하고자 하는 이유는 주거 안정이 89.7%, 자산증식이 7.1%, 노후생활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3.3%였다. 평균거주기간 자가가구 10.7년, 임차가구 3.2년라는 차이, 비정규직과 불안정노동에 종사하면서도 어떻게든 미래를 준비해야한다는 걱정을 덜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내 집 마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주택보유의식은 84.1%로 역대 최고를 매년 갱신하며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차 기간의 보증과 연금제도의 개선, 공공 의료 및 사회복지서비스의 확충이라는 식의 제안은 주거 문제 해결의 (좌파적) ’모범답안‘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모범답안은 이성애 결혼제도를 통한 축의금 부조 문화부터 신혼부부 주택청약제도에 이르기까지 내 집 마련과 규범적 이성애 가족을 이상적으로 실천함으로써 가장 손쉽게 계층이동을 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도, 결혼제도에 들어가지 않고 1인분의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전혀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아파트가 선호의 대상이 된 이유는 어린이집부터 부녀회, 노인정 등 (지금과 같은 형태의 이성애 핵가족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 아파트 단지 문화의 핵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대한 방옥숙>의 부녀회 멤버들은 집값이라는 이해관계로 만났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이해관계란 건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바뀔 뿐이니까. 이들을 단단히 묶어놓은 것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운명공동체로 서로 지독하게 얽히면서였다. 서로를 좋든 싫든 돌보면서 살게 되어버린 이 부녀회 멤버들의 관계성이 이 지독하게 현실적인 디스토피아가 유일하게 남겨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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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여성학자)

여성학 연구자. 언제나 여자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