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찾은, 엄마와 딸의 진짜 속마음
엄마한테 말하고 싶어요. "엄마, 함께 인도에 가줘서 고마워. 엄마의 일기를 공유해줘서 고마워."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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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기 전에 이름으로 불리던 청춘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면 미안한 감정에 마음이 뻐근하다. 엄마의 이름을 지운 게 나인 것 같아서. 나이 많은 자식을 앞에 두고도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가 떠올라서. 엄마를 향한 미안함이 속상함이 되어 마음에 남는다.

엄마 정인근은 이혼과 재혼 그리고 아픈 이별을 겪고 딸에게 다시 돌아왔다. 딸 홍승희는 이런 엄마에게 인도 여행을 제안한다. 돌아온 엄마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흔들리는 일상을 피해 떠나온 인도. 엄마 정인근은 인도에서의 첫날 스스로를 ‘아난다’라고 소개한다. 택시 기사에게 “알 유 해피?”라고 묻고, 낯선 사람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엄마. 딸 홍승희는 엄마 역시 상처받고 사랑하고 성장하려 고군분투하는 사람임을 알아간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나의 엄마’에게서 엄마의 진짜 모습을, 엄마 안의 ‘아난다’를 찾아내고 싶게 한다. 엄마가 아닌 이름을 찾은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게 한다.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를 통해 오랜만에 글로 돌아오셨어요. 정인근 작가님, 홍승희 작가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정인근: 저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고양시의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 운동도 하고 그러면서요. 요즘은 술도 절제하며 마시고 있어요. 신간 추천사에 최현숙 선생님께서 저를 ‘툭하면 술과 연애에 빠지는 정인근’이라고 해주셨는데요. 이제는 더 이상 안 그런답니다. 

홍승희: 2018년 출간한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이후에 오랜만에 책으로 인사드려요. 저는 한동안 페루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온 지 4개월 되어가요. 요즘은 운동하면서, 그동안 구경하지 못했던 한국 여기저기를 다니며 지내고 있어요. 유튜브에서 ‘홍칼리’라는 채널도 운영하고요. 엄마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지내요.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 소개를 부탁드려요.

홍승희: 2년 전 엄마와 인도 여행을 했을 때 썼던 일기를 모은 책이에요. 엄마와 제가 서로에게 쓴 걱정과 애정을 담은 편지이자 인도 여행 에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 제목에 ‘아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인근 작가님이 자신의 새로운 이름으로 선택한 말이기도 하잖아요.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고요. ‘아난다’는 무슨 뜻인가요?

정인근: 아난다라는 이름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지었어요. 그때가 힘든 시기였거든요. 어머니도 많이 편찮으셨고, 만나던 사람과 이별을 하고, 다니던 일도 그만둔 상태였어요. 그때 승은이(첫째) 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승은이랑 승희랑 셋이서 타로카드를 보았어요. 그때 뽑은 타로카드가 아난다라는 인물이었어요.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타로카드를 뽑을 때마다 아난다가 나왔어요. 아난다는 부처님의 10제자 중 한 분으로 슬픔을 끌어안고 밤을 새워 열반에 든 사람이거든요. 아난다의 슬픔이 공감되었어요. ‘아난다’가 ‘슬픔과 비애를 끌어안는다’는 뜻도 있고 ‘기쁨’이라는 뜻도 동시에 가지고 있거든요. 슬픔을 끌어안고 기쁨으로 나아가자. 이런 마음에 ‘아난다’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독자님들께도 슬픔이 기쁨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 제목에도 ‘아난다’라는 말을 넣었어요. 



엄마와 인도를 빼놓고는 이 책을 설명할 수 없을 텐데요. 홍승희 작가님께는 엄마에 대한 질문을. 정인근 작가님께는 인도에 대하 이야기를 묻겠습니다. 홍승희 작가님, 책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여행을 다녀온 뒤 바뀐 점은 있다. 이제 엄마는 나에게 술에만 의지하는 사람, 데이트 폭력 피해자만이 아닌, 모험을 좋아하는 아난다다.” 이 구절에서 엄마를 새로운 사람으로 마주한 딸의 모습이 보였어요. 엄마가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만나는 엄마. 어떤 기분이었나요? 

홍승희: 책에도 나오지만 저는 인도 여행을 가서도 엄마가 술을 많이 마실까봐 걱정, 데이트폭력 가해자를 다시 만날까봐 걱정하느라 하루 종일 애썼어요. 그런데 엄마의 일기를 보면서 느꼈어요. 엄마가 우울해하다가도 원숭이 보고 기분 좋아지고, 낯선 곳에서 "알 유 해피"라면서 일상을 살아내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정이 많고 사랑이 많으니까 바보 되고 바보니까 다치기 쉽죠. 근데 그게 여행을 할 때 중요한 태도거든요. 그래야 새로운 곳을 나갈 때 두려움보다 큰 호기심으로 출발할 수 있고, 아무리 상처가 많아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편견 없이 만날 수 있으니까요. 저도 그래서 오랫동안 여행을 했고요. 

그래서 좋은 친구가 생긴 느낌이에요. 함께 여행하고 여행에 대해 이렇게 함께 글도 쓰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요. 지금은 “엄마 술 마셔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책이 나오고 다시 읽으면서 느낀 게 있는데요. 저는 엄마에게 인도의 공기를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엄마는 제가 걱정되고 저를 안아주고 싶어서 인도까지 동행해준 거였더라고요. 저는 엄마가 제일 걱정됐는데, 엄마는 저를 제일 걱정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엄마한테 말하고 싶어요. "엄마, 함께 인도에 가줘서 고마워. 엄마의 일기를 공유해줘서 고마워." 

정인근 작가님, 책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인도를 생각하니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이유는 뭘까.” 책 속 작가님의 여행 초반과 후반 감정이 많이 달라진다고 느꼈어요. 책 도입부에는 딸과 작가님 스스로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 많았다면, 책 후반부에는 방금 말씀드린 책 속 구절처럼 웃고 계신 모습이 많아졌는데요. 책을 읽는 저까지 용기를 막 얻게 되더라고요. 작가님을 이렇게나 상쾌하게 만든 인도. 인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정인근: 저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인도의 공기가 친근하더라고요.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소똥 냄새도 정겨웠고요. 무엇보다 서로 다른 것들이 공존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우리는 가끔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상처받잖아요. 인도에 가보니 다른 것이 함께 있어 오히려 아름답더라고요. 인도에서는 까마귀, 소, 원숭이, 강아지, 닭, 당나귀들이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거닐어요. 사람들도 바쁘게 살지 않고 느긋하고 편안해 보이고요. 요즘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잖아요. 이런 인도라면 조금 모나고 삐뚤어진 저도 잘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삐뚤빼뚤 흐물흐물한 분위기가 인도의 매력인 것 같아요.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를 통해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는 무엇가요?

정인근: 사실 저의 일기가 책으로 나온 게 아직 실감이 안 나요. 재밌게 읽으시면서 어머니와 딸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인도에 갔던 시기가 제 삶에서 많이 혼란스러웠던 시기였어요.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고민이 다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여행하며 책도 많이 읽고 인도 풍경과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을 느꼈어요. 그런 장면을 위해, 가까운 곳이라도 꼭 여행하면 좋겠어요. 

홍승희: 저는 여행을 가기 전에도 여행지에서도 엄마가 다시 술을 마실까 봐, 그 사람을 만나러 갈까 봐 걱정 또 걱정했었어요. 엄마랑 있으면서 “조심하자, 안전하게, 정신 차리자!” 이 말을 제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엄마께 "위험"을 이야기하면서도, "위험해 보이는 것" 앞에서 엄마가 멈추지 않기를 바랐어요. 모순적이죠. 그런데 여행도 모순적이더라고요. 여행자들은 여행하다가 다치기도 하잖아요, 여행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고 나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엄마와 여행길에 올랐어요. “인생이 위험으로 가득하더라도 우리 멈추지 말자, 엄마” 이런 말을 엄마에게 해주려고요.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엄마를 응원해주고 싶었어요. 일상에서 엄마를 다치게 만들기도 했던, 엄마의 호기심을 응원해주고 싶었어요.

홍승희: 특히 인도는 여자 혼자 가기에 위험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그런 인도에 아난다(엄마)는 첫 해외여행으로 가게 되었고요. 이런 여정을 책으로 공유하면서 ‘인도 여행이 좀 더 안전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안전"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멈추지는 말자. 엄마처럼, 저처럼 호기심 많아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응원한다고, 그럼에도 우리 멈추지 말자고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어요. 

책의 에필로그 제목이 참 좋았어요. ‘세상의 모든 아난다들에게’라고 쓰셨잖아요. 자신의 본모습, 마음속에 품은 ‘아난다’를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정인근: 저는 거의 평생을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로 살아왔어요. 인도에 가서 ‘그럼 나는 누구지?’ 이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동안은 가족, 연인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지 라는 시선으로 제 정체성을 만들어왔거든요. 그런데 인도에 가기 전 가족과 연인이 모두와 힘들었어요. 그래서 여행지에서 그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많은 여정을 지나서 지금은 ‘아난다’, ‘정인근’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우리가 어떤 역할에서 다 벗어나긴 어렵지만 나의 이름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정체성을 잃어 힘드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름을 잃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름으로 불리는 삶을 지속해야 해요. 

홍승희: 엄마는 호기심이 많아요. 어렸을 땐 엄마와의 이별이 아팠지만, 저는 엄마가 자기자리를 벗어나 먼저 여행을 시작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엄마 덕분에 저도 호기심을 선택하면서 여행하듯 살 수 있었거든요. 이별했던 엄마가 늘 전화할 때 "엄마 믿어? 엄마 믿어줘" 이런 말을 자주 했어요. 엄마는 외로웠을 것 같아요. 엄마, 아내의 자리를 벗어난 엄마를 보고 걱정하거나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엄마가 어떤 여정을 하고 있든 무조건 믿어주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도 내려놓고 엄마 이전의 나와 같은 사람의 여정을 믿어주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나를 그렇게 믿어주는 한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혹시 그런 관계가 주변에 없더라도, 이 책이 "누가 뭐래도 나는 당신을 믿는다"는 말을 건네주는 편지가 되길 바라요.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
엄마는 인도에서 아난다라고 불렸다
정인근,홍승희 공저
봄름



*정인근

평생 농사하며 땅과 호흡하던 엄마에게서 매일의 성실과 사랑을 배웠다. 스물에 결혼해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이혼과 재혼, 그 흔들림 속에서 한나절 여행하듯 살다가 다시 딸들을 만났다.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엄마에게서 배운 사랑을 나누며 지낸다. 



*홍승희

금기를 없애자고 말하면서 금기를 욕망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면서 아무거나 하고 있으며 별로 살고 싶지 않다고 쓰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특별해지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려고 애쓴다. 특별함으로 포장된 차별과 편견에 속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일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지만 정답을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광장과 거리에서 퍼포먼스하고 흐물흐물한 몸과 허술한 세상을 쓰고 그린다. [오마이뉴스]에 「여자교도소 르포」, [여성주의저널 일다]에 「치마 속 페미니즘」을 연재했고, [한겨레]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잘 웃고 잘 우는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엄마의 빈자리 앞에서 눈물 흘리던 청소년기를 지나, 스물이 넘어서는 집 밖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요즘은 엄마와 다시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엄마처럼, 자주 울고 웃으며 지낸다. 

지은 책으로는 『붉은 선』,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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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