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대전망』은 연말마다 내년 거시경제 전망을 정리해온 도서로, 올해로 벌써 5번째다. 일 년 전 출간된 『2020 한국경제 대전망』의 키워드는 ‘오리무중 속 고군분투’였다. 미중 간 무역 갈등과 일본의 수출 규제 속에서 홀로 험난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한국경제의 모습을 의미했다. 그러나 예측이 불가능했던 코로나라는 변수는 상황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 상태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어버렸다. 전대미문의 사태로 경제 전망이 무색해졌지만, 『2021 한국경제 대전망』의 저자들은 분야별로 발빠르게 코로나의 영향을 분석하고 그 이후를 예측해 새 책을 내놓았다.
코로나로 경제 전망이 어느 때보다 쉽지 않지만, 그만큼 전망이 절실한 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올해의 키워드를 정해주신다면 무엇일까요?
‘진퇴양난(進退兩難)’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요. 먼저 내수와 수출 사이의 균형 문제입니다. 한국경제가 매우 선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무역에 의존하는 개방경제입니다.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를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 사이의 입장 문제입니다. 미국은 자국 편을 들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보내고 있지만, 거대한 경제권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마지막은 경제 정책에서의 정부 역할입니다.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정부의 재정 확대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고, 이것은 코로나를 제외한 그동안의 경제 흐름으로 보아도 적절한 재정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채무가 증가해 장기적인 리스크가 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 세 가지 어려움이 2021년 한국경제를 좌우할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세 가지 큰 흐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요?
정부 역할의 증대, 디지털화, 탈세계화입니다. 정부의 역할 증대는 코로나 이후 일어나는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이미 중앙은행의 이자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금융정책의 영향력 또한 떨어진 상태입니다. 정부 재정을 시중에 푸는 재정정책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경제학자들은 현재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4%로 아직은 양호하지만, 그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화는 코로나 이후 이미 변화해온 일과 일상생활의 변화에서 두드러집니다. 비대면 방식이 생활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홈코노미(홈트, 홈쿡, 홈술 등),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겪고 있는 현상입니다. 책의 1부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소비, 근무 방식, 교육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탈세계화 또는 세계화의 퇴조가 있습니다. 2008년 미국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 이후로 금융 세계화의 흐름이 주춤했고, 10년 뒤인 2018년부터는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각국이 보호무역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무역의 탈세계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발발하면서 생산 자체를 각국 내부에서 해결하는 생산의 탈세계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세계화의 전반적인 퇴조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역시 탈세계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앞으로의 경제를 상당히 좌우할 것입니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경제 성장률 1위를 기록하며 선방하고는 있지만, 말씀하신 대로 전례 없는 진퇴양난에 처했습니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한국판 뉴딜’이 앞서 말한 대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위에서 말한 국가채무의 증가는 장기적으로 경제를 활성시켜 해결해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2020년 7월에 발표된 ‘한국판 뉴딜’입니다. 한국판 뉴딜의 원조인 뉴딜 정책은 1930년대 미국 정부가 대공황 시기를 맞아 많은 재정을 풀어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정책입니다. 정부는 코로나 이후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친환경 산업을 키운다는 그린 뉴딜, 디지털 전환을 내세운 디지털 뉴딜, 그리고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세 가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한국판 뉴딜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경제가 성장 국면으로 전환되어 국가채무비율을 낮출 수 있겠지만 아직 그 효과를 확신하기는 이릅니다. 민간 기업의 투자 활성화가 따라야만 가능합니다.
코로나19는 거시적인 경기 침체를 넘어 일과 일상생활의 방식까지 뒤흔들고 있는데, 미래에 성장할 분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비대면(언택트) 방식의 비즈니스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코로나가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대면이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경제와 사회에서 매우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정부 부처들이 서울과 세종시 두 군데에 나뉘어 있다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늘 비판받았는데, 그 물리적 불리함이 지금은 마치 없어진 것처럼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고요. 수도권과 지방의 이중구조라는 국가 차원의 오랜 문제도 교육, 의료 분야의 디지털 인프라만 갖춰진다면 지방의 거주 조건이 매우 향상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거시경제 차원으로 보나, 생활의 차원에서나 매우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재난지원금이 효과를 거두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기본소득은 정부가 기본소득을 위한 재정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전 국민에게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개인과 법인 모두 지금 내고 있는 세금의 두 배를 부담해야 합니다. 즉 의미 있는 수준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려면 지출 구조조정이나 ‘부자 증세’만으로는 부족하고, 중산층과 빈곤층 역시 상당한 수준의 세금 부담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복지 대상이 전 국민으로 확대되면 집중적인 지원을 받아야 할 빈곤층에게 돌아가는 몫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소득 자체는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기본소득의 가장 큰 부작용은 근로 의욕의 감소라고 할 수 있는데, 근로 의욕이 왕성한 청년층을 대상으로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은 기본소득의 취지를 살릴 수 있고 현실적으로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가 금융과 자산시장에 미친 영향은 어떻게 보십니까?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면서 지금의 위기가 누군가에게는 부의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자산시장은 침체된 실물경제와 괴리되어 있습니다. 주식시장에는 지금 버블이 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합니다. 버블 측면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현금이 많이 유입된 것을 문제로 볼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그동안 비교적 낮았던 주식 배당률이 계속 증가하면서 2019년에 주식 배당률이 은행 이자율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이건 굉장히 큰 변화입니다. 은행 저축보다 주식 투자가 재산을 늘리는 데 유리해졌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것은 근본적인 변화이고, 선진국에서 많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는 보통 부동산으로 자산을 증식해왔습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대변되는 개인 투자자의 부상이 일시적으로 멈추지 않고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시나요?
강력한 부동산 규제가 계속되다 보니까 수익률이 낮아져서 돈이 금융시장에 쏠리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내년에도 이 흐름이 이어질 거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제조업 분야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도 사람들이 투자 쪽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 차원에서 합리적인 결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주식은 어쨌든 위험자산이기 때문에 거시경제의 새로운 리스크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대처가 필요해질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2021년 한국경제와 대외 경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전망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경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코로나가 가져온 충격에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일본경제를 예로 들면 그 추락의 골이 매우 깊습니다. 책에는 ‘추격지수’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경제와 일본경제를 비교한 것을 볼 수 있는데, 2020년은 1인당 소득 부문에서 한국이 최초로 일본을 추월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미국을 추격하는 중국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요. 종래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중국이 2030년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그 시기가 2050년경으로 미루어졌다가, 코로나로 미국 경기가 큰 타격을 받고 중국은 반등하기 시작하면서 2040년대로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경제는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대출과 정부의 재정적자가 그 부작용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입이나 소득이 생겨도 빚을 갚느라 투자하지 못해 발생하는 불황을 ‘대차대조표 불황’이라 부릅니다. 일본이 1990년대부터 겪은 오랜 불황의 양상이었습니다. 한국도 2021년 이후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질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 역할의 증대, 디지털화, 탈세계화라는 흐름은 한국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디지털화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고, 탈세계화로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오면 국내 고용과 투자가 확대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 역할 증대로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해 성장동력의 기반으로 삼는 것. 이를 통해 한국경제는 다시 한번 성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근 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겸 비교경제연구센터장이다. 그 외 경제추격연구소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한국국제경제학회장,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회장을 맡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국제슘페터학회장(ISS), UN본부 개발정책위원,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장, 세계경제포럼(WEF) Council 멤버 등을 역임했다. 비서구권 대학 소속 교수로는 최초로 슘페터(Schumpeter)상을 수상했고, 그 외 경암상, 학술원상 및 유럽진화경제학회(EAEPE)의 Kapp상을 수상했다. 기술혁신 분야 최고 학술지인 《리서치 폴리시(Research Policy)》의 공동편집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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