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리 퀴리>는 과학자 마리 스콜로도프스카 퀴리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동안 어떤 편견과 한계를 넘었는지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옥주현 씨가 <마리 퀴리>를 보러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안을 했다"는 제작진의 말처럼, 화려한 서포트가 뒷받침되는 해외 라이선스 작품에 주로 섰던 옥주현의 선택은 한국 창작 뮤지컬인 <마리 퀴리>가 삼연에 이르러 극장 규모를 키우는 데에 작지 않은 몫을 했다. 오로지 옥주현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작품을 찾는 사람들을 늘리는 데에 큰 역할을 해낸 것이다.
1998년 걸그룹 핑클의 멤버로 데뷔한 후, 한동안 옥주현에게는 얼굴을 찌푸리고 들어야 할 정도로 불쾌한 농담이 따라다녔다. 그의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이런 전제가 붙었다. "노래는 잘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말들은 주로 그의 외모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한국 걸그룹 1세대로 언급되는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외모에 대해 지금보다도 더 획일화된 기준으로 여성들을 평가하던 시대였다. 당시 메인보컬로서 핑클의 앨범을 탄탄하게 채워가는 옥주현에게 온갖 커뮤니티에서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키가 크고 건장해 보인다는 이유로 비난을 해댔다.
"'걔가 하는 건 볼만 해'라는 도장이 생기지 않았나. 이 작품이 대중적인 검증을 거쳤으면 했다." 지난 14일에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나온 옥주현은 <마리 퀴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여전히 외모의 중요성과 여성의 한계를 말하는 연예산업 안에서, 이제 옥주현은 후배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외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몸매를 가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그 이전에 옥주현의 무기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오르게 해준 개성 있는 목소리와 성량, 즉 노래 실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20년의 옥주현에게 키가 크다거나 힘이 세다는 말은 비난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작 그가 힘이 세다는 자신의 장점을 캐릭터로 승화시켜 동료 여성 배우를 안아 들거나, 남성 배우의 팔을 세게 쥐고 장난을 칠 정도로 여유롭게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로서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 보여준 근성, 그리고 그에 따라온 유명세. 비슷한 상황에 놓인 여성 아이돌을 비롯해 많은 여성들에게 꿈을 말하는 <마리 퀴리>의 마리에 그가 매력을 느낀 이유를 설명해준다. 옥주현의 지난 역사는 마리 스콜로도프스카 퀴리를 만나 그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또 한 여성의 역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승화됐다. 폴란드 태생에 과학자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이라는 성별, 매번 검은 옷만 입었다는 이유로 쏟아지던 따가운 시선들. 다만 이 역경들은 마리 퀴리가 실제로 이뤄낸 업적과 함께 옥주현이란 사람을 생존을 꿈꾸는 여성들을 위한 하나의 모델로 만들었다. 노래 실력 하나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웠던 여성 아이돌의 성공 공식을 뛰어넘어, 옥주현만의 생존 공식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공연 내내 바쁘게 공식을 써 내려가고 중요한 결정을 통해 삶을 완성하는 그의 모습을 따라 새로운 길을 그려본다. 누군가는 뒤따라 걷고 싶어 할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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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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