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 여름날의 기억처럼, 밤의 여운처럼
여름과 밤이 아니라 ‘여름밤’인 것처럼 일상과 환상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환상을 포개는 영화가 바로 <남매의 여름밤>이다.
글ㆍ사진 허남웅(영화평론가)
202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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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한 장면

제목의 ‘남매의 여름밤’은 의외로 복잡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전체적으로 강한 일상성이 느껴지면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일종의 환상성도 엿보인다. ‘여름’이 주는 청량함 한 편으로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의 감각도 있고, ‘밤’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어두운 심상이 끼어들기도 한다. 일상은 매일 반복되는 개념이라 단순한 듯해도 쌓이면 역사가 되는 것처럼 그에서 길어낼 수 있는 감정은 스펙트럼을 일군다. 여름과 밤이 아니라 ‘여름밤’인 것처럼 일상과 환상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환상을 포개는 영화가 바로 <남매의 여름밤>이다.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 남매는 아빠(양흥주)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정든 반지하 집을 떠나 당분간 할아버지(김상동)의 2층 양옥집에서 살기로 했다. 소식을 들었는지 때마침 고모(박현영)도 찾아오면서 다섯 식구가 여름을 함께 보낸다. 가족은 텃밭에서 따온 채소와 과일로 식사 시간을 풍성하게 만든다. 개구쟁이 동주는 할아버지 생일을 축하하며 식구들 앞에서 춤을 춰 웃음을 주기도 하고, 옥주는 옆에서 자는 고모를 깨워 맘에 두고 있는 남자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는 등 이들의 생활은 여느 가정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남다른 각자의 속사정도 있다. 할아버지는 몸이 편치 않다. 곁에서 누가 도와줘야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 사업 실패로 아내도 떠나고 재기도 모색해야 하는 아빠는 허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짓지만, 속이 복잡하다. 고모는 이혼을 결심하고 남편을 피해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오빠 소식을 듣고 이 집을 찾았다. 옥주는 남매를 떠난 엄마에게 애증의 감정이 있다. 동생 동주가 엄마를 만나고 왔다며 선물 꾸러미를 전해주자 자존심도 없느냐며 다그친다. 동주는 그래도 엄마인데 화부터 내는 누나가 미워 눈물이 흐른다. 

옥주와 동주 남매의 모습을 보면 이들의 아빠와 고모, 그러니까 병기와 미정 남매 또한 비슷한 성장기를 보내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여름밤’의 의미에 집중하여 설명했는데 제목의 ‘남매’는 옥주와 동주뿐 아니라 병기와 미정의 관계 또한 포함한다. 평범해 보이는 제목을 단어로 쪼개어 풀어보면 가리키고 의미하는 바가 겉보기와 다른 것처럼 가족의 풍경이란 것도 그렇다. 여느 가정과 비교해 다를 바 없고 속사정 또한 비슷해 보여도 각자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바는 천차만별이어서 바로 거기에 특별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옥주와 동주, 병기와 미정, 두 남매는 공통으로 엄마가 부재하다. 병기가 엄마 꿈을 꿨다고 얘기하자 미정은 “보고 싶으니까 꿈에 나오는 거 아닐까?” 둘이 공유하는 그리움의 감정을 무심한 듯 툭 뱉어낸다. 부재한 가족 구성원은 남은 이들에게 마음의 상처였을 테고 꿈을 통한 만남은 시한부일지언정 치유가 됐을 텐데 <남매의 여름밤>은 꿈의 환상성을 일상에 겹치는 방식으로 위로의 의미를 전달한다. 할아버지까지 잃어 상실감이 배가 된 옥주는 그 빈 자리를 엄마가 채워 식사 자리에 웃음이 만발한 너무 현실 같은 꿈을 꾸고는 잠시 어리둥절 이내 기운을 차린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포스터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은 “우리 가족에게는 흠결이 있다. 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말을 삼갔다. 지나고 보니 모든 가족에게 상처가 있다. 각각의 방식으로 그것을 치유해 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을 통해 그럼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옥주에게는 너무나 아픈 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딛고 부재가 아닌 함께 나눈 기억으로 잘 성장할 것이라 믿으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라고 작품의 의도를 전했다. 

신체의 상처를 치료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듯 마음을 다쳐 부상을 입은 자리에도 아물게 해줄 다양한 치료제가 있다. 옥주에게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환상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줄 위로의 치료가, 병기에게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게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격려의 진통제가,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이에게는 지금의 노력을 보상받게 될 미래의 희망이 위안의 당의정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 종류의 사연을 다룬 작품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공감이다. <남매의 여름밤>은 영화라는 환상으로 현실의 아픔을 공유하고 보듬어 관객을 공감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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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