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백온유 작가의 첫 장편소설 『유원』이 출간되었다. 『유원』은 십여 년 전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여덟 살 주인공 ‘유원’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날 화재 사건에서 자신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언니, 11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자신을 받아 내면서 몸도 삶도 망가져 버린 아저씨, 외로운 나날 가운데에서 훌쩍 다가온 친구 수현 등 관계 속에서 겪는 내밀한 상처와 윤리적 딜레마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가족을 향한 부채감, 자기혐오, 증오와 연민 등 복잡한 감정선이 시종 아슬아슬하게 흐르며 긴장을 자아낸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심사위원과 청소년심사단 146인에게서 “편견을 깨부수는 힘 있는 이야기” “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020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이 어느덧 제13회를 맞았습니다. 『아몬드』 『완득이』 『페인트』 등 이전에 출간된 작품들이 쟁쟁하고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미완성된 원고를 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기대 없이 다음 공모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는 정말 얼떨떨했죠. 저 역시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를 즐겨 읽어 왔고 청소년문학에 관심이 생긴 계기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구병모 작가님의 『위저드 베이커리』 덕분이었거든요.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담감이 심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출간 전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원』을 읽다 보면 주인공 유원과 수현에게 마음이 많이 갑니다. 또한 유원의 죽은 언니에게도요. 소설을 쓰던 순간에 기억에 남는 생각, 감정들이 있을까요?
유원이 겪은 사건은 너무 끔찍한 일이고, 열여덟 살이 되기까지 유원이 느껴 온 감정도 지나치게 버거운 것이라 접근하는 데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을 겪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세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유원의 이야기를 꼭 정면으로 응시해 보고 싶었어요.
저는 섬세한 사람이 아니라서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거든요. 유원을 표현할 때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두려웠어요. 제가 만들어 낸 인물인데도 어떤 순간에는 유원이 무슨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도무지 감이 안 오더라고요. 제가 평범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유원의 감정의 결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글 쓰다가 막히면 새벽에 나가서 계속 걸었어요. 걸으면서 유원이 이름을 소리 내서 불렀던 기억이 나요. 무슨 생각하는지 조금만 알려 달라고요. 한 인간을 이해하려고 그렇게까지 노력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그때의 절박했던 감정이 지금도 많이 기억나요.
작가님 본인이 썼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다거나, 앞으로도 계속 생각날 것 같은 소설 속 문장이 있나요?
아저씨가 유원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기억에 남아요. “사람 몸은 원래 약하다. 다 잊어버려라.” 이야기해 주는 부분요. 쓸 때, 너무 급하게 ‘아저씨도 사실은 좋은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장치처럼 보일까 봐 걱정을 하긴 했어요. 오랫동안 이 장면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한 끝에 저는 아저씨가 이 정도의 말을 할 수는 있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냈어요. 분명히 아저씨는 오래전에 유원을 살리기도 한 사람이니까, 아저씨 안에 숨겨진 이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을 넣는 것도 타당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언제 아저씨가 돌변할지, 또 유원을 힘들게 할지는 알 수 없지만요.
독자들에게 『유원』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이 책이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시나요?
크든 작든 평생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문제가 독자분들에게도 하나씩은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유원』에 나오는 주인공 유원 역시 그런 문제를 갖고 있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책이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다 읽은 후에 유원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믿는 독자분들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 쓸 때부터 이 이야기는 명쾌하게 끝날 수 없는 종류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게 진실에 가까우니까요.
다만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는 유원의 태도가 변화하는 모습이 독자 분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아요. 과거의 사건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게 하고 있음에도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는 유원의 태도, ‘그럼에도’ 미래를 꿈꾸고, 수현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 진짜로 견디기 어려울 때는 학원을 빠지기도 하고, 자신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 주기도 하는 유원의 영리함.
자신을 엄격하게 단속하는 것이 습관이 된 독자분들이 유원과 수현의 모습들을 통해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고요.
독자들의 리뷰를 찾아보시나요? 기억에 남는 『유원』의 리뷰가 있나요?
출간 전에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독자분들의 반응이 안 좋으면 어쩌나, 날카로운 리뷰를 본 후 상처를 받고 다음 소설을 쓰는 데 영향을 받으면 어쩌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지고 지레 겁먹었어요. 제가 떨고 있으니까 친구가 리뷰를 당분간 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소설과 거리감이 생긴 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그러기로 마음먹었어요. 그 대신 가족이나 친구들이 좋은 리뷰를 전해 주고 있는데, 약간 비겁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좋은 리뷰만 전해 듣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리뷰라면 한 독자분이 “기꺼이 내 생을 근거 삼아 추천하고 싶다”라고 해주신 게 마음에 남아요. 과분하고 엄청난 문장이라서 감격스러웠고, 그분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증명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유원, 수현, 정현처럼 앞으로의 미래,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요즘 윤이형 작가님의 소설 『붕대 감기』를 반복해서 읽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이 도무지 못 미덥고 실망스러워서, 어떤 사람 때문에 내가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어떤 사람을 공격하고 싶어서, 사람에 대한 기억 때문에 힘들어서,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싶어질 때 읽으면 다시금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되는 소설이에요.
유원, 수현, 정현 세 아이들은 ‘증오’라는 감정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아이들이에요. 하지만 증오라는 감정을 지니고서는 쉽사리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 아이들이에요. 분노가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그 감정에 사로잡히면 인간은 편협해지고 단정적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것 같아요. 분노의 농도를 희석시키기 위해 아이들은 스스로 많은 노력들을 하고 그 노력이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앞으로 한발 한발 전진하게끔 하는 것 같아요.
백온유 작가가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까 좀 광범위한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되네요, 하하.
일단은 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코로나19와 관련된 기사를 먼저 찾아보고 있어요. 재난 문자를 확인하고,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끼자고, 제가 있는 자리에서 지킬 수 있는 걸 지키자고 다짐해요.
당장은 단편소설 마감이 얼마 안 남아서 거기에 신경이 쏠려 있기는 하지만 두 번째 장편소설도 조금씩 써 보고 있고요.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지만 많은 분들에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고요.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소설, 어린이, 청소년, 어른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아직 그런 건 딱히 없어요. 앞으로 제가 쓰는 소설의 제목이 기억에 남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 백온유 1993년 경북 영덕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장편동화 『정교』로 2017년 제24회 MBC 창작동화대상을 수상했다. 2019년 『유원』으로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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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im
202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