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데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나 화가별로 살펴보는 것 외에 좀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특정 주제나 그림에 쓰인 도구는 물론 경제학, 의학, 물리학 등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분야의 관점에서 그림을 살펴보는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천문학의 눈으로 예술작품을 살펴보면 어떨까?
인류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별과 우주를 동경해왔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겼다. 최근에는 선사시대 동굴벽화의 그림이 단순히 야생동물 사냥을 묘사한 게 아니라 별자리에 기초한 황도 12궁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림과 역사를 공부한 김선지 작가가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천문학자 남편 김현구 박사와 함께 그림 속에 내려앉은 별과 우주, 신화의 이야기를 『그림 속 천문학』에 담아냈다
『그림 속 천문학』이 작가님 첫 책입니다. 신인 작가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내공이 느껴지는데요, 어떻게 글을 쓰고 책까지 내게 되셨나요?
올해는 제게 참 특별한 해입니다. 『그림 속 천문학』과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두 권의 책을 출간했고, 한국일보에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라는 제 이름을 건 칼럼을 연재하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일들이 빠른 속도로 일어났지만, 사실 이것은 제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간절한 소망 속에서 끊임없이 읽고 메모하고, 인간과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고 노트에 정리하면서 나름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언젠가는 홀로 끄적이는 글이 아닌, 많은 이들이 읽어주는 글을 쓰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시간만 보내고 있던 제게 어느 날 운명 같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인터넷에 올린 짧은 글이 인연이 되어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을 때,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자는 생각뿐이었어요. 자료를 찾고 그동안 써온 독서록과 메모한 공책들을 뒤적이면서 일 년간 이 책에 저의 모든 것을 쏟아붓자는 심정으로 썼어요. 이 책을 쓴 일 년은 제게 힘들지만 참 행복하기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는 설렘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꿈을 한껏 품었던 시간이었으니까요.
이 책을 쓰기 위해 천문학자 남편과 매일 밤 천변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작가님은 천문학에, 박사님은 미술에 관심이 좀더 생겼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남편과 저는 성향과 관심 분야에서 극과 극을 달려요. 남편은 미술에 관심이 없고 저는 천문학과 과학이 무척 낯설고 어렵지요. 집 주변에 아주 예쁜 수변 공원이 있는데 한 바퀴 돌면 8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운동 겸 거의 매일 함께 산책하면서, 남편이 별과 행성, 별자리들에 대해 설명해줬어요. 금성, 목성, 화성, 겨울철엔 오리온자리, 겨울철 대삼각형, 시리우스, 여름엔 백조자리, 견우, 직녀성이 있는 여름철 대삼각형도 보게 되었고, 북두칠성에서 북극성 찾는 법을 배웠어요. 전엔 정말 밤하늘의 별에 관심도 없었고 올려볼 생각조차 못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밤하늘이 달리 보이더라고요.
요즘엔 밖에 나가면 고개가 자동적으로 하늘을 향하고 별들을 찾아요. 예술, 문학에 전혀 관심 없던 남편 역시 요즘에는 미술작품과 그 안에 담긴 인문학적 측면에 조금씩 눈이 뜨이는 것 같아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수십 년간 함께 살면서도 서로 몰랐던 상대방의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예상치 못했던 값진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아담 엘스하이머의 작품 <이집트로의 피신>이 인상적이었어요. 최초의 밤 풍경화로, 은하수와 달의 분화구까지 그려 넣은 그림이죠. 책에 소개한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만 꼽자면?
아담 엘스하이머는 미술사에 최일류급의 화가로 기록될 만한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였지만, 아쉽게도 요절한 데다가 소수의 작품만 남겨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했어요. 이런 점 때문에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애틋한 마음을 갖고 쓴 화가입니다. 엘스하이머와 더불어, 제 마음을 사로잡은 화가는 고야인데요. 우리와는 20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살았던 화가지만, 현대인들도 여전히 목격할 수 있는 인간의 비이성, 어리석음, 종교적 광신을 비판한 아주 현대적인 정신의 소유자여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말년에는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어두운 광기를 유감없이 표출한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그렸는데, 이 그림은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두고두고 생각해보게 하는 음침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독자들은 ‘고흐’의 이야기에 가장 주목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특별히 비중 있게 다루었고요. 고흐에게 별과 우주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고흐는 영원한 스테디셀러가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고흐에게서 정신 질환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끝내 자살로 끝난 고뇌에 찬 삶 속에서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이룬 화가’라는 낭만적 신화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죠. 사실 고흐의 삶은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었습니다. 연거푸 실패한 사랑, 가족과의 불화, 성직에 대한 소망의 좌절, 한평생 인정받지 못했던 예술성, 그리고 가난. 그가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라고 말했듯이 마음 둘 곳 하나 없이 고단한 그의 삶에, 밤하늘의 별은 유일한 안식처였는지도 모르겠어요. 고흐는 밤하늘을 그리며 비극적인 현실을 벗어나 초월적 세계로 가는 몽상 속에서 위안을 받았을 거예요. 우리 역시 시선을 땅에만 두면 현실의 고통 속에서 계속 맴돌지만, 하늘을 올려다보고 광활한 별과 우주의 세계를 향한다면 삶이 뭔가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그림 속 천문학』 면면을 살펴보면 여성 화가들의 작품과 삶에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조지아 오키프’로 이 책을 끝맺기도 하셨고요.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고 지워진 수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들의 작품을 보면 아시겠지만,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최일류급 남성 예술가들에 비해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에요. 그런데 왜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무명으로 사라졌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결국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게 되었어요.
여성인 저 역시 500~600백 년 전 여성들의 삶과 비슷한 상황들을 현대 여성의 생활에서도 여전히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그들이 살아내야 했던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한 가치체계는 아직 현재 진행형인 것이죠. 조지아 오키프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실천한 독특한 여성이라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고, 그에 대한 부분도 흥미진진하게 쓸 수 있었어요. 그는 여성적 삶의 한계를 벗어나 황량한 사막에서 광대한 별과 우주의 세계에 시선을 꽂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산 놀라운 여성입니다.
신인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두 권의 책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간하셨습니다.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은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은?
전에는 무명의 작가 지망생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주눅도 들었고 자신감도 부족했어요. 그러나 제게도 제 글을 좋아하고 응원해 주시는 독자분들이 있고, 주변에서 호감을 갖고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책 출간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는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훌륭한 분들과의 교유를 통해 저의 세계를 넓히고 성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매사에 무모할 정도로 아주 긍정적이고 도전적이에요. 결코 이르지 않은 나이에,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고 있는 나 자신이 좋아요. 어쨌든, 첫 단추를 끼웠으니, 이제 새로운, 더 크고 센 꿈을 꿉니다. 글을 쓸 수 있는 지금 저는 5월의 햇살같이 찬란한 내 안의 충만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글 쓰는 일이 무척 행복합니다.
그림은 좋아하지만, 천문학이 어렵게 느껴져서 망설이는 독자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림 속 천문학』이 독자에게 어떤 책으로 읽히면 좋을까요?
사실 ‘그림 속 천문학’이란 책 제목 때문에 독자들이 다소 어렵게 느끼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요. 다행히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 자신이 천문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저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쉽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천문학이나 미술이나 모두 조금씩 다가간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이 독자들이 천문학과 명화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돕는 안내서가 됐으면 좋겠어요.
* 김선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역사를, 동대학원에서 미술사와 현대 미술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며 미술 관련 도서들을 번역했다. 위대한 걸작을 남기고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미술사에서 이름이 누락된 여성 미술가들과 그들 앞에 놓인 다양한 유형의 편견과 차별, 모순을 꼬집은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해 2019년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일보>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뜻밖의 미술사와 예술가들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하는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를 연재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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