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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100여 명의 죽음을 지켜보며, 생의 끝에서 배운 것들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고재욱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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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들의 모습을 보고 불쌍하다거나 슬프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시선일 뿐입니다. 그분들은 얼마 안 되는 기억을 붙잡고 여전히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고 계시니까요. (2020.06.30)


마흔 살, 사업 실패로 한순간 노숙자로 전락해 영등포 노숙인 쉼터에서 지내던 남자가 있다. 1년 6개월 동안 거리에서 가장 외롭고 차가운 죽음들을 목격하며 다시금 삶의 의지를 회복한 저자가 이후 선택한 직업은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였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한평생 사랑으로 헌신하며 키워낸 자식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 노인들의 삶이 안타까워 그들의 인생과 하루하루를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노인들을 떠나보내며 그들로부터 배운 삶의 의미를 아련하게 담아낸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가득한데, 어쩐지 읽으며 실컷 울고 나면 간절한 마음으로 행복을 꿈꾸게 되는 이상한 책”이다. 현재 강원도 원주의 한 요양원에서 근무하며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작가 고재욱을 만났다.



요즘 어디를 가나 코로나 때문에 걱정인데요. 특히 폐쇄적인 장소에서 집단 거주를 할 수밖에 없는 요양원에서는 더욱 긴장되는 상황일 것 같습니다. 게다가 감염에 취약한 노인들이 거주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병원과 마찬가지로 요양원도 면회가 일절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치매 노인분들이 잘 견디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뉴스를 보고 코로나 사태를 인지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냐”고 서운해하십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98세 할머니의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이 현재 암 투병 중인데 병세가 나빠지고 있다고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제발 어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요. 너무나 안타까운 사정이었지만 감염 예방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요양원으로서는 예외를 둘 수 없어서, 결국 요양원의 유리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두 분을 만나게 해드렸습니다. 아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할머니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버릇이 있었는데요. 이날도 아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같은 말만 되풀이했어요. “잘 살아, 잘 살아….” 유리문 건너편의 아들도 같은 말만 반복했어요. “엄마 잘 지내, 잘 지내…” 하고요.

이 책은 인생의 대부분의 기억을 잃고 요양원에서 살아가는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인데요. 분명 슬픈 사연인데, 읽다 보면 희한하게 그분들이 행복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치매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치매에 걸렸어도 나름대로 행복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치매 환자들의 모습을 보고 불쌍하다거나 슬프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시선일 뿐입니다. 그분들은 얼마 안 되는 기억을 붙잡고 여전히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고 계시니까요. 현재의 기억은 비록 하루를 넘기기 어렵더라도 그분들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분들의 행복을 막는 큰 장애물이 있긴 합니다. 바로 요양원의 환경인데요. 자신의 배설물을 몇 시간씩 엉덩이로 깔고 앉아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 환경을 개선해나가는 것, 노인분들이 치매에 걸렸어도 행복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까지 7년간 세 곳의 요양원에서 근무하며 수백 명의 노인분들과 인연을 맺어오셨을 텐데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책에도 썼지만, 1960년대에 소설가로 활동하셨던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셨어요. 근육이 점차 굳어가는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고, 당뇨 합병증으로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만나게 되었는데요. 도통 마음을 열지 않으시기에 틈틈이 할아버지에게 제가 쓴 시를 읽어드렸죠. 그 후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60년대에 강원일보에 연재되었던 그분의 소설을 대신 다시 고쳐 쓰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다 끝내고 원고를 인쇄해 가져다드리니, 그 원고는 저를 위한 선물이었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글을 써보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이 책을 완성하게 된 데에는 그분의 영향이 아주 컸다고 생각합니다. 제 마음속에 빛나는 씨앗 하나를 심어주고 가신 거죠.

실례지만, 작가님께서 노숙인으로 1년 6개월가량 영등포의 한 쉼터에서 지내셨다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많은 노숙인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삶의 의지를 다시 회복하셨다고 하는데요. 당시 상황들 속에서 어떤 감정, 어떤 생각을 하셨던 걸까요?

쉼터에서 함께 지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뇌경색으로 죽었습니다. 쉼터를 운영하던 교회에서는 삼일장까지는 아니어도 하루 정도라도 그를 추모한 뒤에 장례를 치르자고 했습니다. 장의사가 염습을 할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분명히 제가 그의 수염을 매끈하게 깎아주었었는데, 염을 할 때 보니 턱 주변이 거뭇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수염은 살아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그를 벽제 화장터(서울시립승화원)로 옮겼습니다. 거기에는 ‘유택동산’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무료로 뼛가루를 뿌릴 수 있는 곳이라서 무연고자들의 경우엔 대부분 그곳으로 보내집니다. 돌로 된 아주 큰 유골함이 있는데, 그 속에는 무저갱처럼 깊은 나락이 있었어요.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뼛가루가 섞인다고 했어요.

그날 벽제에서 돌아오던 길에 우리는 전화 한 통을 받고, 병원에 들러 또 한 명의 무연고자 쪽방 주민을 짐칸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화장터로 되돌아가서 유택동산에 다시 올랐습니다. 쪽방 주민 역시 그곳에 뿌려졌습니다. 죽어도 슬퍼해 줄 사람 하나 없는 이들이 가루가 되어 한데 뒤섞여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한기가 들었습니다. 죽고 나면 끝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숙 생활에도 좌절하지 않고 결국 다시 일어선 가장 큰 계기가 글을 쓰면서였다고 하는데요. 그때 어떤 글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쉼터에서 지낼 무렵,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내게로 왔다』를 읽게 되었습니다. 네루다의 시를 읽으며 가슴에서 북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보는 노숙인들과 무료 급식소의 풍경, 그곳의 일상을 적었습니다. 그때 시를 썼던 시간이 현재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양보호사로 격무에 시달리는 중에도 꾸준히 글을 쓰시는데요. 지치지 않고 꾸준히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습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다른 분들께 조언을 들려준다면요?

솔직히 저는 매일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일주일에 두 꼭지 정도의 초고는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이건 꼭 지킵니다. 그리고 스냅사진을 찍듯이 하루를 짧게 표현하는 메모는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 책에 등장하는, 엄마에게 간다며 요양원 복도를 배회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쓸 때는 한 달 이상 그분을 지켜보며 매일 그분의 이미지를 짧은 문장으로 남겼습니다. 실제 할머니 이야기를 글로 옮길 때는 한 호흡에 다 썼습니다. 저는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꾸준한 메모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은유 작가님의 문장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현재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일까요? 앞으로 개선됐으면 하는 점에 대해 목소리를 내본다면요?

가장 시급한 것은 어르신 수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요양보호사 인력 비율을 늘리는 것입니다. 요양보호사 한 사람이 치매 환자 십수 명을 보살피는 구조로는 도저히 찬찬한 돌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많은 부분을 체념할 수밖에 없지요. 또한 어쩔 수 없이 책에는 치매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 단어 또한 사라져야 합니다. 치매는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비하하는 뜻이 담기지 않은, 치매의 정확한 병증을 반영할 수 있는 다른 용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일본에서 치매 대신 사용하는 ‘인지증’이라는 단어처럼요.) 끝으로 열악한 요양보호사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휴일이나 연차 수당은 말할 것도 없고, 치매 환자에게 맞아서 다쳐도 자비로 병원 치료를 합니다. 요양보호사에게 더는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 고재욱

글 쓰는 요양보호사. 강원도 원주의 한 요양원에서 치매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날마다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노인들의 삶이 안타까워 그들의 사라져가는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7년간 요양원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써온 글을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했다.

한때는 사업 실패와 마음의 상처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1년 6개월간 영등포 노숙인 쉼터에서 지내기도 했으나, 거리에서 가장 외롭고 차가운 죽음들을 목격하며 삶의 의지를 다잡기 시작했다. 이후 일자리를 찾아 들어간 경기도 양평의 한 산골 마을에서 짬짬이 요양원 봉사 활동을 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요양보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7년째 사명감을 가지고 치매 노인들을 돌보며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 홈페이지: brunch.co.kr/@jw72ko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고재욱 저 | 박정은 그림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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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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