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라앉는 날, 거북이 수영클럽에서 만나요
거북이처럼 조금 느리지만 또 물에서는 자유롭게, 그리고 끈기 있게 목적지에 다다르는 분들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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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간혹 뭐든 잘 해내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질식할 것처럼 숨 막히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런 때에는 ‘피아노든 캘리그래피든, 그게 뭐든 퇴근길 저마다의 탈출구에서 실컷 딴짓을 한 뒤에야 다음날 다시 차가운 일상으로 뛰어들 힘이 생기는 법이다.

『거북이 수영클럽』은 업무, 육아, 운동 모든 순간마다 힘을 잔뜩 주며 달려온 작가 이서현이 수영을 시작하고 일상의 여백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매일을 100m 전속력 달리기하는 것처럼 살았던 이서현 작가는 수영을 시작하며 비로소 ‘일부러 느리게 가는 시간’을 배우는 중이다.




『(느려도 끝까지) 거북이 수영클럽』 마치 귀여운 소설 같은 제목인데요. 제목에 담긴 비밀이 있다고요. 간단한 책 소개와 제목의 비밀! 밝혀주세요.

워킹맘. 수영인. 갑상선암 환자이면서 허리디스크 환자. 책이 이야기하는 각기 다른 소재를 하나로 관통하는 제목이 무엇일까 오랜 기간 고민했어요. 그러다 갑상선암 환우 후배와 출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거북이'라는 이름이 극적으로 튀어나왔죠. 갑상선암은 다른 암과 비교해 진행이 느려 '거북이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환우회 카페 이름에도 그래서 '거북이'가 등장한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기억해보세요. 거북이들이 바닷속에서 떼를 지어 쏜살같이 헤엄치는 장면이 기억나시나요? 뭍에서는 한없이 느리고 느긋하지만 물속에서는 물고기 못지않게 자유로이 헤엄치는 게 거북이들이기도 하지요. 거북이처럼 조금 느리지만 또 물에서는 자유롭게, 그리고 끈기 있게 목적지에 다다르는 분들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허리디스크, 갑상선 암 콤보에도 수술 바로 전날까지 수영장으로 달려가셨죠. 그때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또 수영이 작가님의 하루에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매일 수영을 하시는 분들은 '물속에서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고 해요. 때로는 제대로 떠 있는 것조차 힘든 곳이지만 물 안에서 몸을 의지대로 움직이다 보면 거기에서 활기와 생명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물속은 잡다한 소음, 핸드폰 소리,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잡념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누군가는 등산을 하고, 누군가는 명상을 하듯 저에게는 하루를 활기차게 살 수 있게 하는 시간이 수영하는 시간이에요. 수술 전에도 마찬가지 마음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남들도 다 안고 있는 병이다' '큰 수술 아니다'라는 위로도 많이 받았지만 인생에 생각지도 못한 '훅'이 들어왔는데 당황하고 좌절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럴 때일수록 허둥대지 않고 차분히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그 수영 한 시간의 쉼표가 필요했었거든요. 가끔 수영장에서 몰래 운 건 지금 이제야 말씀드리는 부끄러운 비밀입니다.  

수영에 대해 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어째서인지 어머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하셨는데요. 어머니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처음 책을 보여드렸을 때 당연히 많이 좋아하셨겠죠?

책의 첫 독자가 엄마였어요. 그전까지 원고를 전혀 보여드리지 않아서 엄마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공식 '모녀 수영인' 탄생에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혹시 글을 읽고 엄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선물로라도 달래기 위해 보라색 수경을 사놓았는데 무척 기뻐하셔서 마음 편히 수경을 선물로 드릴 수 있었어요. 지금은 코로나19로 예전처럼 수영을 다니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열심히 연습하시고, 딸에게 선물 받은 수경을 수영장에서 자랑하시고, 책도 함께 자랑하시는 중입니다. 저도 얼른 연습해서 엄마의 수영 실력을 따라가야 할 텐데 코로나19로 당분간은 요원해 보이는 것이 아쉽답니다.  

플립턴 연습하는 할머니들, 신기록에 도전하는 호주 할아버지, 아마추어 수영대회를 준비하는 수린이 등등. (본인이 가입한 지도 모르고) 동네 수영장의 돌고래를 꿈꾸는 거북이 수영클럽 회원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 특히 마음이 갔던 인물이 있나요?

제가 다니는 수영장 할머니들은 수영 시작 전 힘차게 구령에 맞춰 준비 체조를 하시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어요. 배움에는 나이가 없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여러 신체적 제약이 따르기 마련인데 수영은 그런 면에서 너그러운 운동이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할머니들이 수영장에서 어린아이들처럼 신나게 웃으실 때, 누가 봐도 힘든 훈련량을 채우기 위해 운동선수처럼 질주하실 때 그때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추어가 킥판 잡고 하는 게 뭐 어때서요. 회원님 인생에서 앞으로 킥판 안 잡고 수영할 날이 더 많아요." 명언 제조기 코치 선생님. ‘록쌤’이 궁금하다는 독자분들이 많아요. 그는 과연 어떤 분인가요?

선생님의 가장 큰 매력은 ‘유연한 원칙주의자’라는 것이에요. 운동을 가르칠 때 절대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있으면서도 수강생들마다 체력과 유연성, 신체 한계가 다르다는 걸 알고 그에 맞춰서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보고 ‘아들이 커서 읽을 생각을 하면 너무 기쁘다’고 얘기해주셨어요. 한편으론 너무 미화된 것 아니냐며 걱정하시더니 사이버 가수 아담처럼 영원히 ‘얼굴 없는’ 선생님으로 남으시겠다고…. 그나저나 ‘사이버 가수 아담'이라니. 록쌤이 어느 세대인지 대충 드러나지 않나요? 

아직 ‘저병(접영을 못하는 병)’을 앓는 수린이라고 본인을 평하시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수영장에 출석 도장을 찍고 계신 것 같아요. 앞으로의 수영 인생에서 이루고 싶으신 게 있다면? 그리고 정말로 대회에 나갈 의향은 없으신가요?

책에 추천사를 써주시기도 했던 전 국가대표 김예슬 선수(YS SWIM 대표)가 최근 유튜브에서 ‘전국수영자랑’이라는 재미난 행사를 마련하셨어요. 말 그대로 동네 수영대회인데 재미난 참가자들이 승패를 떠나 정말 즐겁게 수영을 즐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대회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수영을 즐기시는 분들을 만나 ‘왜 수영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대답이 한결같아요.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이 좋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는 ‘수영’이라는 세계 공통어 하나로 각국의 사람들이 금세 가까워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접영을 잘하고 싶다’ ‘자유형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목표보다 저처럼 세계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사연 있는 ‘거북이 수영클럽’ 수영인들을 만나고 싶어요. 

코로나 19로 보통의 일상이 그리운 요즘, 몇 달째 수영을 못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또 이 세상 모든 중급반들에게 응원 한마디 부탁드려요.

코로나19가 각국에서 한창일 때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가 SNS에 올린 동영상을 봤어요. 집안에서 프라이팬을 라켓 삼아, 가구를 네트 삼아 동생과 테니스 놀이를 하는 동영상을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어느 때 보다 일상이 무너진 요즘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소한 루틴을 지켜나간다면 우울과 무기력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경험들이 우리 안에 켜켜이 쌓인다면 나중에 이보다 더 황당한 일에 맞닥뜨린다 해도 의연할 수 있겠지요. 그게 수영이든, 독서든 우리 모두 삶의 가장 사소한 것들만은 지켜나가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매일 수영가방을 챙길게요.  



* 이서현

“slow swimmer, slow learner” 동아일보에서 13년째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접영을 못하는 3년 차 수영인이다. 어린 시절 남들 뛰어놀 때 책만 읽느라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운동 신경이 부족하고 몸과 마음이 유연하지 못하다. 서른 중반 예기치 않은 인생의 풍랑을 만나면서 수영이 최고의 생존 비법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을 차근차근 익혀가며 물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중이다. 접영을 잘하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다.




거북이 수영클럽
거북이 수영클럽
이서현 저
자그마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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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