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래오래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 말이었던 것 같다. 실망시키는 데 두려움이 없기를 바란다는.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높은 확률로 당신을 실망시킬 테지만 우리 평균점을 찾아가보지 않겠냐는 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 소수와의 관계는 견고한 것이다.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서는, 나는 누군가와 진실로 가까울 자신이 없다. 우리, 마음껏 실망하자. 그리고 자유롭게 도란거리자.
김이나 작사가의 에세이 『보통의 언어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김이나 작사가 편>
오늘 모신 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사가 중에 한 분입니다. 아이유, 브라운아이드걸스, 박효신,
슈가맨, 하트시그널, 별밤. 이 정도만 말씀드려도 누구인지 눈치 채셨죠? 김이나 작사가님입니다!
김하나 : 오늘 이야기할 책은 5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책이죠. 『보통의 언어들』. 따끈따끈합니다. 이미 반응이 뜨겁죠.
김이나 : 너무 감사히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방송 덕이 확실히 있는 것 같은데, 두려움이 많았거든요.
김하나 : 어떤 두려움이었어요?
김이나 : 에세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김하나 : 이전의 『김이나의 작사법』 같은 경우는 작사가 언니 누나가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 이 업계에서 얻게 된 것들, 네가 가지고 갈 수 있게 네 손에 꼭 쥐어줄게’ 하는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조금 더 글쓰기에 가깝죠.
김이나 : 맞아요. 작사에 대한 책을 내겠다는 계획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큰 그림이 있었어요. 제가 10년차 정도 지나서 가사에 대한 책을 냈을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이 책 낼 만 하지’ 싶을 때 써야겠다는 목표가 있어서 실제로 10년차 조금 넘었을 때 책을 냈고요.
김하나 : 띠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잖아요. “좋은 일꾼으로서의 글쓰기, 10년간의 생존기”
김이나 : 맞습니다. 그때도 에세이 제안을 주시는 분들은 계셨는데, 조금 날것의 표현을 하자면, 밑장이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웃음)... 에세이라는 것이 그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방송으로 치면 관찰예능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은근히 많은 연예인 분들이 두려워하는 게 ‘카메라 앞인데 어느 정도 연기하겠지’ 싶지만 그게 그렇게 안 된대요.
김하나 : 점점 신경을 안 쓰게 된다면서요?
김이나 : 네. 한 3일만 지나면 카메라가 가구처럼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에세이도 쓰다 보면, 아무리 정제한다고 해도 일단 내가 많이 드러날 테고, 드러나는 것도 문제이지만 혹시 잘못된 게 드러나면 어떡하지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나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도 그런 두려움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생각한 대로 된 것 같아요. 10년 전쯤에 ‘그래도 에세이를 쓴다면 40대로 접어들고 나서 써야 쓸 이야기가 조금 있지 않을까, 지금은 오늘 생각 다르고 내일 생각 다른데 못 쓰겠다’ 했었는데요. 이번에도 그런 두려움이 약간 있었지만...
김하나 : 40대가 돼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지 않아요?
김이나 : 다르기는 한데, 주 간격 정도로는 벌어졌어요. 지난주와 이번 주 정도로(웃음).
김하나 : 제가 이 책을 두 번째 읽었잖아요. 책이 나오기 전에 추천사를 쓰기 위해서 한 번 읽었고, 오늘 팟캐스트를 준비하면서 한 번 더 읽었는데, 한 번 더 읽을수록 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들이 짤막짤막한데 쓸데없는 말이 없고, 미사여구나 나를 포장하기보다는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걸 정확히 간결하게 전달하려고 신경을 정말 많이 쓰고 노력하신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이나 : 진짜 감사해요. 제가 가장 바라는 바인데.
김하나 : 머리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컨택트>의 이야기로 시작하잖아요. 거기 보면 ‘헵타포드 B’ 언어가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파동에 가까운 것이고 어떤 감정이든 이야기든 역사든 흐름으로 전달하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인간의 언어가 그에 비하면 하등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김이나 : 그렇죠. 언어라는 게 교감을 할 수 있는 완벽한 형태의 수단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게 된 지 그렇게 오래 안 된 것 같아요. <컨택트>라는 영화를 보고 제가 느끼고 있었던 언어에 대한 미심쩍은 부분이 확실하게 시각화 돼서 표현된 것 같아서 인용을 했었죠.
김하나 : 머리말에서 소통불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시작해요, 이것은 언어에 대한 책인데. 그것부터 너무 좋았어요.
김이나 : 감사해요. 제가 칭찬을 너무 좋아하는데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아서 듣고 있으니까 머쓱하고 기분이 좋고 그러네요(웃음).
김하나 : 일단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소통불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 불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면 언어를 생각 없이 쓰는 게 아니라 잘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전제 하에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책에 나와 있는 언어들이 우리가 잘 접하기 힘든 단어가 아니라 ‘싫어하다’, ‘사랑하다’ 같은 너무나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들과 그에 대한 생각들이란 말이죠. 이건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어려운 단어면 그 단어의 뜻을 설명하고 뉘앙스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는 걸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면 되는데, 이건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이잖아요. 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 그렇죠. 제가 이런 식으로 생각을 시작한 게, ‘사랑’이라는 말을 빼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수 있나를 생각했을 때 그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분명히 사전에는 해설이 되어 있단 말이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표현은 ‘애틋하게 그리워하다’인데. 그런 식으로 우리가 어떤 단어들을 그냥 막 쓰고는 있는데 진짜 같은 뜻으로써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안 그런 말들이 더 많은 것 같더라고요. 같은 단어 중에서 다르게 쓰이는 대표적인 단어 중에 하나가 ‘성공한 사람’. 성공의 기준이 너무나 다른데 서로 너무 확고해요. ‘뭐니 뭐니 해도 그래도 성공은 이거야’라고 우기는 무리가 있다면 또 다른 무리가 있고. ‘예쁘다’라는 말도 너무 다방면으로 다르게 쓰이는 것 같더라고요. 단어라는 게, 특히 우리의 원어인 경우에는 함정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가사 쓰는 사람이니까 계속 중복된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 미세한 차이를 자꾸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된 직업이라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선후는 어떨까요? 원래 언어의 뉘앙스에 관심이 꽤나 있는 편이었는데 작사가가 되어서 힘을 더 받게 된 건지, 아니면 작사하는 것에 점점 재미를 붙이면서 직업적으로도 내가 이것을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지.
김이나 : 처음에 제가 기질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건 소리로써의 단어들이에요.
김하나 :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김이나 : 네. 구두, 구름... 좋아하는 단어들이 몇 개 있었어요. 설명하기는 힘든데 입 안에서 혀랑 입천장이랑 부딪히는 느낌이 뭔가 자꾸만 소리 내고 싶은 단어들이 있어서, 책을 읽을 때 혼자 소곤소곤 읽는 버릇이 있었어요. 소리로써의 단어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가, 그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있던 습관이고, 커서 작사가가 되고 나서는 그게 너무나 큰 무기가 되어주기는 했어요.
김하나 : 그럼요, 그럼요.
김이나 : 가사는 읽는 글이 아니라 부르고 듣는 소리잖아요. 그게 나만의 이상한 습관 같은 거였는데 나중에 작사가가 되었을 때 발현이 되어준 거고 감사한 일이었죠. 오히려 작사가 되고 나서 더 파고들게 된 것은 단어들의 본질적인 의미들. 사전을 옆에 두는 습관이 있는데, 예전에는 모르는 단어 찾아내는 재미로 뒀었는데, 요새는 내가 뻔히 알고 있는 단어일수록 찾아보면 더 재밌더라고요.
김하나 : 『김이나의 작사법』은 작사가로서의 현실을 낱낱이 알려주는 책이었어요. 아주 독특한 미덕이 있고 어떤 세계를 저한테 확 열어서 보여준 책이었죠. 그런데 이번 책은 들리는 글이 아니라 읽히는 글인데, 어떤 차이가 있었어요?
김이나 : 아무래도 이번 책이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김이나의 작사법』은 저만의 작사 방식이 정답은 아니지만 노하우는 다 알려주겠다는 확고함이 있었지만, 이번 책은 쓰면서 ‘이 이야기가 이야깃거리가 될까? 인쇄감이 되나? 가격이 매겨져도 되나?’ 그런 의심이 계속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한 세 꼭지 정도씩 계속 편집자님께 보내드리면서 봐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다 좋다고 하시니까...
김하나 : 때로는 뭔가 차갑더라도 이런 말이 나한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진짜 좋은 걸까, 이런 식의 의심이...
김이나 : 네, 제가 의심이 많아요.
김하나 : 제가 다시 말씀드릴게요. 아주 좋아요.
김이나 : 아, 감사해요.
김하나 : 책을 3개월 만에 썼다고 하셨는데 그 전에도 계속 말을 관찰해야 했잖아요. 책을 쓰기 전부터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또는 ‘내가 평소에 어떤 말에 대해서 이런 느낌을 갖고 있었다’ 같은 생각들은 오래 쌓여왔을 것 같아요. 이를 테면 ‘슬프다’와 ‘서럽다’와 ‘서글프다’의 차이에 대한 부분이 있었어요. ‘슬프다’를 뭐라고 표현하셨냐 하면 ‘이슬이 맺혀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둔갑해서 ‘슬프다’가 되는 게 아닌가’라고 하셨어요.
김이나 : 이럴 때 두려웠어요. 이게 너무 나만의 느낌적 느낌이라... 약간 동의가 되지 않으세요?
김하나 : 뭐라고 할까요, 솜사탕 기계 안에서 설탕이 돌아가고 있는데 누가 작대기를 딱 꽂아주는 거죠. 그러면 막 말려서 솜사탕이 뿅 나오는 거예요. ‘그래, ‘슬프다’는 그런 느낌이지!’ 이렇게 되는 거죠.
김이나 : 그렇죠, 다행이에요.
김하나 : 그런데 그 작대기를 정확하게 가운데 넣지 않으면 (솜사탕이) 맺히지가 않아요. 그런데 저는 책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찬란하다’의 음가에 대한 말도 그렇고, 그게 ‘눈부시다’와 ‘반짝이다’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김이나 : 아마 카피라이터 출신이셔서 더 그게 와 닿으셨나 봐요.
김하나 :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정말 세심한 관찰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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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