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위협하는 약한 고리는 가족 구성원의 갑작스러운 부재, 그로 인한 가족의 붕괴를 들 수 있다. <침입자> 는 그와 같은 현실의 요소를 스릴러의 장르물로 풀어가는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이는 소설 <아몬드>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타이틀을 얻은 손원평 감독이다. 손원평 감독에게 <침입자> 의 ‘잃어버린 아이, 그리고 돌아왔지만, 기대와는 다른 가족’이라는 테마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주제라고 한다.
건축가 서진(김무열)은 ‘집’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어 트라우마로 살던 ‘집’을 나와 부모님 댁에 함께 머물고 있다. 부모님의 ‘집’에도 사연이 있다. 25년 전 이들 가족은 막내딸을 잃었다. 놀이공원에 갔다가 서진이 날아가는 풍선에 시선을 잃고 동생의 손을 놓았다가 실종됐다.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서진은 동생의 공간까지 더해 부모님이 사는 집을 크게 지었다.
정말로 유진(송지효)이 돌아왔다! 간호사로 근무했다는데 동료의 평판도 좋고 참하게 잘 큰 모습이다. 부모님은 하늘이 가족 한 명을 데려가더니 한 명을 보내주셨다고 서진 듣기 섭섭한 말을 한다. 서진은 유진이 맘에 들지 않는다. 부모님의 말씀처럼 아내의 빈 자리를 차지해서가 아니다. 유진이 돌아오면서 집안의 질서가 깨졌다. 5년 간 가족을 돌봤던 이모님이 갑자기 그만두지를 않나 유진이 서진과 서진의 딸 사이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려 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서진은 클라이언트로부터 서진이 생각하는 집은 어떤 개념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침입자> 에서 집은 일상을 의미한다. 일상은 익숙함이다. 아이의 실종, 가족 구성원의 죽음 등 익숙한 것이 더는 익숙하지 않을 때 일상은 낯설고 무서워진다. 믿음이 붕괴하여서다. 그럴 때 서진 같은 이는 마음을 잡지 못해 혼란해 하던가, 서진의 엄마처럼 의지할 곳을 찾아 종교에 빠지기도 한다. 서진이 집의 질문을 받고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다.
한국 사회는 근 10년 동안 굵직굵직한 사건의 ‘침입’을 겪으면서 사회 구성원 간 믿음을 많이 잃었다. 그와 같은 배경이 손원평 감독으로 하여금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인 집을 배경으로 일상이 깨진 상황을 지옥도로 묘사하게 만든 배경일 터다. 그처럼 메시지의 측면에서 확고한 태도로 이야기를 구성한 것과 다르게 연출에 있어서는 서진의 엄마가 종교에 의지하는 것과 같이 장르의 익숙한 요소를 맹신하는 듯한 알리바이가 짙다.
정신적 혼란을 겪는 주인공의 엉킨 기억의 배경에는 왜 항상 놀이공원의 회전목마가 등장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처럼 <침입자> 는 스릴러로 풀어가는 방식에서 생각나게 하는 영화들이 많다. 어느 날 찾아온 낯선 이의 방문으로 가족의 일상이 깨지는 설정은 <퍼시픽 하이츠>(1990) <요람을 흔드는 손>(1992) 등을, 주인공의 의심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아 범인으로 몰리는 양상은 <셔터 아일랜드>(2010) <기억의 밤>(2017) 등을 떠올리게 한다.
스포일러라 밝힐 수 없지만, 결말에서 밝혀지는 전모의 배경 역시 이 장르에서 유명한 몇몇 영화들을 소환한다. 심지어 위에 언급한 영화 중에 <요람을 흔드는 손>과는 포스터의 디자인도 흡사하여 여러 모에서 <침입자>의 장르적 독창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작가 출신의 감독답게 이야기로 전달하려는 바는 확실해도 장편 연출 데뷔에 따른 위험 부담 때문이었을까, 이를 장르와 이미지로 치환하는 데 있어 기존의 것에 너무 기댄 인상이다.
<침입자>에서 유진의 출현으로 서진의 가족의 겪는 믿음의 붕괴는 그동안 서로를 의지했던 마음이 깨진 것뿐 아니라 낯선 이를 향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는 무작정의 믿음까지 포함한다. 영화 연출에서 경계해야 할 태도 중 하나가 레퍼런스를 향한 무작정의 믿음이다. 장르물은 사건을 풀어가는 전개 양상의 유사한 흐름과 분위기가 있어 창작자의 개성이 확실하지 않으면 아류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침입자>는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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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