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우리는 늘 도중에 있다 (G. 오은 시인)
사실 이미 성공한 사람, 이미 실패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는 늘 도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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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돌아봄이 돌봄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가족을 돌보고 가까운 이들을 챙기고 반려식물에 물을 주고 단어를 돌보며 책을 껴안는 일, 그것은 나의 숨통을 틔우는 일이기도 했다. 한 밤의 다독임에는 늘 책이 있었다. 다독(多讀)하는 일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나와는 어느 것 하나 겹치는 게 없는 사람에게조차 눈길이 갔다. 나도 모르게 다독다독 감싸고 달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거듭하고 있었다.

 

오은 시인의 산문집 『다독임』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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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오은 시인 편>


오늘 모신 분은 불현듯 저희 <책읽아웃>에 나타나 환하게 빛을 밝혀준 시인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벌써 눈치 채셨죠? <측면돌파>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고 있는 <옹기종기>의 다정한 집주인, 두 번째 산문집 『다독임』 으로 돌아온 말맛을 아는 시인! 오은 시인입니다.

 

김하나 : <김하나의 측면돌파>에 게스트로 나왔는데, 기분이 어때요?


오은 : 진짜 이상하네요. 제가 항상 하나 작가님의 자리에 앉아서 진행을 하잖아요. 이 자리가 편한데, 지금 그 옆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여기가 내 자리가 맞나?’ 하고 어색한 자리에 다시 한 번 발을 들인 느낌이 드네요.


김하나 : 저는 늘 앉아있던 자리에 있는데도 오은 시인이 옆에 앉으니까 약간 긴장이 되는데, 오은 시인은 자리도 바뀌어 있으니까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싶네요.


오은 : 저도 진행자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뭔가 진행자와 진행자가 만나는데, 제가 <김하나의 측면돌파>에 나오는 게스트 분들처럼 분위기를 잘 이끌고 가면서 답변할 수 있을지 걱정되네요. 항상 질문을 던지는 입장이었다가 답변을 해야 되는 입장이니까, 이런 포지션의 바뀜 때문에 오는 곤란함도 조금 있습니다.


김하나 : 하지만 지금 이 스튜디오 안에 있는 사람들은 평소의 우리와 다른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오은 효과’에 말려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오은 시인을 초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게, 사실은 지금 『다독임』 이라는 두 번째 산문집이 8년 만에 나온 시기이기는 하지만, 이것과 상관없이 초대를 했어요.


오은 : 그러니까 『다독임』 이 나오는 줄도 모르고 계획을 하신... 계획이 다 있으셨군요.


김하나 : 계획이 있었죠. 왜냐하면, 오은 시인이 저한테 시집을 두 권 선물하기도 했었고 그 시집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제가 시집을 즐겨 읽는 타입도 아니고 어떤 시가 좋아도 시인한테 뭐라고 말을 건네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잘 모르는데 빈말을 하기도 싫고. 그래서 ‘오은 시인의 시를 쭉 한 번 읽어봐야겠어’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은 거예요. 알잖아요?


오은 : 네, 알죠.


김하나 : <책읽아웃>에서 소개하는 책도 읽어야 할 게 많고, 아는 사람의 책도 나오고...


오은 : 그리고 김하나 작가님이 <삼천포책방>에서 소개하는 책들이 다 두꺼운 책들이에요.


김하나 : 그렇죠(웃음).


오은 : 충분히 공감합니다.


김하나 : 잘 알고 계시는군요(웃음). 그래서 ‘오은 시인의 시집을 읽고 싶은데 자꾸만 다른 책에 밀려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다가 발상의 전환이 생긴 거죠. ‘차라리 오은 시인을 초대하면, 내가 <책읽아웃> 준비를 하는 겸 오은 시인의 시집을 공적으로 쭉 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초대를 드린 거죠. 그리고 또 뭐가 있냐 하면, 오은 시인이 저를 뭐라고 부르시죠? 마이크가 꺼져 있을 때?


오은 : 누나. 하나 누나.


김하나 :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냅다 ‘하나 누나’라고 불렀는데, 물론 은희경 작가님한테도 ‘희경 누나’라고 부르시고, 아빠보다만 어리면 형이고 엄마보다만 어리면 누나잖아요. 그렇게 저한테 누나라고 부르고 반말도 하고, 저도 얼결에 말을 놓은 거예요. 그런데 저는 말을 놓는 데 하세월이 걸리는 사람인 거죠.


오은 : 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인데...


김하나 : 너무너무 오래 걸리고, 친해지면 조금씩 말을 놓기는 하겠지만 친해져도 말을 놓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오은한테 말려들어서... ‘오은 효과’죠.


오은 : 부산스럽게 만들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 다음에 반말을 하게 한다, 오은 효과입니다.


김하나 : 그렇죠. ‘나는 하나 누나이고 오은한테 반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지, 그러나 나는 오은 시인과 친한가?’ 하고 생각해 보면 헷갈리는 거예요.


오은 : 친해질 수 있는 기회는 많았는데 접점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기회를 잡고 ‘그 날 봅시다!’ 이렇게 돼야 하는데 그런 경우가 별로 없었던 거죠.


김하나 : 그렇죠. 그래서 제가 오늘 초대를 한 겁니다.

 

김하나 : 이 말부터 하고 시작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오은 시인의 시집을 순서대로 다 읽었습니다.


오은 : 『호텔 타셀의 돼지들』 부터 『나는 이름이 있었다』 까지.


김하나 : 그렇죠. 『너랑 나랑 노랑』 도 읽었고 『소년이여 요리하라』 도 읽었고...


오은 : 그 책에 실린 「김밥」을 제가 썼죠.


김하나 : 네. 그리고 『다독임』 까지 다 읽었는데요. 제가 시집을 한 권, 두 권씩 읽으면서 ‘이 사람 천재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격주로 같이 진행하고 있는 진행자가 너무 천재였음을 그동안 모른 채 살았구나’라는 반성을 하면서, 정말 ‘이런 사람이 다 있네!’ 하고 탄복을 했습니다.


오은 : 저는 이런 자리인 줄 몰랐는데(웃음)... 물론 칭찬 폭격기이신 건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시집 이야기를 하면서 혼을 빼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김하나 : 마침 제가 뇌과학에 관련한 책들을 같이 읽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언어를 사용할 때 뇌의 어떤 부분들이 순간적으로 자극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시집을 읽으면서 저도 여기에 전이되는 것처럼 두뇌의 수많은 부분들이 자극돼서, 이걸 촬영해 보면 불꽃놀이 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시집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런 자극을 받는데 이 시를 쓰는 사람의 속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게 점점 더 궁금해졌어요.

 

김하나 : 『다독임』 의 표지를 보면 귀여운 아이 그림이 있잖아요. 여러분이 썸네일을 보고 헷갈리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이 귀여운 아이는 오은 시인이 아닙니다(웃음). 오은 시인도 어렸을 때 아주 귀여웠겠지만. 그래서 질문 드리고 싶어요. 요만한 아이였을 때, 어렸을 때 말문이 트이고 할 때, 어떤 아이였어요?


오은 : 당시에는 집에 있는 가장 커다란 미디어가 TV이잖아요. TV를 보면서 말을 배웠다고 해요. TV에서 나왔던 단어를 적재적소하게는 못 써도 어떻게든 활용하려고 애썼던 아이라고 들었어요.


김하나 : 말이 트이면서부터 말을 수집하기 시작한 거네요. 이미 그때부터.


오은 : 네. 만약에 ‘그냥’이라는 부사가 있다면 ‘그냥 먹었어’라는 말을 접하면 제가 그걸 활용해서 ‘그냥 잤어’, ‘그냥 말했어’, ‘그냥 배고팠어’ 하는 식으로, 그런 말을 썼다는 것 자체가 엄마나 아빠한테는 신기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고 그걸 기억하시더라고요. 말을 잘 했다고 하고, 하지만 말이 많은데 주술 호응은 잘 안 되니까 ‘얘는 조금 어수선하구나, 조금 불안해 보이는구나’ 하셨다고 해요. 형이랑 유치원을 같이 다녔는데, 형이 유치원 졸업할 때 저도 같이 졸업을 했어요. 저는 일곱 살, 형은 여덟 살 때. 그때 어머니랑 아버지랑 두 분 다 유치원에 오신 거예요. 와서 유치원 선생님한테 물었죠. 형 이름이 ‘한진’이에요. ‘한진이 참 차분하죠?’라고 했더니 얘는 신사가 될 거라고 했대요. 그러면서 ‘은이는 조금 정신없죠?’라고 하니까 정신이 많이 없고, 말하는 걸 저렇게 좋아하는 아이는 처음 봤다고 했대요. 그런데 은이는 다른 게 또 있다고 해서 어떤 거냐고 물어보니까, 얘는 말을 독점하려는 것보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한테 관심 받는 걸 좋아한다, 자신이 말할 때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안 보이면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며 울기까지 한다, 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셨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 애가 집에서만 말이 많은 게 아니고 한결 같아서 다행이기는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도 합니다(웃음).

 

김하나 : 『다독임』 을 보면서 제가 ‘오은 시인한테 이런 능력이 있나?’ 싶었던 게 ‘어쩜 저렇게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라는 거였어요. 저는 사실 옆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 들려요. 그런데 오은 시인은 자기 말을 많이 하는 와중에 남의 말도 잘 듣고, 그거에 대해서 귀를 쫑긋하고 생각해 보고 메모도 하고, 이걸 굉장히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오은 : 제 말을 하면서 상대방 말을 듣는 것은 사실 초능력인 것 같아서 그건 잘 못하는 편인데, 산책을 하거나 할 때는 제가 말을 많이 시간은 아닐 거 아니에요. 제가 말하는 걸 좋아하니까 친구들은 ‘너 집에 가서도 혼잣말하지?’라고 하기도 하는데, 집에 가면 정말 가만히 있어요.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저도 에너지도 없고 오늘 할 말을 다 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은 거죠. 산책 같은 걸 가면 자연히 관찰을 하게 되고 들여다보게 되는 거예요. 이게 중요한 게 뭐냐 하면, 풍경이라는 것은 다 지나치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내가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하면 새로운 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면 귀가 열리고 그 말이 들려요. 카페에서도 왜 집중을 하게 됐냐면, 원고를 쓰기 싫으니까 집중이 다른 데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옆 테이블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웃음). 벤치에서도 딴 생각하다가 아이들이 뛰놀고 있으면 관찰하면서 아이들이 어떤 말을 구사하는지 듣게 되고. 그럴 때 집중하는 시간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김하나 :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 중에 너무 좋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마침 『다독임』  뒷면에 쓰여 있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조금 해주세요.


오은 : 김민정 시인이자 편집자께서 이 글이 너무 좋았대요. 그래서 실으셨는데요. ‘캔디크러쉬사가’라는 사탕 깨는 게임이 있잖아요.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그 게임을 하고 있어서 유심히 보니까 재미가 있어 보여요. 그런데 그게 외국 게임이잖아요. 아이들이 사탕을 다 못 깨서 ‘You Failed’라고 메시지가 뜨니까 ‘아, 실패한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다섯 살, 여섯 살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제가 ‘실패가 뭔 줄 아니?’라고 했더니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그 톤이 너무 좋은 거예요. 아직 실패를 모를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실패가 그렇게 가벼운 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성공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시간이 있었고요. 그걸 가지고 쓴 글이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였죠.


김하나 : 저는 이 글의 경쾌한 터치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는데요. 실패는 다시 한 판 하라는 거예요, 이게 정말 한 방 맞는 것처럼 너무 좋았어요. 그 한 방이 ‘내가 주먹에 힘을 실어서 너한테 감동을 주리라’가 아니라 너무 경쾌한데, 이게 오은 스타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은 : 아마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 “여전히 나는 도중에 있다”일 텐데, 도중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사실 이미 성공한 사람, 이미 실패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는 늘 도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다독임 오은 저 | 난다
다독임은 나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 행하기보다 나보다 힘이 약한 사람에게 절로 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남의 약한 점을 따뜻이 어루만져 감싸고 달래다”가 다독임이라 할 때 이 책의 미덕 역시 그 지점에서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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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