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서울에서는 철도 노동자들의 전면 파업이 단행 되었고 크고 작은 모든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특히 영등포 공장지대에서는 경성방적, 종방, 대한방직, 조선피혁, 철도 공작창, 경성전기, 등 주요공장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서울과 영등포의 도심지역에서는 노동자 학생 시민들이 유엔 위원단의 방한 반대, 단독정부 수립 반대, 외국군의 동시 철퇴를 요구하며 수십 차례에 걸쳐 시위를 계속했다. 이와 같은 노동자 파업과 학생의 동맹휴학과 사무직 시민들까지 합세한 시위는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부산 경남과, 대구 경북, 그리고 광주 전주 군산 전라도, 대전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이백여만 명이 참여한 대중적인 시위였다. 이는 대도시뿐만 아니라 농촌 군읍에서는 더욱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이지산은 남대문로와 용산 부근에서 시위대의 선두에 있었고 오후가 되면서 진압과 돌파를 거듭하던 끝에 소강상태가 오자 몇몇 학생들과 함께 한강다리를 건넜다. 영등포에서 더욱 거센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영등포 역전과 시장 로타리의 사거리는 온통 인파로 뒤덮여 있었다. 군중은 날이 저물었는데도 흩어지지 않고 경찰서 세무서 구청 등지를 둘러쌌고 관공서를 지키던 경찰대는 고립된 채로 위협사격을 했다. 이날 전국적으로 수백여 명이 살상 당했다. 그리고는 이후 열흘간 검거 선풍이 몰아쳤다. 전평의 파업 지도부는 물론이고 민청의 집행부와 대학, 전문, 중학, 등의 학생위원들에 대한 수배자 명단이 내려와 경찰과 청년단원들이 잡으러 다녔다. 이때에 전국적으로 8천 5백여 명의 노동자 학생 시민이 검거 투옥되었다. 지산이는 영등포의 학우들 집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그를 며칠 간 재워주었던 중학교 동창이 잡혀간 뒤에야 ‘아버지를 찾아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지산은 샛말 동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교회에 숨어서 통금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주위에 인적이 완전히 끊기고 집들의 전등불도 차례로 꺼져 깊은 밤이 되자 그는 집으로 찾아갔다. 대문을 두드리고 목소리를 내면 이웃에서 들을 것 같아서 담을 넘었다. 마당에 내려서서 조심스럽게 발을 떼는데 안방 문이 열리면서 속삭이는 신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산이 왔니? 어서 들어와라.”
지산은 방에 들어서자 주저앉으며 저절로 울음이 터졌다. 어머니는 앉은걸음으로 아들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아들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녀는 아들이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윗목에 차린 밥상에 덮어두었던 보를 젖히면서 말했다.
“배고프지? 어서 밥 먹어라. 잠깐 기다리렴, 국 데워 올 테니.”
신금이가 부엌으로 내려갈 때 공방 쪽에서 이백만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도 기척을 듣고 깨어났다는 소리였다. 신금이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이날도 어김없이 주안댁이 나타나 초저녁잠을 깨웠다고 나중에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이 남편처럼 자기 곁을 떠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허겁지겁 말없이 식사를 마친 지산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다리고 앉았던 신금이에게 말을 꺼냈다.
“어머니 저 아버지 찾아……갈라구요.”
신금이는 아무 대답 없이 앉았더니 눈이 그렁그렁해지면서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무릎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래 아버지 보고 싶지?”
“네, 여기선 모두 퇴학 시키고 구속할 거래요.”
그녀는 방안을 서성이며 장롱을 열고 아들의 속옷과 옷가지들을 추려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신금이는 부엌에서 쌀과 콩을 솥에다 덖고 빻아 미숫가루를 만들어 그것도 륙색에 넣고서야 침통하게 앉아있던 지산에게 일러주었다.
“인천으루 가거라. 선옥이 이모가 널 도와줄 거야. 아버지 만나고 나서……얼른 돌아와……”
신금이는 입을 막고 참고 있었는데 안방 문이 열렸다. 이백만이 방문 밖에서 엿듣고 있다가 들어왔던 것이다. 신금이는 그제야 마음 놓고 울음을 터뜨렸다.
“머야? 니가 어딜 간다고?”
할아버지가 다가앉아 손자의 가슴을 두 손으로 두드리며 외쳤다.
“아이구, 이놈아. 이 못된 놈들아아.”
어쨌든 길 떠나는 소년과 어머니 할아버지 사이에 나눈 말은 별로 많지 않았다. 두 고부는 이지산의 큰절을 받았다. 이백만은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었고 대문을 나서기 전에 신금이가 아들에게 말했다.
“할머니에게두 인사해야지……”
지산은 그게 무슨 영문인지 금방 알아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에이 관두세요’하고 쓴웃음 지으며 달아났을 테지만 곧 자세를 갖추어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그가 집을 나서는데 가까이 다가선 신금이가 아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얼른 와서 엄마하구 같이 살자!”
이지산은 그것이 무슨 주문처럼 귀에 박혔다고 그랬다. 그가 해주 거쳐서 평양에 도착했을 때 이일철이 역에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작업복 차림에 낯선 레닌모를 쓰고 있었는데 무표정하고 과묵했다. 부자는 전차를 타고 철도원학교까지 갔다. 지산은 학교 식당에서 아버지와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했고 교장실에서 보리차를 마시며 그동안의 일과 집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가 영등포 시장에다 점포를 냈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잠깐 고개를 쳐들고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이일철은 아들에게 다짐하듯이 물었다.
“희망 부서가 철도원이라고?”
“예, 저는 기관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루도 멈춘 적이 없어요.”
“철길이 끊겨 버렸다. 그런데 이젠 니 엄마를 지킬 사람이 없겠구나.”
하고 나서 그는 다시 말했다.
“하여튼 열심히 수련해라. 지금 철도 운수는 나라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교원 한 사람이 지산을 기숙사까지 안내하러 찾아오면서 부자의 대화는 끝났다.
이지산이 육 개월 동안 단기속성 과정으로 기관수 교육을 받는 동안 아버지와 세 번 만났다. 두 번은 함께 식사했고 다시 한 번은 발령받아 임지로 가기 전에 교장의 숙소에서 부자가 같이 하룻밤을 잤다.
지산은 평원선의 화물부에 배속 되었고 종점은 진남포와 원산이었다. 그는 견습 기간에는 진남포와 평양 간 화물 기관차의 기관조수로 일했고 견습을 마치고는 평양에서 원산까지의 화물열차 조수가 되었다. 경의선은 대개 평야를 달리는 노선이었지만 북으로는 의주에서 막히고 남쪽은 개성도 못 가서 평산에서 멈추었다. 이제 아버지처럼 너른 만주벌판을 달리던 날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운수부는 화물 운송을 해방 이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밤낮 근무를 독려했고 무엇보다도 선로의 보수와 연결 작업은 현지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나섰다. 철도변과 모든 기관차에는 ‘생산돌격’이라는 구호가 붉은 페인트로 씌어 있었다. 산악지대를 허덕이며 기어오르고 굽잇길을 돌아가는 답답하고 지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지산은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자고 일어나니 모든 철도 종사원은 운동장에 집합하라는 전달이 떨어졌다. 당 간부가 단상에 올라 ‘조국해방전쟁’이 발발했으며 영용한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삼팔선을 돌파하여 진격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제부터 모든 철도 종사자는 군무원이 되어 보급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열여덟 살이어서 전쟁 초기에는 그대로 평원선의 화물차 조수를 하고 있었다. 칠월 말에 지산은 기관사로 승급되었고 남조선 대전으로 가서 대기하라는 발령을 받았다. 이일철은 그때에 철도원양성학교 교장에서 운수부 간부로 옮겨가 있었다. 지산은 폭격 맞아 다 부서져 버린 평양 조차장 공작소 부근의 예전 철도관사 숙소로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집은 반쯤 무너져서 방 한 칸만이 남아 있었고 석유곤로가 놓인 황폐한 숙소에서 일철은 밥을 짓고 돼지고기 두부찌개를 끓였다. 그리고 됫병들이 소주가 상아래 놓여 있었다.
“축하한다. 기관수로 승급 되었다지?”
지산이는 그저 예, 하고 아무런 감동 없이 대답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차려진 밥상을 잠깐 내려다보았다. 방금 푼 밥 두 그릇과, 김치 한 보시기, 그리고 가운데 커다란 찌개 냄비가 놓였다. 빈 양은그릇 두 개가 각자의 밥 그릇 옆에 놓였으니 그게 술잔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먼저 술을 따라 주었고 자기 잔을 내밀었다. 지산이 일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나서 단숨에 들이켰다.
“너 이제 몇 살이더라?”
“열여덟이요.”
“아 그렇겠구나. 기관수가 되고 전쟁터에 나가다니 참 세월이 빠른 거냐, 세상이 잘못 된 거냐?”
“곧 통일이 되겠지요 머.”
지산이가 중얼거리자 일철은 자식의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두어 번 긁어주었다.
“저거 봐, 수염이 나기 시작했잖아. 니 얼굴에 이철이 놈이 슬슬 나타나구 있어.”
묵묵히 술잔을 나누다가 일철이 지산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여긴 타관 객지야. 절대루 죽어선 안 된다.”
부자는 그날 밤 만취했다. 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유행가 ‘신라의 달밤’도 부르고 가곡 ‘산유화’도 불렀다.
지산은 처음 먹는 술에 과음까지 해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새벽에 목이 말라 깨니 아버지도 옆에서 쪼그리고 잠들어 있었다. 춥지는 않았으나 지산이는 발치에 늘어진 홑이불을 끌어당겨 아버지를 덮어주었다.
부자가 철도관사 앞길에서 작별할 때에 이일철이 아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가만히 말했다.
“엄마한테 돌아가거라……”
철도원 삼대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Lookin
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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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이라는 영화에서 어린병사가 애닯게 부르던 노래가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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