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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91화 : 어느새 양말은 구멍이 났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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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철은 나꿀 최 선생 댁에서 그해 겨울을 나고 삼월 초까지 머물러 있었다. 전평 영등포지회에서 보낸 레포는 사무국 요원들 중에 절반 이상이 체포되고 이일철과 조영춘에게는 일급수배령이 내렸다고 전해왔다. (2020.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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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이이철이 마지막 수배 중에 그 집에 숨어 있었다. 최 선생은 그 후 교장을 지내고  정년이 되어 퇴직했으며 도림동 관사에서 고향집인 시흥군 나꿀로 들어가 살았다.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교직에 있었고 고향 집을 지키며 살던 아우는 경성 문안으로 들어가서 살았다. 이일철이 영등포 공작창 농성이 분쇄되고 나서 그 집에 찾아갔을 때 최성칠 선생은 그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그는 해방직후 지역마다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 되었을 적에 시흥군 위원장을 맡았다. 이는 물론 그의 제자들 중에 선생의 인품을 아는 사람들이 그를 천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학급의 제자였던 최달영 또한 기억하고 있었고, 자기가 숨겨 주었던 이철이가 자수하여 첫 번째 옥살이에 들어갔을 때 구치소로 면회를 가기도 했었다. 어느 날 최 아무개 총경의 좌익 테러 피살사건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자 그는 신문을 들고 행랑채의 일철에게 달려왔다.

 

 “큰일이 났네. 최달영이가 살해 되었다네. 이게 그 야마시타 최달영이 맞지? 개명한 이름이 최용이라더군.”

 

얼결에 신문을 받아서 단숨에 읽어치운 일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편으론 시원하면서도……안타깝군요.”

 

 “참 그 녀석 인생두 허망하군.”

 

 “좌경 모험주의입니다. 저들에게 빌미를 준 셈이지요.”

 

 “그러한가?”

 

 “차라리 우리가 거듭 당하면서 인민들을 분노하게 해야 합니다.”

 

 “소련은 조선 인민들의 사는 사정과 형편으로 보아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미국은 어떻게든 남한 단독 정부를 세우려 하는 것 같지. 이승만이 미국 간 것도 그 때문일 거야.”

 

 “나진과 인천에 소련군과 미군이 상륙한 날부터 전쟁이 시작된 셈입니다. 일본은 패망하기 전에 그 점을 알고 있었어요.”

 

이일철은 나꿀 최 선생 댁에서 그해 겨울을 나고 삼월 초까지 머물러 있었다. 전평 영등포지회에서 보낸 레포는 사무국 요원들 중에 절반 이상이 체포되고 이일철과 조영춘에게는 일급수배령이 내렸다고 전해왔다. 그는 인천에 있는 박선옥의 연락을 통해서 아내가 김포 친정에 가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보 진영은 전국적으로 삼일절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삼일절 그날 좌익은 남산에서 행사를 가졌고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행사를 치렀다. 좌익 단체들은 행사를 마치고 남대문 쪽으로 내려오고 우익은 을지로와 미스코시 백화점 조선은행 앞을 거쳐서 또한 남대문로 방향으로 내려왔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선두가 된 행렬이 남대문 앞을 지나 경성부청 쪽으로 가고 있던 중이었는데 우익 행렬의 선두였던 청년단원들 수백 명이 각목 등을 들고 좌익 행렬의 중심부를 무찌르며 몰려들었다. 이 지점에서의 충돌은 계획되어 있던 터여서 무장 경찰이 대기 중이었는데 이들은 좌익 행렬의 군중을 향하여 발포하기 시작했다. 이날의 발포로 수십 명이 살상 당했다. 여기서 검거된 사람들은 포고령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다시 검거선풍이 몰아 닥쳤고 각 지역 인민위원회와 남로당 지하 간부들에 대한 추적이 일상화 되었다.

 

그날 이일철은 최선생네 안채 사랑방으로 쓰고 있는 누마루 달린 건넌방에서 최 선생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최 선생 집이 나꿀 동네의 오른쪽 끝에 있었는데 신작로 큰길은 왼쪽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동네라고 해봤자 최선생 댁과 두어 집이 기와집이었고 나머지 십여 채는 모두 고만고만한 초가집들이어서 서로가 무슨 반찬에 밥을 먹는지도 잘 알만한 작은 동네였다. 동네 개들이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자 최 선생은 집었던 바둑돌을 떨구고 잠시 귀를 기울였다.

 

 “누가 오는 모양인데?”

 

그때에 이미 울바자 밖에 두런두런 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고 이일철은 늘 긴장하고 지내던 터라 얼른 일어나 뒤꼍으로 나가는 미닫이를 열었다. 바깥은 창호지 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여럿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다가 대청과 마당 쪽의 미닫이가 동시에 열렸다. 대청 쪽에 두 사람, 마당에는 앞에 한 사람 그 뒤로 정복의 순경들이 가득 늘어섰다. 앞에 섰던 자들은 모두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꼼짝 마라!”

 

문이 열리자마자 힐끗 보고는 이일철이 툇마루에서 뛰어내려 뒤꼍으로 나갔다. 바로 앞에서 권총을 겨누고 있던 자가 먼저 발포했다. 그를 막아서려고 일어나던 최 선생이 가슴에 총을 맞았다. 대청마루에 섰던 자는 얼른 몸을 돌려 북편의 문을 밀쳤지만 겨우내 밖에서 문고리가 걸려있던 문이라 잠시 주춤했다. 이일철은 평소에 보아 두었고 직접 연습까지 했던 터라 한달음에 뒤꼍을 지나 북편 야산으로 달려 올라갔다.

 

 “어느 쪽이냐?”

 

마당에서 사랑방 지나 뒤꼍으로 몰려온 형사대와 순경들은 우물쭈물하던 사이에 결정적 순간을 놓쳐버렸다.

 

 “저기, 저쪽입니다!”

 

야산의 나무 사이로 사람의 자취가 보이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 얼른 쫓아가 잡아.”

 

그날 경찰 병력은 열다섯 명이었고 사찰계 형사 다섯 명에 지휘자는 주임 경위였다. 주임은 사랑방에서 허탈하게 서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최성칠 선생이 피를 흘린 채 몸을 웅크리고 쓰러져 있었다. 그는 아직 절명하지 않았다. 형사는 구둣발로 최성칠의 몸을 밀어젖히고는 상반신을 숙여 얼굴을 들이대고 다그쳤다.

 

 “이일철이 언제 왔나? 어디루 뛴 거냐?”

 

낮게 기침하며 입에서 피를 토해내더니 최선생의 동작이 일시에 멎었다. 다른 형사가 툇마루에 서서 말했다.

 

 “죽은 거 같은데요.”

 

 “괜히 나대니까 죽는 거야. 이 사람 건준 시흥위원장 했지.”

 

그들이 최 선생의 집을 급습하게 된 것은 영등포서에 보관된 해방 전 고등계 조서와 동향보고서 철을 며칠 동안 뒤진 결과였다. 그들은 이이철이 처음으로 수배를 받아 자수할 당시 그가 최성칠 교사의 집에 있었고 최는 형제의 담임이었다는 것이며 이일철이 혼인할 때에는 주례를 서주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날 오전에 한 차례의 동네 사찰을 통하여 누군가 손님이 와서 오래 묵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찰은 그 손님이 수배 중인 이일철이라 확신하고 체포 병력을 동원했던 터였다.   

 

주임은 담배 한 대를 꺼내어 붙여 물면서 대청마루로 나왔다. 집안에 가족이라고는 부인과 가사 일 돕던 동네 아낙뿐이었는데 마침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두 여자는 앞들에 봄 냉이 캐러 나가있었던 참이었다.  

 

이일철은 관악산 줄기를 타고 북편으로 올랐다가 우회하여 남서쪽 방향을 잡았다. 그는 산 속에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괭메이 쪽으로 하산했다. 방에서 도망치면서 신발을 신을 틈이 없어 양말만 신고 있었다. 어느새 양말은 흙투성이에 구멍이 났다. 일철은 광명리 동구에서 젊은 행인을 만나 돈을 주고 신발을 얻어 신을 수가 있었다. 작업복 상의 안주머니에는 늘 간직했던 비상금이 들어 있었고 이제 위기는 모면한 것 같았다. 그는 인천으로 방향을 정했고 소사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일철은 비상시의 일차 접선자를 알고 있었다. 인천의 경성콤 조직책이었던 김근식의 오랜 레포가 박선옥과 닿는 선이었다. 이일철은 교회당에서 그녀를 만나 박선옥에 연락이 닿았고 인천 배다리에 안착했다. 인천 지회는 총평의 전국 파업 결정에 따르지 않고 독자노선을 유지했던 탓에 다른 지역보다 평온하고 안전했다. 그들은 내부에서 여러 공장의 조직들을 보다 광범위하고 대중적으로 강화시키는 일에 진력 중이었다. 남로당 중앙을 맡게 된 김삼룡 등은 김근식의 조직 운영 방식을 신뢰했다. 그들 모두가 수배중이라 일제 때처럼 레포를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김근식은 이일철을 만나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이이철 동지와 헤어지던 일이 꼭 어제만 같습니다.” 

 

일철은 아우를 회상하며 그가 눈물을 보이는 것에 자기도 모르게 감동을 받았다. 현재 내가 처한 막다른 상황을 이철이는 몇 번이나 겪어냈을까. 

 

 “아우의 활동은 해방이 되고서야 주위에서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왜정 때와 다름없다고들 그러더군요.”

 

일철의 말에 김근식은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수백만의 인민 대중이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이러한 혼란이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죽고 없어진 뒤에라도 새로운 사회는 오게 되겠지요.”

 

김근식은 잔기침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중에 일철은 그가 전쟁 직전에 오랫동안 시달려온 결핵으로 지하활동 중에 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김근식은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가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진 않고 늘 미흡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시간이 무척 오래 지나서야 그러더군요.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우리는 먼지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아요.”

 

그리고 김근식은 일철을 만난 용건에 대하여 말을 꺼냈다.

 

 “여기서 더 이상 일하기가 어려워진 조직 간부들은 일단 삼팔선 이북으로 송환하게 되어 있지요. 현재 남로당 중앙은 해주에 있습니다.”

 

 “그럼 다시는 돌아올 수 없습니까?”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임시조치입니다.”

 

이일철은 차마 가족에 대한 사항은 묻지 못했다. 어느 곳의 누구든지 활동가들은 가족은커녕 자기 혼자 몸을 돌보기도 버거운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김근식이 그의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고 곧 눈치를 챘다.

 

 “시국이 좋아지면 다시 돌아와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면 언제 어떻게 월북하게 됩니까?”

 

일철의 질문에 김근식은 소리를 내어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이십만 씨라고……잘 아실 텐데요.”

 

 “저희 작은 아버지 되십니다. 만나 뵌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분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겁니다.”

 

김근식은 종이쪽지를 꺼내어 몇 자 적어서 일철에게 내밀었다.

 

 “이게 그분 주소예요. 여기서 아주 가까운 뎁니다.”

 

거리에서 헤어지기 전에 김근식은 이일철에게 다시 일러주었다.

 

 “내일 저녁 때 그분에게 미리 전화를 해놓겠습니다. 일전에 제가 만나서 작은아버지 되시는 분에게 얘기한 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일철은 주소지를 찾아갔다. 율목동에 있는 한옥이었는데 담 대신 높다란 축대가 쌓였고 계단을 올라간 언덕 위에 산울타리를 둘렀다. 철문에 달린 초인종을 누르니 중년 사내가 나와 그를 안내했다. 정원을 지나 유리창을 내달은 현대식 한옥 대청마루 끝에 낯익은 이십만이 나와서 내다보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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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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