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업계나 마찬가지겠지만 많은 이들이 다양한 목표를 품고 회사를 드나든다. 프리랜서 전향이 꿈인 직원도 있고, 관리자급으로 승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도 존재하며, 그저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 않겠어!’라며 장래희망이 ‘월급 루팡’이라는 동료도 만난다. 같은 직장에서 ‘편집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일하지만 속내는 천차만별인 것이다. 그들에게 왜 편집자를 직업으로 선택했냐고 질문하면 같은 대답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대답임을 밝힌다. ‘편집자란 이래야 하는구나’보다는 ‘이렇게 생각하는 편집자도 있구나’ 수준으로 살펴주었으면 한다.
한번은 출판사 경력직 면접장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한 시간 반 정도 이루어진 면접 자리에서 가장 인상 깊은 질문이었다.
“왜 편집자가 되겠다고 결심하셨어요?”
이런 질문은 경력직 면접장에서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해서 머뭇거리던 것만 떠오르고 뭐라고 답했는지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여기저기 주워들은 말로 대충 얼버무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게. 나는 왜 편집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을까.
12구짜리 멀티탭이 된 것만 같은 편집자 삶에 지쳐 수시로 사직서 제출 시기를 주시하는 소규모 출판사 편집장 8년차 김먼지 편집자는 그의 독립출판물 『책갈피의 기분』 뒤표지 카피를 “어쩌다 편집자 같은 걸 하고 있을까”라고 적어놓았다. 아마도 본인이 책 사이에 낀 책갈피 같다는 자조 섞인 물음인 듯하다. 책 속에 고백해놓은 그의 감정과 언어들이 나와 같아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동시에 출판 인생 곳곳에 적힌 감사와 소소한 즐거움이 언뜻언뜻 묻어나는 문장들을 보면 ‘그래, 이 기분에 편집자를 계속하지’ 생각에 함께 미소 지었다. 왜 편집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는지는 흐릿하지만, 편집자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알겠다. 바로 작은 감사의 순간들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열려 있는 SNS에서 예비 편집자나 신입 편집자들이 종종 팔로우를 신청한다. 그 덕에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엿볼 기회가 생겼다. 하나같이 능력과 끼가 차고 넘치는 친구들. 벌써부터 이토록 간절하고 구체적인 상을 그려낸다는 점에 놀라곤 한다.
고백하자면 신입 시절 나에게는 편집자에 대한 뚜렷한 상이 없었다. 첫 직장에서 편집장이 나를 쫓아내며 했던 “(이 직업을 택한) 너도 실수했고 (너를 뽑은) 나도 실수한 걸로 치자”는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다가 다음 직장에서 늘 나의 성장을 독려해주는 사수를 만났고, 그 덕에 출판의 재미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을 뿐이다.
당시 연봉 1,600만 원에 월급도 13분의 1로 나누고 심지어 입사 후 석 달까지는 수습이라며 월급의 70퍼센트, 즉 80만 원도 되지 않는 돈을 받았다(13분의 1로 나누는 계산법도, 수습에게 월급의 70퍼센트만 지급하는 것도 불법이다). 그럼에도 그 회사에 잔류했던 유일한 이유가 사수의 존재였다.
직장생활 1년을 맞이했을 때, 사수는 나를 삼계탕 집으로 데려갔다. 그간 고생했다는 덕담은 덤이었다. 벌써 1년이라니, 뿌듯함에 천진하게 삼계탕을 먹는 내게 사수가 이야기했다.
“이제 1년이 되었으니 이 일을 계속할지 그만둘지 결정하세요.”
설마 나 또 내쫓기는 건가? 첫 직장에서 두 달 만에 쫓겨난 기억이 아직 선명해 가슴이 철렁했다.
‘그때 첫 직장도 편집장이 커피 사준다고 불러내놓고는 나가라고 말했는데….’
이 삼계탕이 그 커피와 같은 의미인가 싶어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사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가 속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10년차 편집자가 된 사수는 적성에 맞는 직업을 고민할 시간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일에 치여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가 문득 돌아보니 본인은 편집자와 맞지 않음을 깨달았단다. 그제야 자기 성향에는 의외로 외제차 딜러가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꿈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처럼 돌아보니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지 말라고, 지금 아니라고 생각하면 금방 다른 길로 가도 괜찮다고 독려해주었다.
“자기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무뚝뚝하던 사수는 내게 꼬박꼬박 존대했다. 존중의 표현이었으나 내게는 늘 무섭고 거리가 느껴지는 요소였다. 그런 그는 원하는 바가 있을 때면 앞에 ‘자기’라는 호칭과 함께 반말을 사용했다. 그러면 나는 한없이 허물어져서 그의 말이라면 어떻게든 해내고 싶어졌다. 그런 대상이 내게 ‘편집자상을 돌아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며칠 말미를 줄 테니 열심히 고민한 뒤에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몇 날 며칠 고민했다. 편집자란 무엇인지, 이 일에 얼마나 간절한지 등 거창한 질문들을 계속 던져보았으나 딱히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10년 뒤에는 그와 같은 프로 편집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도의 소망은 있었다. 그가 내게 편집자로서 재능이 있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기로 했다. 계속해볼 테니 지도편달 부탁한다는 내 말에 그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시간이 지나 그 나이와 연차가 되고 보니 그가 얼마나 나를 아꼈는지 알겠다. 천둥벌거숭이를 1년 동안 갈고닦아 겨우 쓸 만하게 만들었으면서 ‘네 꿈이 아니라면 그만두어도 좋다’는 말을 꺼냈으니 말이다. 그건 상사가 아닌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조언이다. 일이 안 풀릴 때면 ‘팀장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곤 했다. 그분 덕분에 꾸준히 내 편집자상을 다듬어낼 수 있었다. 그가 한 번 브레이크를 걸어주었기에 얻은 수확이다.
정말 어쩌다 편집자를 하고 있지만, 들여다볼수록 의외로 나와 잘 맞는 직업이었다. 나는 성취욕이 강한 사람이다. 아무 기반도 없던 아이디어에 내 노력이 더해지면 눈에 보이는 성과로 드러나는 출판의 전 과정이 신기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보이고, 편집 끝에 책이라는 물성이 남는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한 권을 마무리할 때마다 얻는 지식은 또 다른 소득이다. 물론 작업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휘발되곤 하지만.
편집자가 모든 출판 관계의 중심인 점에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피곤함 안에서도 내가 모두를 연결한다는 생각에 즐거운 경우가 더 잦다. 물론 서로 얼굴 붉히고 나 좀 봐달라며 읍소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책의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기 위함이기에 마감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보듬어주는 관계들이 미덥다.
어떤 직업이든 자문자답의 시간은 필요하다. “왜 이 일을 하기로 결심하셨어요?”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이 적절한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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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의 기분김먼지 저/이사림 그림 | 제철소
책장을 열면 “연봉을 13으로 나눈 쥐꼬리를 월급으로 받고, 유명 인사가 작고하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새도 없이 한 달 만에 관련 도서 5종을 뚝딱 찍어내고, 핫식스와 레드불과 스누피 커피우유 가운데 어느 게 가장 각성 효과가 큰지 꿰고 있는 편집자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지은(출판편집자)
12년차 출판노동자. 2009년부터 지금까지 6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인생은 재능이 아닌 노력’이라는 좌우명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분투했다. 덕분에 재능 없이 노력으로 쌓은 12년 출판경력은 부끄러움과 자부심이 공존한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동료나 저자와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고,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기도 하는 출판이 재미있어서 이 언저리에 계속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