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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89화 : 날씨 좋겠군. 내일 해치웁시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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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달영은 그를 보면서 ‘내가 저 자를 어디서 보았던가, 하면서 매우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그때에 방금 지나갔던 두 청년이 뒤에서 달려들며 그의 양팔과 어깨를 붙잡았다. (2020.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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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이일철은 철도공작창 농성이 청년단과 깡패들에 의해 진압된 이후에 다른 전평 간부들처럼 도피에 들어가 있었다. 지도부와 연결이 끊이지는 않았지만 연락을 자제하고 있던 상태에서 실무 부서의 활동가들 가운데는 투쟁을 격화 시켜야 된다는 측과, 일정 기간 냉각기를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는 측으로 나뉘게 되었다. 박헌영의 도피 이후에 남로당을 맡게 된 새 집행부가 군정청과 만나서 타협을 모색하게 되면서 총파업의 열기는 식어가는 중이었다. 이때에 당 중앙은 파업을 전국적으로 통제하거나 끌고나갈 능력이 없었다. 지방에서는 경찰의 공세가 더욱 거세져서 검거와 살해가 일상화 되었고 쫓긴 사람들은 지방의 산간으로 도피하여 보잘 것 없는 무기를 가진 야산대를 이루었다. 이러한 지방의 분위기는 주춤하고 있던 서울에도 전해져서 청년 노동자들과 학생들 중에는 항쟁을 주장하며 폭력투쟁에 나서는 그룹도 있었다. 그들은 주로 그 지역에서 유명하던 친일파로 다시 군정청의 지원을 얻어 득세하게 된 자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청년들이 노리는 것은 대부분 일제 때의 고등계 경찰 출신들로 현직에 있는 자들이었다.


전평 영등포지회의 지회장 안대길은 검거 당했고 부지회장 이일철은 도피 중이었으며 대의원들도 뿔뿔이 흩어졌지만 공장의 각 세포들을 총괄하는 중앙사무국은 실무 책임자들로 일제 때처럼 지하에서 활동을 계속 중이었다. 책임자는 금속 부문의 오랜 활동가 지정호였고 부책이 조영춘이었다. 그들은 안대길 방우창 이이철 박선옥 등과 함께 경성콤의 마지막 조직원들이었다. 방우창은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고 숨졌으며 이이철은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했던 터였다. 조영춘은 최달영의 수하인 낯익은 형사가 전평 사무실에 찾아와 부지회장 이일철과의 회합을 주선하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최달영은 야마시타 정탐조를 이끌며 인천과 영등포에 연결되어 있던 국제파와 재건파 그리고 수년에 걸쳐서 그들이 가까스로 통합한 경성콤 조직원들을 일제 검거하여 출세했던 가장 주요한 적이었다. 그가 용산 경찰서장으로 철도국 전평회관의 급습을 총지휘했다는 것과 공작창 농성의 분쇄에도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조영춘 등은 잘 알고 있었다. 최달영은 물론이고 그의 수하였던 야마시타 정탐조의 형사와 보조들은 모두 승진하여 용산서와 영등포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중앙사무국은 지하에서 이들의 명단과 근무처를 조사하여 조직원들에게 알렸다. 누구보다 첫 번째로 최달영의 처단은 조영춘 등이 맡기로 했다. 조영춘은 여성 두 사람과 남성 셋으로 공작조를 짰고 지휘는 자신이 맡았다. 그들은 노량진 쪽 산동네에 빈 적산가옥 한 채를 얻어들었다. 기간은 열흘 이내로 잡았다. 공연히 질질 끌다가는 주위 사람들 눈에 띄게 될 게 뻔했다. 그들은 이 무렵부터 서울 변두리에 몰려들기 시작한 삼팔따라지 시늉을 하며 이북에서 내려온 두 가족 행세를 했다. 박선옥과 이영순은 한강 건너 공장에 다니는 시늉이었고 그들의 남편인 두 사내는 행상으로 십대의 견습공은 아우로 조영춘은 가끔씩 방문하는 그들의 친척으로 보였다. 저녁이 되면 식구들은 모두 엇비슷한 시각에 귀가하여 저녁을 지어 먹었다. 둘러앉아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동선을 파악해야지.”


조영춘이 말하자 박선옥이 받았다.


 “우리가 청파동 집에는 가봤어요. 모두 일곱 명이오. 경비 경찰이 교대로 지킵니다. 최가 마누라, 식모, 아들딸이 있구요, 학교 다녀요. 그러구 운전수가 있지요.”


그들은 맡은 임무에 따라서 제각기 보고를 했다.


 “차라면 군용 지프차겠군. 매번 차를 타나?”


 “출퇴근 때에는요.”


 “식전에 부근 공원으로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갑니다.”


 “규칙적인가?”


 “아침 일찍 나가더군요. 물론 안 나가는 날도 있습니다.”


 “동행자는 없나?”


 “제가 세 번 관찰했는데 매번 혼자였습니다.”


조영춘은 말했다.


 “그 자식 돼지치기 해먹었다는군. 뭐 돼지하구 말이 통할 정도루 동물을 좋아한다든가 그랬어.”


 “돼지치기가 서장까지, 우아 정말 출세했네. 누가 그래요?”


 “내가 부지회장님한테 들었지. 보통학교 같이 다녔다네.” 


닷새쯤 진행된 동선 관찰에 의하여 거사 장소는 일단 효창공원으로 정해졌다. 어느 날 서쪽 하늘을 바라보던 조영춘이 식구들에게 말했다.


 “날씨 좋겠군. 내일 해치웁시다!”


이튿날 조영춘은 노동자 네 사람을 데리고 새벽 다섯 시에 출발했다. 역시 조의 일기를 보는 눈매가 정확했는지 날씨는 전형적인 조선의 가을하늘이어서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나중에 그는 박선옥에게 다음 날 천기를 보려면 전날 서쪽하늘의 노을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한강인도교를 건너 청파동 최달영이네 집 부근에 도착한 것이 새벽 다섯 시 사십 분 쯤이었다. 조영춘과 노동자 두 사람은 효창공원 입구의 솔밭 가운데 자리를 잡았고 소년공과 노동자 한 사람이 최달영의 집 부근에 각자 떨어져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은 최가가 그날따라 산책을 나오지 않거나 또는 누군가 동행이 따라 붙을까 불안하고 초조했다. 정확히 여섯 시가 되었을 때 조짐이 있었다. 동그랗게 전지한 향나무와 사철나무가 우거진 적산가옥의 담장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인기척이 들리고 나서 여섯 시 이십 분 쯤에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개가 먼저 나오고 목줄을 쥔 사내가 따라 나왔다. 개는 세파트였고 덩치는 컸지만 어딘가 껑청하고 미숙해 보이는 것이 아마 육 개월 정도의 강아지였을 것이다. 최달영은 간편한 운동복 차림에 농구화를 신고 있었다. 그는 줄을 팽팽하게 끌고 앞으로 뛰쳐나가려는 듯한 개를 나직하게 꾸짖으며 걷기 시작했다. 소년은 일부러 그의 앞으로 걸어와서 지나갔고 뒤따르던 노동자에게 일러주었다.


 “최가 맞아요.”


그들은 차례로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서 최달영의 산책로를 따라갔다. 그리고는 임무가 끝났으므로 소년은 중간에서 남대문로 방향으로 빠지고 행상차림의 노동자 혼자 덮개를 씌운 빈 지게를 지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그는 미나리 밭 건너편 공원의 솔숲이 보이는 곳에서 일행들이 최가의 산책을 확인했으리라 생각하고 옆길로 새었다. 최달영은 늘 다니던 길이었으므로 방심하고 개의 배변을 기다려 주기도 했다. 때로는 개를 꾸짖으며 뛰기도 하고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 그가 공원 입구에서 오르막에 접어들었을 때 목에 수건을 건 남자 두 사람이 내려왔다. 최달영은 오랜 경찰답게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살폈다. 아침운동을 나온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는 곧 경계를 풀고 걷는데 앞에서 국민복 차림의 남자가 신문을 둘둘 말아 쥐고 다가왔다. 최달영은 그를 보면서 ‘내가 저 자를 어디서 보았던가, 하면서 매우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그때에 방금 지나갔던 두 청년이 뒤에서 달려들며 그의 양팔과 어깨를 붙잡았다. 최달영은 개의 목줄을 놓쳤고 소리를 지를 틈도 없었다. 앞에서 다가온 자가 신문지에 쌌던 칼을 그의 배에 재빨리 찔러 넣었던 것이다. 뒤에서 최를 붙잡은 자들도 한 팔로는 그의 상반신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칼을 뽑아 양옆구리를 수차례 쑤셨다. 터진 논고랑의 물처럼 피가 쏟아져 나왔고 최달영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가 위를 향하여 눈을 치뜨고 올려다보자 앞에서 맨 처음에 칼질을 했던 사내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야마시타! 나 조영춘이다. 방우창 이이철 열사가 저승에서 기다리구 있을 거다.”


최달영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목을 떨구면서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들은 최달영의 두 다리를 잡아끌고 가서 솔숲 사이로 던져버렸다. 그들은 주위를 살폈다. 목줄에서 풀려난 강아지는 미나리 밭에서 뭔가 냄새를 맡고 한창 뛰어다니는 중이었고 부근에는 인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살폈다. 조영춘이 칼질할 때에 정면에서 솟는 핏줄기가 튀어 국민복 앞섶이 붉게 물들었고 붙잡고 옆구리를 찔렀던 노동자들도 각각 왼쪽 오른쪽에 피가 흠뻑 묻었다. 그들은 상의를 벗어서 풀숲에 던지고는 셔츠바람이 되어 현장을 떠났다. 당시에 좌익은 백주 대낮에 버젓이 테러를 당하는 판이었지만 일제 고등계 출신 경찰에 대한 개별적인 테러도 그에 못지않았다. 폭력은 쌍방에서 차츰 노골화되고 있었다. 


 이튿날부터 용산서와 영등포서의 사찰계가 발칵 뒤집혀서 용의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두 경찰서 사찰계의 인원은 합쳐서 육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예전 최달영의 야마시타 조원들이 과장 계장으로 포진하고 있었다. 경찰은 아직도 현재형으로 간직하고 있는 예전 활동가들의 정보 보고서들과 심문조서들을 뒤지고 경험자들의 판단에 의하여 최달영 사건은 경성콤 영등포 조직과 관련이 있음을 확신했다. 그들이 보기에 용의자들은 모두가 전평의 실무선들이었다. 


형사대가 이미 비워진 전평사무실은 물론 모든 대의원 중앙위원 사무국 그리고 사찰 명단에 오른 모든 평회원 노동자들의 집을 덮쳤다. 수백 명이 연행되었고 영등포 소재의 모든 공장은 조업을 멈췄다.


바로 거사가 있었던 날 밤에 박선옥이 신금이의 샛말 집을 찾아왔다. 그녀는 짐을 꾸려 륙색을 짊어지고 어디론가 먼 길을 떠나려는 행색이었다. 두 여자는 마당에 쪼그려 앉아 속삭이며 말을 주고받았다.


 “이제 검정개들이 광분할 거예요.”


박선옥이 말했고 검정개란 당시에 일제와 미군의 대를 이은 앞잡이였던 경찰을 일컫는 민중들의 별칭이었다. 


 “왜 또 무슨 일이 일어났어?”


 “우리 쪽에서 야마시타를 처단했어요.”


 “아아……”


그때에 신금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한다. 시동생 이철의 원수를 갚았다는 생각보다는 진작부터 피신한 남편 일철의 신변이 더욱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영영 남편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절망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낼부터 아마 난리가 날 거예요. 우리는 여기 살 수 없어요. 언니, 식구들 데리고 어서 피해요.” 


신금이는 그때에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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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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