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하는 작품마다 우리 문단과 독자에게 흥미로운 충격을 안겨 주는 송미경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물기가 가득 어린 눈동자의 흔들림 같기도, 보였다 순식간에 사라진 눈송이 같기도, 시간이 멈춰 버린 어느 저녁의 하늘빛 같기도 한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소설, 『나는 새를 봅니까?』 이다. 송미경은 ‘나’를 주어로 하는 생경한 의문문을 우리의 귀에 고리처럼 걸어 놓는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지 못해 외출하지 않는 나, 흰 새를 보았다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나, 나지 않는 냄새를 맡고, 외진 골목에서 눈감아 버린 기억과 맞닥뜨리는 나, 멈춰 버린 시간 속을 반복해서 걷는 '나'들이 등장한다.
송미경 작가는 2008년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로 웅진주니어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돌 씹어 먹는 아이』 로 제5회 창원아동문학상, 『어떤 아이가』 로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단편동화 「돌 씹어 먹는 아이」를 그림책과 희곡으로 다시 쓰기도 했다.
새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청소년소설로는 한참 만이에요. 책을 처음 받아 든 날 전국에 큰눈이 내렸어요. 그날의 창밖 풍경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첫 청소년 단편집 『나는 새를 봅니까?』 가 태어나게 된 것이 선생님께는 어떤 사건이었는지요.
올겨울은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어요. 작가의 말을 쓰던 날이 입춘이었는데 그날 눈이 내렸고 책을 처음 집에서 받던 날도 눈이 내려서, 이 책이 제겐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을 보는 장면으로 기억돼요. 한 송이마다 가볍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들이 쌓여 희게 덮이는 풍경으로요. 마무리 단계에 임박해서도 붙잡고 있던 단편이 「겨울이 오기 전에」라는 작품인데, 그 작품의 마지막에도 눈이 내려요. 외삼촌네 다녀오는 길에 주인공이 택시 안에서 졸면서, 차창을 뚫고 눈발이 편지지 위에 내려앉아 쌓이는 장면을 보게 돼요.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엔 반드시 눈이 내리게 해야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지면 위에 눈이 쌓이며 문자를 덮는 장면을 쓰고 나자 그 작품 한 편을 끝낸 느낌 이상으로, 드디어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이 책의 출생은 다 포기한 순간에 눈을 만난 기분이에요. 이제까지의 과오, 살면서 혹은 글을 쓰면서 저지른 실수들이 눈에 덮이는 듯한.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렸어요. 표제작이자 소설집의 제목인 『나는 새를 봅니까?』 는 언뜻 익숙하지 않은 문장의 형태여서 여러 번 되새겨 읽게 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자 하신 건지 궁금해요. 더불어, 각 편의 이야기를 조금씩 소개해 주시겠어요?
「신발이 없다」는 자신에게 꼭 맞는 신발이 없다는 이유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한 아이가 신발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나는 새를 봅니까?」는 다른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는 새를 일상 속에서 발견하고 응시하게 된 아이의 이야기예요. 「나지 않는 냄새」는 윗집에 정체불명의 이웃이 이사 온 뒤부터 온 마을 또래 친구들이 주인공만 맡지 못하는 냄새에 시달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에서는 척박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주인공이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을 가진 듯해 보이는 외삼촌 집에 동생과 다녀오는 날의 이야기입니다. 「나를 기억해?」는 마주하고 싶지 않고 눈감아 버리고 싶은 어떤 것들을 주인공이 겪어 내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마법이 필요한 순간」은 어설프게 마술을 배운 주인공으로 인해 온 세계가 멈춰 버리고 침묵의 세계를 지나는 동안 벌어지는 일입니다.
한 편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 그런 개입은 최소화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품이 가야 할 길이 진흙탕이거나 안갯속이거나 모래사막이거나 아늑한 방이거나 쇠락한 도시의 뒷골목일 수 있는 여지를 하나로 이끌고 싶지 않아서요. 무엇보다 저는 누군가 이 책을 읽는다면 순서대로 읽어 달라고 꼭 말하고 싶어요. 작품과 거리 조절도 안 된 상태고 머릿속에 생각이 꽉 차서 뭔가 뒤죽박죽인 것 같던 이야기가 이런 순서로 엮이고 나니 안정된 느낌이 들었거든요.
「신발이 없다」의 유주, 「나지 않는 냄새」의 유리나 「마법이 필요한 순간」의 은희와 조지, 하나같이 개성적인 인물들이지만 읽고 있자면 그 아이들의 모습이나 냄새가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그려집니다. 소설 속 인물을 묘사할 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주변의 인물들을 많이 참고하시나요?
사람마다 자신이 가장 강렬하게 붙잡고 있는 시절이 있을 텐데 저에게 그 시절은 청소년 시절이에요. 가장 많은 생각을 했고 가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낸 시절이기도 해요. 그때의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은 선명하게 살아 있어서 오늘의 삶에서도 바래지 않은 사진으로 펼쳐지곤 해요.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들, 내가 보았던 풍경들, 내가 들었던 말들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또 한편 우리 집엔 이제 사춘기가 끝난 큰아이와 한창 사춘기를 지나는 둘째, 이제 사춘기가 시작된 막내 이렇게 세 명의 청소년이 있어요. 이 아이들의 모습이나 생활, 동선 같은 것들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자 저는 이 아이들과 함께 사는 또 다른 사춘기 시절의 제 모습이 겹쳐서 같은 시간대 위에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생각하는 일이 많아요. 작품 속 인물이 실재하는 한 인물 그대로인 경우는 없지만 제 안에서는 분명한 상을 갖고 시작해요. 키나 얼굴, 목소리 톤이나 말의 빠르기, 말할 때의 표정이나 움직임 같은 것이 분명히 정해져 있어요. 저는 글을 쓰기 전에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한번 영상을 머릿속에서 찍어 보고 그걸 묘사해 가는데요. 이미 주인공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잡혀 있어서 그 아이가 무슨 말을 어떤 방식으로 풀지 알고 있기 때문에 대사를 적을 때 소리를 듣는 심정으로 쓰곤 해요. 제가 이야기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미 어디엔가 존재하는 이야기, 언젠가 제가 머릿속에서 본 장면을 재현한다고 생각하고 써요.
책 표지에 사용된 사진을 직접 찍으셨다고 들었어요. 낮게 깔린 익숙한 스카이라인과 따스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노을빛이 많은 심상을 몰고 오는 표지였습니다. 표지가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요. 평소에 어떤 사진을 많이 찍으시는지도요.
저는 어려서 외가에서 자랐어요. 특히 막내 외삼촌은 사진 찍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셨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저는 만년필에 잉크를 주입하거나 필름 카메라에 필름을 갈아 끼우는 법을 배웠어요. 소풍을 가면 카메라를 빌려가서 친구들을 찍어 주기도 하고 가끔은 집 안의 사물들을 찍곤 했어요. 가지런히 정돈된 이불, 외할아버지의 재떨이, 커튼으로 들어오는 빛, 소파의 굴곡진 다리 같은 것들을 찍은 뒤 용돈을 모아 두었다가 사진관에 직접 맡기고 또 기다려서 그 사진을 찾아오곤 했어요. 집까지 오는 길에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고 또 보고 했던 게 생각나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것보다 사진을 찍는 일이 제 본성에 가장 잘 맞는 행위 같아요. 그래서 평소에 무엇이든 찍어 두는 편이에요. 누구에게 보여 주거나 어디에 쓸모 있게 쓰려는 게 아니라 제가 심심할 때 누워서 다시 보기 위해 찍어 두는 거죠. 이 사진도 그런 목적 없는 사진 중 하나였는데 평소 제가 사진 찍기를 즐긴다는 것을 알고 편집부에서 제안해 주었어요.
평소에 건물이 하늘과 닿은 경계선의 모양을 찍는 것을 좋아해요. 하늘 빛깔에 따라 부동의 존재인 건물들이 전혀 색다른 이미지가 되는 것이 재미있어서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대에 찍어 두곤 했는데, 이렇게 표지가 되다니 기뻐요.
선생님께서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동화작가로서는 이미 두터운 팬층이 형성되어 있고, 그림책이나 희곡, 비평글도 쓰셨지요. 한 가지 주제로 그린 일련의 그림들을 모아 개인전을 연 적도 있고, 낙서, 만화, 에세이, 사진 들도 즐기시는 것 같아요.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계시지요. 독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활동도 꾸준하시고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글을 쓰는 시기와 일하는 시기, 공부하는 시기 등을 구별해 두는 편이에요. 한 가지에만 푹 빠져있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제가 워낙 산만한 사람이라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잘 수행하지 못해요. 주로 겨울엔 새로운 글을 시작하는데 이번 겨울엔 지난해 마치지 못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어요. 올봄부터는 몇 년째 미뤄 오던 그림도 시작해야 하고요. 어릴 때는 놀다가 놀다가 지루해지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서라도 놀곤 했어요. 미용실 놀이를 한다고 제 머리는 물론 동네 친구들 머리를 다 똑같이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놓는다거나 영어를 전혀 모르면서도 중학교 다니는 이모의 영어 숙제를 돕고 싶어서 이모의 영어 노트에 지렁이 글씨를 잔뜩 써놔서 이모를 울린다거나 하는 식의 자잘한 말썽들을 쉼 없이 저질렀어요. 글을 쓰면서 그 모든 삶을 직접 살아주는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니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리 좋지 않은 체력으로도 저는 정말 많은 말썽을 부릴 것 같아요.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여기에 모인 단편들은 쪽지에 쓰인 다정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쪽지를 주고받는 사이는 아주 친밀한 사이고, 쪽지로 주고받는 이야기는 아주 작고, 곧 잊혀도 되는 이야기”라고 하신 부분이 마음에 쿵 와닿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그려지는 눈부시게 하얀 큰 새의 깃털이 꼭꼭 접힌 수많은 쪽지들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보내는 쪽지를 적으셨나요?
청소년 시기뿐 아니라 우리는 살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못 잡기도 하고 내가 믿고 있던 세계로부터 퇴출당하기도 하고 내가 예상치 못했던 사건 앞에서 당황하기도 해요. 계속 실패를 경험하는 아이들과 친구로 지내고 싶어요. 문학은 실패를 경험한 자들의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정식으로 해야 하는 말이 아니라 웅얼거림이나 농담이 될 이야기들을 마음껏 서로 주고받고 싶어요. 그런 쪽지를 기꺼이 나도 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프러포즈예요. 다만 제가 먼저 용기를 내서 쪽지를 독자에게 보내는 거죠.
끝으로 질문에 없어서 못하셨던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쪽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두근두근 여쭙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좀 번아웃 상태가 되어 다소 무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글쓰기를 10년 정도 쉬면서 옷 장사를 하는 게 어떨까 궁리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책이 나오고 그 책을 읽고 나니 새로운 곳으로 갈 차표를 얻은 기분이에요.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제게 내 안으로 돌아와 탐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차표가 될 거예요. 요즘 늘 노트를 가지고 다니는데 자꾸 새로운 이야기가 떠올라서 일단 간단히 그리거나 써두고 있어요. 쪽지를 쓴다는 심정으로 가볍게요. 당분간 낙서를 충분히 해 보려고 새 펜도 장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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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를 봅니까?송미경 저 | 문학동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지 못해 외출하지 않는 나, 흰 새를 보았다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나, 나지 않는 냄새를 맡고, 외진 골목에서 눈감아 버린 기억과 맞닥뜨리는 나, 멈춰 버린 시간 속을 반복해서 걷는 나 들이 등장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