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칼럼] ‘글만’ 쓰는 것과 ‘글도’ 쓰는 것
글 ‘쓰고사니즘’을 추구하는 꿈 많은 청년에게, 먹고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먹고사니즘’을 강조했으니 참으로 무정한 자라는 힐난을 들을 수 있겠다.
글ㆍ사진 표정훈(출판 칼럼니스트)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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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내가 번 돈을 공개하곤 한다. 예컨대 “회의 수고료 20만 원, 원고료 12만 원 오늘 입금됐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돈다발 쥐고 흔들며 자랑하는 심정으로 올린다. 돈 자랑이 가장 기분 좋은 자랑이라 했던가. 어디 길가에서 그럴 순 없으니 SNS에서 한다. 자랑할 만한 액수도, 다발로 묶을만한 액수도 아니지만. 둘째,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건지, 말하자면 나의 생활의 애환이랄까 그런 걸 지인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직업란에 ‘작가’라고 적어 넣는 사람 가운데 글 쓰는 일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는 극소수다. 책 내는 족족 1년 안에 1만 부 정도 팔리는 부러운(!) 작가가 있다 치자. 책 정가 1만5천 원에 인세율 10%면 1천5백만 번다. 책을 매년 내긴 어렵다. 매우 부지런해서 2년에 한 권씩 낸다면 인세로 한 해 750만 원 번다.

 

저서 외에 다른 글로 원고료도 번다 하자. 평균 잡아 원고지 1매에 1만 원 정도 받는다. 지금 쓰는 이 원고는 아마 그것보다 많을 것 같다. 고맙다. 매달 50매 정도 쓴다면 한 해 600만 원. 저서 인세 750만 원과 매체 원고료 600만 원을 합하면 1천3백50만 원, 한 달 평균 110만 원 좀 넘는 소득. 참고로 2019년 기준 최저 임금 월급은 174만 원이다.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글 쓰는 일 외에 다른 소득원이 뭐가 있더라? 강연료 수입이 있다. 적게는 4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정도지만 100만 원 받을 때는 한 해 한 번 정도 있을까 말까다. 각종 회의 참석 수고료도 있다. 대략 20만 원 정도. 심사위원 수고료를 받을 때도 있는데 50만 원 정도. 그밖에 이런저런 다른 일을 한다.

 

창작 활동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즉 전업 작가라는 게 자랑할 만 한 건 아니다. 뭔가 비장해보지만 사실 비루하기 쉽다. 왠지 낭만적인 것 같지만 실은 그저 가난하다. 짠하고 찡하다. 전업 작가가 더 독립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다른 호구지책에 종사하며 글 쓰는 편이 더 나은 점도 많다. 오히려 그 편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쓰고 싶은 글만 쓸 수 있다. 글 쓸 시간 내는 게 문제일 수 있긴 하지만, 시간이 많은 ‘게으른 전업’들도 드물지 않다.

 

삶과 생활과 세상에 대한 현실 감각을 유지하는 데에도 ‘비전업 작가’가 더 유리하거니와, 비(非)전업 작가가 글에 대해 더 절실해진다.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카프카, ‘도박꾼 직업’의 부업으로 작가 생활을 한 것 같은 도스토옙스키. 작가면 그냥 작가일 뿐, ‘전업 작가’라는 개념이 따로 있어야 할 까닭은 없다고 생각한다. 전업과 비전업의 경계도 모호하다. 같은 맥락에서, 직장 생활하며 창작한다는 걸 별스럽고 대단하게 여길 이유도 없다.

 

강연 끝난 뒤 나에게 다가와 “저는 글 쓰는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요…”라며 질문하는 대학생이 가끔 있다. 내 대답은 늘 같다.

 

“글 쓰는 일 하며 사는 사람들 가운데, 글 쓰는 일 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계획 세워서 그렇게 살게 된 사람은 적어도 제가 아는 한은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분야로 진출하시든 쓰고 싶은 글을 꾸준히 쓰세요. 또 써야하는 글을 최선을 다해 쓰세요. 보고서든 기획서든 업무 이메일이든 PPT든 뭐든. 그러다 보면 돈 받고 글 쓸 기회가 열릴지도 모르고, 어쩌면 글 쓰는 일 하며 살게 될지도 모르죠. 뭐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꾸준히 글 쓰시면 인생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됩니다. 먹고사는 게 우선입니다. 먹고사는 걸 방기하고 몰두해야 할 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건 극히 드뭅니다. 뭐 각자 알아서 택할 문제지만.”

 

글 ‘쓰고사니즘’을 추구하는 꿈 많은 청년에게, 먹고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먹고사니즘’을 강조했으니 참으로 무정한 자라는 힐난을 들을 수 있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꼰대 아재가 되는 걸 무릅쓰고 말하건대, “내가 한 번 살아보니” 글만 쓰는 것보다는 글도 쓰는 게 낫다. 글만 쓰겠다는 것보다 글도 쓰겠다는 꿈이 훨씬 더 야무지다고 생각한다. 야무지다는 건 성격이나 태도 따위가 어수룩함이 없이 똑똑하고 기운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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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평론가 #표정훈 작가 #먹고사니즘 #SNS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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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미경

2020.01.06

야무지다는 건 성격이나 태도 따위가 어수룩함이 없이 똑똑하고 기운차다는 뜻이다--
저도 야무지게 따르겠습니다. 글도 쓰며 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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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출판 칼럼니스트)

출판 칼럼니스트, 번역가,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쓴 책으로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의 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