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챔피언의 얼굴
김숙은 KBS에서 <개그 콘테스트> 은상을 받은 것 말고는 상은커녕 제대로 된 기회도 받은 적이 없어서 광야를 떠돌다가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JTBC <님과 함께 – 최고의 사랑>으로 대세가 된 뒤에야 KBS에 돌아올 수 있었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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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이 인스타그램 계정 (@saru337)
 


김숙이 지금 KBS에서 진행을 맡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3개다. 여행예능 <배틀트립>, 관찰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퀴즈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 특히 <배틀트립>의 초창기 MC들이 교체되는 와중에도 김숙은 홀로 남아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지켰고,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는 80의 나이에 MC가 된 심영순을 리드하며 8개월 만에 프로그램을 안정세에 올렸다. KBS Joy <연애의 참견>을 두 시즌 동안 지키고 있는 것 또한 김숙이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 년간 KBS 예능국이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했던 순간마다 그 자리에는 김숙이 있었다. 김숙은 KBS <인간의 조건> 여성편의 맏언니였고,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지탱했던 팀의 척추였으며,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소비지향적인 사람들을 변호하는 대변인이었다. 자기들도 남자로만 MC 네 명을 채웠으면서, <대화의 희열> 시즌1이 한국 예능의 기형적인 성비를 성토할 수 있었던 건, 오직 첫 게스트가 김숙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KBS가 김숙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중용했다고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김숙이 KBS에게 알리바이가 필요한 순간마다 등장해 KBS를 도왔다고 본다. 우리가 남자 예능만 만드는 채널은 아니라는 알리바이, 우리도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열심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알리바이. KBS <연예대상> 지지 연설을 하러 나온 전년도 대상 수상자 이영자의 말처럼, 김숙은 KBS에서 <개그 콘테스트> 은상을 받은 것 말고는 상은커녕 제대로 된 기회도 받은 적이 없어서 광야를 떠돌다가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JTBC <님과 함께 - 최고의 사랑>으로 대세가 된 뒤에야 KBS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개그 콘테스트> 은상 수상과 <연예대상> 토크&쇼 MC부문 여자 최우수상 수상 사이의 21년의 공백을 생각하면, 도움을 받은 쪽은 김숙보단 KBS 쪽에 가깝다.
 
데뷔 24년만에 첫 연예대상 대상 후보가 된 김숙은 빈 손으로 돌아갔다. 대상은 KBS <해피선데이 -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슈퍼맨 아빠들’의 몫이었다. 난 여전히 올해는 김숙이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안다. 김숙이 일궈온 명백한 성취를 증명하기 위해 굳이 대상 트로피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트로피보다 더 찬란히 빛나고 있는 건 김숙 자신이라는 것을. 송은이는 <연예대상> 다음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숙이가 세계 챔피언!!!!!”이라 말했다. 양희은이 “축하! 그런데 무엇으로 세계 챔피언인지?”라고 묻자 송은이는 이렇게 답했다. “웃기고,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정상적인 멘트도 잘하고. 엠씨도 잘 보고, 밝고 명랑하고 착하고. 이정도면 챔피언이죠.” 송은이가 맞다. 지금 이 순간 챔피언의 자리에 서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김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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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챔피언 #예능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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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미경

2019.12.31

송은이. 김숙. 등등 멋진 예능인이라 여깁니다. 특히 송은이 김숙 콤비의 우정, 의리, 실력 등은 세계적으로도 돋보인다 여깁니다.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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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ity07

2019.12.23

구구절절 제 맘 같은 글입니다. 광고 개런티는 그들이 더 높게 받겠지만, 무관으로도 빛나는 커리어는 김숙 씨만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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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봄

2019.12.23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슈퍼맨 아빠들도 고생은 했겠지만 지 새끼들 자기들이 본 것 말고 뭘 한게 있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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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