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한국여성, 이런 솔직한 몸 이야기는 처음이지?
8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이 통과한 길은 비슷할지 몰라요. 둔하고 하찮고 옹졸한 태도들과 다투느라 진이 빠졌죠. 이건 그 격투 과정이 담긴, 특별할 것 없는 경험담입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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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과 설정이 참신하고 흥미롭습니다. 『3n의 세계』 라는 제목과 "30대 한국 여성의 몸에 관한 에세이"라는 설정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요? 이 책의 동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3n년 전 저는 지금과 달리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어린이였다고 해요. 한글을 깨우칠 때는 길거리의 모든 간판을 읽으려 들고, 담배 연기로 너구리굴이 된 친척 집에서는 산소가 부족해 어지럽다고 항의하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할 말을 삼키는 순간이 길어졌어요. 손을 들고 발표를 하려고 할 때, 남학생 말부터 들어야 한다고 발을 밟은 교사. 옆 친구가 말을 시켜서 대답했을 뿐인데 귀를 질질 잡아끈 어른.

 

입이 왜 닫히게 되었을까, 자문해보면 유년기부터 그렇게 크고 작은 통제들이 제 안에 뒤섞여 자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30세를 지나며 잠긴 목을 풀고 싶었어요. 한 번 소리를 질러 제 성량을 알고 싶었어요. 이미 많은 여성들이 위축된 심신을 회복하자고 같이 외쳐 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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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자아를 고양이 '골골이'로 표현하신 게 참 재밌습니다. 그래서 작가님 개인의 에세이여도 누구에게든 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로도 전달되는 것 같아요. 골골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세요!

 

가족들에게 출간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책과 말할 수 없는 책이 있어요. 멸종 위기종에 관한 책은 엄마가 10권은 사서 주변에 돌린 것 같아요. 주인공이 저도 인간도 아니었으니까요. 이번 책은 입도 뻥긋하지 않으려고요. 엄마 마음이 다칠 것 같아서요. 다큐멘터리처럼 에세이 또한 픽션에 속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런 글은 보호구 없는 맨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화자와 저와의 거리가 상당히 좁아졌으니까요. 그런데 골골이를 그리고 나니 다행히 용기가 났어요.

 

비니와 조끼를 걸친 골골이는 저와 닮았지만, 저보다 태평하고 그릇이 큰 친구예요. 결정적인 차이도 있어요. 골골이는 비정하게 인상을 써도 귀엽고 잠을 18시간 자도 멋지죠. 독자들도 인간 저자보다 고양이를 보는 게 천만 배 쾌적할 거예요. 친구 골골이가 제 곁에 있어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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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간 것 같습니다. "맞아 나도~!" 하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대목이 있는가 하면, 빵 터지게 웃다가 "아니, 이런 경험을" 하면서 ‘골골이’와 같이 놀라고 심각해지기도 했어요. 작가님의 모든 걸 쏟아낸 듯한 경험담인데 쓰실 때의 감정과 과정은 어떠했나요?

 

어릴 때 일기에 복자라는 가상 친구를 만들었어요. 그 애한테 말하는 식으로 하루를 남겼죠. 이번 책도 골골이 앞에서, 동행들 옆에서 말한다는 기분으로 썼어요. 구체적인 경험은 모두 다르겠지만, 저와 같이 8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이 통과한 길은 폭과 형태가 비슷할지 몰라요. 3n세까지 장엄하고 위용 있는 대상과 싸운 것도 아니에요. 둔하고 하찮고 옹졸한 태도들과 다투느라 진이 빠졌죠. 이건 그 격투 과정이 담긴, 특별할 것 없는 경험담인데요. 너무 구질구질한 건 나중에 덜어내더라도 일단 꺼내 보자는 다짐으로 작업했습니다. 모든 걸 쏟아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간 작업물에 비해 미학적 장치 또는 안전거리가 거의 없는 상태로 쓴 건 맞아요. 무섭지만 그럴수록 ‘어쩌라고’ 하는 배포도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몸-우리-세상' 이렇게 나아가는 구조가 독특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30대 한국 여성의 몸’이란 개인만이 아닌 여러 사회적 맥락, 의미 등이 얽혀 있는 존재여서겠지요?

 

반야심경을 읽고 버스에 탄 날, 갑자기 운 적이 있어요. 해도 좋고 울적하지도 않았는데요. 지구에서 잘났다고 찧고 까부는 우리가 백해무익하게 여겨지다가도, 결국 헛발질하다 떠나는 건 똑같으니까 잠시 스치는 승객들 모두 가엾더라고요. 물론 버스에서 내려 일터에 가자마자 곧장 인간이 싫어졌지만요. 연민과 체념은 이곳을 멀리서 볼 때 생기는 감정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매일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미물이고, 반성과 저항을 멈추지 않아야 그나마 덜 오염된 어른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나의 몸-우리-세상’이라는 책의 구조는 그런 면에서 평범해요. 전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발을 내딛는 방법만 익혔을 뿐이고, 큰 세계가 큰 말로 구성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30대 한국 여성들의 우주도 그렇게 자리할 거예요.

 

여전히 남성보다는 여성이 ‘미혼에서 기혼이’ 될 때 삶의 변화, 영향을 크게 받는 것 같아요. 새로운 고민의 시작, 주변의 시선, 기대 등 말이죠. 더군다나 ‘수도권에 사느냐, 지방에 사느냐’에 따라 아이를 낳지 않는 기혼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른 것 같고요. 작가님은 이 둘 모두를 경험하셨는데 실제 차이를 느끼셨나요?

 

아이를 낳지 않은 기혼여성은 수도권, 지방 어디서든 비슷한 질문을 받을 거라 짐작해요. 편견과 달리 지방의 중, 노년 여성들이 저를 관대하게 대해줄 때도 있어요. 아마 여성으로서의 고단과 마모를 완전히 체화했기 때문일까요. 그분들은 엄청난 생활력으로 하루를 경영하고, 잘 웃고 잘 싸우고 잘 돌아다니면서 본인만의 희비극을 쌓아가요. 살아보니 누구 하나 날 정성껏 살펴보지 않는구나, 그럼 내가 날 구할 수밖에 없다. 인생 선배 여성들의 긍정주의 이면엔 이런 고독과 각성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결혼 후 지방으로 이사해 아이를 낳은 친구들 중 한 명이 어느 날, “난 남자와 맞지 않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20년 뒤에 광활한 러시아로 탈출할 거라고, 거기서 만나자고 하는데 코가 찡했어요. 이런 말이 와닿지 않는 기혼여성들이 드물 거라 예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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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골골이’의 30대를 보면서, 어쩌면 골골이는 ‘한국의 모든 30대 여성들의 집합체’일 수 있겠단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골골이의 40대, 50대는 어떠해야 할까요? 또 어떠했으면 하세요?

 

‘한국 모든 30대 여성들의 집합체’ 라는 말은 무섭고요. 제가 다만 매일 새로운 기쁨과 슬픔을 맞이하는 여성의 일원이 되면 좋겠어요. 8n의 골골이가 여행지에서 “이게 뭐야, 청계천이랑 똑같네. 음식도 맛대가리 하나 없다.” 이런 말을 하는 대신 작은 차이에 민감하길, 다른 문화에 열려 있길 기원해요. 그러려면 피로한 생활에 파묻히지 않아야겠죠. 회복 불가능한 상처도 받지 않아야 하고요.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네가 원한 거잖아”라는 냉담한 말도 피해야 해요. 신박한 대안은 아니지만, 여성들에게 방해 없는 자기만의 시공간이 꼭 주어져야 본인을 포함한 타자와 세계의 관찰도 가능할 것 같아요. 생존 자체가 가장 큰 고민이면 세세한 풍경을 볼 수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이 3n년을 살며 깨달은 바를 말씀해주세요. 또 30대를 앞둔 여성들, 30대를 지나는 여성들, 또는 지나온 여성들에게 해주고픈 말씀이 있다면요?

 

밀린 월급을 받지 못했을 때, 임금체불 고민이 올라오는 온라인 게시판에 자주 간 적이 있어요. “나는 댈 것도 아니구나, 이분은 어떻게 이 상황에서 누굴 위로하지? 이 돈이면 난 기절했겠다.” 그런데 떼인 액수들이 무시무시한 그곳에도 유머와 격려가 있었어요. 함께 돈을 못 받은 동료와 회사 앞 편의점에서 만나기로 했을 때, 그 언니가 부득불 컵라면과 김밥을 사준 적도 있어요. 자기 집이 더 가까우니까 괜찮다면서요.

 

저는 어른에게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어른인 걸 반성하는 어른을 만나오며 숨을 돌려 왔어요. 계발서 아닌 표류기를 쓰고 보니, 뭔가를 극복하려는 일념과 의지가 늘 옳은 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겁이 나도 무시하라는 말은 할 수 없어요. 겁이 나면 우선 도망쳐야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생했어요.

 

 

 

 

 

*박문영


남쪽 지방 소도시에서 고양이 미세, 먼지와 함께 작업한다. 주로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루며 매일 그림일기를 쓴다. 제1회 큐빅 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에서 「파경」으로 수상, 제2회 SF 어워드에서 중편소설 『사마귀의 나라』(에픽로그, 2014)로 대상을 받았다. 소설 외에 시리즈 그림책 『그리면서 놀자』(가문비(어린이가문비). 2008년), 만화집 『봄꽃도 한때(공저)』(미메시스, 2014년), 멸종위기종을 위한 웹툰 '천년만년 살 것 같지'를 만들었고 이를 확장한 만화에세이집 『천년만년 살 것 같지? (공저)』(홍익출판사, 2018년)는 2018 환경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에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창작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장편 SF 『지상의 여자들』(그래비티북스, 2018년)을 출간했다. 박문영은 SF가 멀고 캄캄하다고 느끼는 독자와 함께 이 장르의 아득한 폭과 너비를 천천히 여행할 예정이다. 자리를 못 잡고 겉도는 것, 기괴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대상, 여성, 어린이, 청소년의 감정과 심리에 관심이 많다.

 

 


 

 

3n의 세계박문영 저 | 한겨레출판
자전적 캐릭터인 고양이 ‘골골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신의 몸에 얽힌 다양한 일화를 거침없이 터놓는다. 만화와 에세이가 함께 구성된 이 책을 읽다 보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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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