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tue signaling : ‘PC함’ 전시라고 할까?
내 행동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나머지 집으로 오는 도중 트위터에 올리고 싶어 손이 다 근질거렸다.
글ㆍ사진 노지양(번역가)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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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미국 드라마 <더 폴리티션>은 산타바바라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전교 회장 선거 운동을 소재로 한 정치 풍자극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을 품은 백인 남학생 페이튼 호바트는 자신의 기득권 이미지를 순화시켜 줄 러닝메이트를 찾는다. “특수반, 아니 다른 능력이 있는 친구(differently abled)를 알아보자.” “아이티계가 어때? 최초의 아이티계 후보가 될 거야.” “암 투병 중인 그 애는?” “상대 부회장 후보는 누구인지 알아? 흑인 비관행적 젠더(gender non-conforming: 자신을 남성이나 여성으로 정의하지 않는 사람)라고.” 선거 캠페인의 일환으로 희소병 환자 돕기와 빨대 사용 금지 운동을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러다 기네스 펠트로가 연기한 페이튼 어머니가 대저택 수영장 옆에서 그린 흑인 소녀 그림을 보고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시리아 전쟁 부채 기금을 모아야 해서. 올해 초 사망한 오르한이야.”


보면서 미국 부유층의 최근 행동 경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수자 인권, 제3세계 정치, 환경 문제에 민감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하는, 아니 의식하고 있다고 세상에 어떻게든 공표하는 일 말이다.


‘virtue signaling(버추 시그널링)’은 몇 달 전 페미니즘 기사 번역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단어만으로는 무슨 뜻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번역하면 ‘미덕 신호’이지만 뜻을 찾아보고 ‘도덕성 과시’로 옮겼다. 이는 실제로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올바른 대의를 지지하고 있다거나 어떤 이슈에 도덕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을 뜻한다. “그 친구, 프로필 사진을 갑자기 난민 사진으로 바꾸었더라. 뭐 기부는 하고 있대? 도덕성 과시일 뿐이잖아.” 구글에서 찾은 예문 몇 개를 읽으니 바로 이해가 되고 말았다. 


이 표현이 흥미로워서 다른 번역 수업에 가져가 학생들과 고민했다. “도덕성 과시보다 도덕성 전시가 어때요? 아니다.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함 전시’라고 할까?” 학생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virtue signalling은 현재 미국의 모든 매체와 방송에서 유행 중이고, 트위터 해시태그가 수백 개에 달하며, 서로 내가 아닌 상대가 도덕성 전시를 하는 위선자라며 비난하고 있다. 이 용어는 영국 잡지 『스펙테이터』  의 기자인 제임스 바톨로뮤가 2015년 4월 18일 기사에서 처음 사용했다며 자신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그 이후에 언론과 라디오 방송으로 삽시간에 퍼졌고 트위터 해시태그가 되면서 일상 용어가 되었다. 세상에 새로운 언어를 남겼으니 죽어도 여한 없다고 농담하는 기자는 이 용어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이유는 필요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수년 동안 목격해 왔던 현상에 적합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한 트위터 유저는 말한다. “은근히 올라오는 짜증을 설명해 줄 단어가 드디어 생겼다. #virtuesignaling.”


모든 SNS 중에서도 트위터는 정치적 올바름 전시의 산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찻잔 속의 태풍인 이곳은 바깥세상이나 다른 SNS와는 온도 차가 확연하다. 동물권, 페미니즘, 정치 등 모든 이슈를 망라하여 매 시간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등장하고 매번 몇 천 알티가 된다. 트위터에서는 모두가 환경 운동가이고 반인종주의자이다. 나도 열성 트위터리안에 속하지만 주로 신변잡기나 딸과의 대화나 스포츠 잡담 등 별탈 없는 소재들을 조심스럽게 올리는 편이다. 그런데 장을 보러 갔다가 비닐봉지를 거절하고 에코 백에 담아 온 적이 두어 번 있었다. 내 행동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나머지 집으로 오는 도중 트위터에 올리고 싶어 손이 다 근질거렸다. 사실 에코 백은 지갑과 휴대폰 때문에 들고 갔을 뿐이고 집에 쌓이는 비닐봉지가 귀찮았을 뿐이면서 이것이 트위터에 어울리는 동시에 나를 나쁘지 않게 포장해 줄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혼모 지원을 해야 한다는 트윗도 올렸고 알티가 꽤 되었다. 그러다 트위터에서 미혼모 기부 단체를 알게 되어 작게나마 기부를 시작했다. 도덕성 전시라는 표현을 알기 전에 했던 행동이지만 말로만 떠들며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일에 나 자신도 질렸거나 은근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뉴욕 타임스>에서는 한 심리학 실험의 예를 들면서 ‘버추 시그널링’의 긍정적인 면도 이야기한다. 남들 눈에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느끼는 분노나 하는 발언이 가짜인 건 아니다.  

『아무튼, 트위터』  의 정유민 작가는 트위터를 하면서 타인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며, 한때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자신을 돌아보고 식당에서 우는 아이와 엄마를 배려한 후에 이렇게 말한다. “거대한 문제라고 해서 거대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 사소한 저항이 모여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이다.”


앞서 말한 미국 드라마 속 백인 부유층들의 인권 운동이 새로운 액세서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소수자를 배제하는 것이 당연한 양 그들만의 잔치를 벌였던 과거를 생각하면 눈치라도 보니 다행이다 싶어진다. 러닝메이트 하자며 장애인 친구에게 말을 붙였다가 무시당하는 장면이 나와서 통쾌하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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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양(번역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BS와 EBS에서 라디오 방송 작가로 일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나쁜 페미니스트》, 《위험한 공주들》, 《마음에게 말 걸기》, 《스틸 미싱》, 《베를린을 그리다》, 《나는 그럭저럭 살지 않기로 했다》 등 6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