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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61화 : 아, 일본식 이름이 필요하겠구나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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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 보존을 해야 된다구. 대의명분을 세우는 사람과 다시 싸울 사람이 모두 필요하다고 그랬어요. 내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어서 다시 돌아오겠소. (2019.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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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형제가 막음이 고모네 집으로 집에 간 것은 이튿날 점심 무렵이었다. 한여옥은 신금이가 혼인 전에 잠시 머물렀고 그녀와 이철이가 방을 얻어 나가기 전에 쓰던 뒷방에 누워 있다가 조각 유리로 마당을 내다보고는 화들짝 달려 나왔다. 일철은 마루로 올라서지 않고 마당에서 제수에게 말했다.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습니다. 둘이서 잘 의논해 보세요.”

 

막음이 고모는 초췌해진 이철이를 보고는 벌써부터 눈물바람이었다.

 

 “애고 떡집이나 하구 살게 그냥 내버려두지 않구선.”

 

일철은 이튿날 아침에 아우를 찾아오리라 약속했으므로 그냥 버드나무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이철과 여옥은 두 손을 꼭 잡고 나란히 누워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술서를 되도록 간단하게 간추려 쓰려면 미리 맞추어 둘 사항이 제법 많았다. 이철의 일상이야 영등포에서 주위가 다 아는 바이지만 여옥의 과거는 모두 지워져야 마땅했다. 그녀의 고향 이야기며 일본 갔던 이야기까지는 그대로 두고 군산에서의 혼인 이후는 모두 지워버렸다. 중국에 갔던 것이나 활동가의 길에 들게 된 경위 등은 물론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혼인 파탄 이후에 경성에 와서 카페 여급으로 일하다가 이이철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가 시키는대로 심부름 몇 번을 했었다.

 

이이철도 자기 정리를 해두었다. 철도공작창에서 파업을 하면서 방우창 안대길 등을 알게 되었고 방의 지시로 경성에 들어가 이관수라는 사람을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무슨 문건이었는데 영등포 지역의 파업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국제당에서 왔다는 사람과 이씨가 만난다고 하여 연락 레포 노릇을 했다. 그때에 한여옥도 중간 연락을 맡겼다. 김형신과 류재익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국제당과 경성파의 주요 인사가 만난다고 두 겹의 보안이 실시되어 자기네 쪽에서도 두 사람이 필요했다. 한여옥은 전적으로 자기의 지시대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약속장소에 나가 다음 장소를 듣고만 왔다. 이철은 자신은 처음에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이론에 이끌렸지만 깊은 뜻이나 철학은 너무 어려워서 몰랐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뜻은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개인만의 힘으로 이루기에는 너무 멀고 어려운 일로 생각된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황국신민으로 성실하게 생업에 종사하며 살아갈 작정이노라. 두 사람은 그런 정리를 해나가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울음이 터졌다.

 

 “이제 치욕스러워서 어떻게 살아요?”

 

한여옥이 울음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고 이이철도 목이 메어 말을 더듬었다.

 

 “역량 보존을 해야 된다구. 대의명분을 세우는 사람과 다시 싸울 사람이 모두 필요하다고 그랬어요. 내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어서 다시 돌아오겠소. 당신은 나대신 떡집하면서 기다리구 있으면 되어요.”

 

이일철은 아우를 데리고 시장 사거리를 건너서 역전 본정통의 경찰서 부근 카페로 나갔다. 그리곤 최달영에게 전화를 넣었다. 최는 말쑥한 양복 위에 검은 코트를 입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옆에는 보조원이 따라붙어 있었다. 그는 맞은편 자리에 앉자마자 이철에게 말을 걸었다.

 

 “두쇠 오랜만이다.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결심이 선 모양이군.”

 

이철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았고 일철이 말했다.

 

 “약속대로 제수씨는 건드리지 않겠지?”

 

 “아, 그야 우리 이철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너무 염려는 하지 마라. 참고인 조사만 하고 방면할 테니까.”

 

야마시타가 다른 자리에서 지켜보던 보조원을 돌아보자 그가 다가와서 이철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일철은 아우를 연행하는 야마시타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잘 처리해주게. 그 은혜는 내 잊지 않으마.”

 

야마시타 최달영은 싱긋 웃으며 일철에게 말했다.

 

 “저지른 일이 있으니 징역 좀 살아야 할 거야. 헌데 왜 너는 창씨개명하지 않나? 이제 시책이 내려왔지만 전국민화 될 텐데 말이야.”

 

이일철은 그 말이 폐부에 깊숙이 와 닿았다고 한다. 아, 일본식 이름이 필요하겠구나. 온전히 철도국 밥을 먹고 살려면 총독부에서 시키는 일에 고분고분 응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자기는 기관수가 되어야 할 조선인이 아닌가. 그는 입초가 서있는 경찰서 정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잡혀 들어가는 아우의 구부정한 등을 바라보았다. 이철은 형이 바라보고 있을 줄 알았을 터인데도 한 번도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이철이 경찰서 고등계의 취조실로 들어서자마자 야마시타 조의 보조원들이 신입식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야마시타는 이철의 등을 밀고 들어서면서 부하들에게 일렀다.

 

 “자수했으니 살살 다뤄라.”

 

그는 한마디 하고는 옆방으로 사라졌다. 보조 한 놈이 먼저 이철의 면상을 주먹으로 후려갈기자 비틀거리며 옆으로 쓰러지려는 것을 따른 놈이 멱살을 잡고는 반대쪽을 후려갈겼고 앞으로 쓰러지려고 하자 또 다른 자가 끌어올려 무릎으로 올려 찼다. 이철은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호오, 이렇게 약해서야 어디 주의자 노릇을 해먹겠나.”

 

이철의 얼굴은 코와 입술이 터져서 이미 피범벅이 되었다. 조선인 보조원 고문자들은 한참을 두들겨 패고는 그의 상의와 바지를 벗기고 빤쯔 바람으로 조사 받는 책상 앞의 의자에 앉혔다. 야마시타가 들어와 그의 조서를 받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무렵에야 조사가 대충 마무리 되었고 이튿날에는 한여옥이 불려왔다. 그녀는 오전 중에 조사를 끝내고 저녁 퇴근 시간 무렵까지 대기하고 기다렸다. 부부가 미리 정리한 내용이 맞아 떨어졌고 일단 이철의 조사가 순조로웠으므로 한여옥은 귀가 조치되었다.

 

앞에 중대한 혐의자들의 조사가 지나갔고 무엇보다도 국제당의 중앙인 권모의 조직이 거의 검거 되었으므로 이이철 부부의 레포 행위는 앞의 사실들을 시간 장소별로 맞추는 일에 불과했다. 방우창의 취조 중 사망은 영등포 노동자들을 조직적으로 확대하여 엮는 것을 미리 방어해 준 거나 다름없었다. 처음부터 총독부 경무국의 조사 방향이 국제당의 조선노동자에 대한 조직적 접근을 분쇄한 사건에 초점이 모여 있었으므로 평범한 노동자들은 자술서와 각서 등으로 반성의 기미가 보이는 자들은 훈계방면이나 기소유예 처리가 되었다. 다만 안대길, 조영춘, 이이철 등은 조직과 연계가 있었으므로 비교적 중형이 내려졌다. 재범이었던 안대길은 사 년, 독서회를 관리하던 조영춘은 이 년, 연락원 이이철은 일 년 육 개월의 형을 받았다. 사실 당시의 행형제도와 형무소 형편은 매우 열악했으므로 일 년의 형을 받고 나와도 병을 얻어 오래 고생하거나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일도 많았다. 조영춘 이이철은 야마시타가 불러주는대로 전향각서를 쓰고 지장을 찍었다. 물론 국제당 조직 관계자들은 삼사 년 이상의 중형 처분을 받았고 개중에 지도부는 형기를 마친 후에도 치안감호 처분을 받고 보호소에 유치 당했다. 그들이 검거되고 일 년 반이 지나서야 경기도 인근 농촌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잠복 활동하던 경성 당재건협의회의 중앙 류재익이 체포되고 이관수는 다시 탈출하여 지방으로 내려간다.

 

한여옥은 이철이 체포되고 한 달쯤 지나서 그가 아직 예심을 받고 있던 무렵에 아기를 낳았다. 신금이는 그때를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설 명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때였다. 한여옥은 그들 부부가 열었던 떡 가게 집으로 돌아가려 했건만 막음이 고모와 신금이가 극구 말려서 그대로 고모네 뒷방에 머물고 있었다. 언제 출산을 하게 될지 모르니 항상 누군가 보살펴 줄 사람이 지척에 있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밤 열 시쯤이었나. 신금이는 혼자 안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이일철은 그때 경성 신의주 간의 화물열차 기관수로 승급되었다. 이제는 조수가 아니라 기관수로서 한 노선을 책임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 그 밤에 일철은 머나먼 국경도시 신의주에서 자고 있었을 것이다. 신금이는 누군가 자기의 가슴을 흔드는 걸 느끼고는 얼핏 잠에서 깨어났다.

 

 “응…… 누, 누구야?”

 

 “얘야, 어서 건너가 봐라. 거시기니 우리 손주가 이제 나올래나부다.”

 

신금이가 눈을 뜨니 어둠 속에 주안댁이 머리맡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어머니 이 밤에 또 뭔 일이래요?”

 

그녀가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나 앉는데 주안댁이 다시 재촉한다.

 

 “얼른 가보래두. 작은애가 애길 낳는다누나.”

 

 “예에, 애기를요?”

 

신금이는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마루로 나서며 건넌방 쪽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시아버지 이백만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일부러 기침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이백만이 코골기를 뚝 그치고는 졸음이 가득한 소리로 물었다.

 

 “게 지산이 어멈이냐?”

 

 “예 고모 댁에 가볼라구요. 동서가 오늘 출산할 거 같아서요.”

 

이백만이 상반신을 일으키고 방문을 활짝 열었다. 평소에 며느리의 예감을 알고 믿는 바가 있어서 그는 무심결에 말했다

 

 “어찌, 이번에 아들을 낳겠느냐?”

 

 “그러믄요 아버님.”

 

 “응 그래 지산이 걱정은 말구 어서 다녀오너라.”

 

그녀는 발걸음을 재개 놀려 샛말 막음이 고모 댁에 이르렀고 문 앞에 벌써 당도한 주안댁이 서성이며 기다리고 서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막음이 고모가 자다가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는 신금이와 동행한 주안댁을 보자마자 대번 알아차렸다.

 

 “애가 나오는 모냥이군. 산파 불러 오까?”

 

 “여기 우리 셋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우?”

 

 “셋이?”

 

하다가 고모는 깔깔 웃었다.

 

 “하긴 우리 성님이 기시니 젤 든든허지.”

 

그로부터 오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여옥의 출산 진통이 시작되더니 곧 아이를 낳았다. 신금이와 막음이 고모가 아이를 받아낸다 탯줄을 끊는다 목욕 시켜 강보에 싼다 하며 출산을 도왔다. 이마에 땀방울이 돋은 채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한여옥은 잠이 들었고 아기 또한 눈을 감고 어미 옆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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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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