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울 "울다와 걷다, 항상 내게 존재하는 것"
생각해 보면 난 늘 상처받고 매일 울었어요. 다들 내 그림을 비웃었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죠. 그럼에도 그림 그리는 걸 멈추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내 애니메이션을 보고 행복해졌다고 내게 말했어요. 난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어요. 울면서도 계속 걸어야 하는 이유를.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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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 만21살에 첫 영화를 만든 젊은 영화감독 한여울은 느리게 걷는다. 스스로 때로는 물고기, 종이인형, 또 느림보 거북이라고 말하며, 그녀는 자신의 영화제목처럼 ‘그녀의 속도’로 걷는다. “따뜻한 햇살만으로 꽃은 피지 않는다. 가끔은 몇 방울의 빗방울이, 바람이, 약간의 먼지가, 거친 흙이, 나를 더 단단하고 찬란하게 만든다.” 그러니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고난에 울더라도 뒤로 가지는 말자고, 천천히 한걸음씩 나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동시에 그대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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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울면서 걷다’입니다. 감정을 토로하지만 정적인 ‘울다’와 움직이는 이미지의 ‘걷다’라는 두 개의 상반된 동사가, 나약하지만 그럼에도 꿋꿋하다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제대로 해석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울다’와 ‘걷다’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네, 제대로 보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잘 울었어요. 제게 언니가 하나 있는데 어릴 때부터 툭하면 우니까 저더러 ‘넌 한여울보야’라고 했었죠. 마음에 안 들면 다 울어버렸어요. 큰 상처를 받았을 때도 반대로 사소한 일에도 울었죠. 말로는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하겠고, 마음은 슬프니까 눈물부터 주르륵 나오는 거예요. 사실 조금만 울어도 마음이 편해져요. 그런데 울다가 갑자기 멈춰버리면 뭔가 민망하고 부끄러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어릴 때는 집이 떠나가라 더 큰 소리로 울게 되지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뀐 뒤에도 울었어요.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우니 ‘울보’로 살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울면서도 제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야. 그래서 자주 울어. 하지만 울어도 내 할 일(몫)은 해야지’였던 거죠. 우는 것이 그저 나약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감정은 감정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나는 내 갈 길을 계속 갔더니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는 거예요. 작은 성취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가령 선생님한테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나면 며칠 뚱해져 있을 만한데 바로 다음 날 교무실에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아질까요? 방법을 알려주세요, 선생님” 하고 물었죠. 노트와 펜을 들고 질문하러 다녔어요. 어쩌면 그분들은 조용하고 울기만 했던 제가 무서웠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얻어지는 것들이 생겨나더라고요. 


심지어 대학생 때는 제 작품이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말을 들었죠. 그때도 여전했어요. 화장실에서 4시간 울고, 그다음 날 해당 교수님을 찾아갔죠. 안 찾아갔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작품이 훨씬 좋아졌거든요. 그리고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어요. 나약하지만 꿋꿋하다! 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인 것 같아요. 또 실제로도 자주 울면서 걸었어요. 멈춰서 울면 누군가 쳐다볼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몸을 움직이면서, 걸으면서 울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덜 쳐다보고, 내가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울고 싶은 날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녔어요.


‘울다’와 ‘걷다’는 제게 항상 존재하는 것들이에요. 자주 울기도 하고, 자주 걷기도 하죠. 그것을 동시에 했을 때 스스로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을 느껴요.

 

그동안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영화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져오셨는데요. 영상이 아닌 책을 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사실 ‘영화감독’이 꿈은 아니었어요.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온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접하고 나서 ‘시인’이 되고 싶었죠. 중학교 때 진로 희망을 적잖아요. 저는 그 칸에 모두 ‘시인’이라고 적었는데 친구들이 다 웃었어요. 하지만 전 무척 진지했어요. 시집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의 매력에 푹 빠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점차 확대되면서 소설, 수필 가리지 않고 읽어 나갔어요. 책으로 인해 제 삶이 감격스럽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죠. ‘글’이 주는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이런 좋은 영향을 끼치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죠. 그렇게 교과서 모퉁이에 시나 소설을 읽은 소감을 낙서로 끼적이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제 그림에 이야기(글)를 붙였더니 그것이 애니메이션이 되었고, 애니메이션 안에 있던 가상의 인물을 밖으로 끄집어냈더니 영화의 세계가 된 거죠. 어떻게 보면 ‘글’과 ‘그림’과 ‘영상’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전부 ‘이미지’를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면서 대본이라는 글을 쓰죠. 그게 영상화되면 영화가 되고요. 저는 항상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고 그것을 어떤 방식이로든 표현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것 같아요. 작가로서 책을 낸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초기에 품었던 꿈을 이루는 지점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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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걷다』  는 특별히 어떤 독자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쓴 책인지 궁금합니다.

 

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는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어요.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상처, 나의 꿈 그리고 직접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을 천천히 떠올리면서 써 내려가는 데 집중했어요. 어떤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 특별하게 다가갈지는 모르는 거니까요. 그보다는 ‘위로’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아주 약한 캐릭터가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의 영화를 볼 때 ‘괜찮아,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제게 건네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되더라고요.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요. 제 글과 그림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단 하루라도 그런 역할을 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울면서 걷다』  중에서 가장 아끼는 글은 어떤 글인가요? 한 편만 소개해 주셔요.

 

글을 쓰면서도 여러 번 울컥했어요. 그중 쓰면서 엄청 울어버린 에피소드가 있어요. ‘울면서도 한 걸음씩’이라는 꼭지예요. 어쩌면 저의 첫 ‘고난 극복기’라고 볼 수 있어요. 제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글이에요. 앓고 있었던 병 때문에 스무 살이 즐겁지 않았죠.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림도 그리기 싫었고, 스스로 절망적이라고 느꼈어요. 그 당시에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때를 회상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그때의 ‘나’가 안쓰러워서 울었던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극복했기 때문일 거예요. ‘나는 울면서도 걷는 사람이야, 나는 극복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니까 이겨낸 ‘나’ 자신이 굉장히 고맙더라고요. 그 에피소드를 꺼내면서 많이 울었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아요. 많은 시간 동안 쓰기도 했고요.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본인 스스로를 ‘물고기’ ‘종이 인형’ ‘느림보 거북이’라고 말하며 ‘느리게 걷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시는데, 본인의 그러한 성향에 대해 그동안 느껴왔던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언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있어 ‘느림’이라는 것에 대해 깊게 사유하기 시작하셨나요? 그리고 그 계기가 있다면요?

 

어린 시절부터 기운 없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난 기운찬데 왜 그런 말을 하나 싶었죠. 어느 날 친구가 제가 걷는 모양새를 알려줬는데, 종이 인형처럼 힘없이 걷는다는 거예요. 누군가 툭 치면 금세 바람에 휘날리면서 날아가 버릴 것 같다고요. 걷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몇 장 봤는데 정말 납작한 종이 인형 같았어요. 생각해 보니 저는 몸이 약한 편이라 픽픽 잘 쓰러졌고, 외모도 그다지 야무져 보이지 않았죠. 더구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던 적도 많았고요. 처음 사회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남들보다 느려서 많이 혼났죠. 나는 물고기도 아닌데 왜 뻐끔거리기만 하고 할 말을 못하지? 답답했어요. 그렇게 남들의 속도에 맞추려고 애쓰다 보니 너무 슬픈 거예요. 그땐 느린 게 좋지 않다고만 생각했어요. 어딘가 뒤쳐진 것 같고, 무능력해 보였죠.

 

몇 년을 그렇게 맞지 않은 일에 고군분투하다가 어느 날 문득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래, 난 물고기야. 종이 인형이야. 느림보 거북이야.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물고기라고 반드시 바다에서만 헤엄쳐야 할까? 헤엄을 잘 못 친다면 높이 뛰어오르는 건 어떨까? 그게 또 다른 재능일 수도 있지 않을까? 종이 인형처럼 잘 쓰러진다면 아무리 쓰러져도 끊임없이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느림보 거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에 있어서는 매우 집요하고 꼼꼼한 사람인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점점 나 자신이 못난 사람이 아닌,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거예요.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나의 속도를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했더니 조금씩 작은 성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요. 모든 성향에는 장단점이 존재하고, 그것을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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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상처에 말을 걸고, 가지고 있는 아픔을 수긍할 줄 안다는 게 참 대단한 일 같아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몸소 느낀 것들 중에 독자들에게 꼭 전했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나’에게 말을 건넨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다는 뜻 같아요. 저는 특히나 마음의 상처를 잘 받았던 사람이어서 또 처음에는 치유할 줄 몰라서 오랫동안 상처를 안고 살았어요. 상처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에게 상처를 준 ‘어떤 것’에 대한 ‘이유’와 ‘원인’을 알아내려고 온 신경을 썼어요. 그랬더니 밤에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잠이 안 오니까 그다음 날 아침이 상쾌하지 않았고요. 이대로 가다가는 시간낭비만 하다가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칠 것만 같았죠.


그러다가 내 마음의 상태가 현재 어떤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어떤 것에 상처를 받았다면 속상한 감정인지, 화가 났는지, 슬픈지… 구체적으로 내 감정이 어떤지를 파악하고 누군가에게 이러한 나의 감정을 말로 표현을 해서 내 안에 있는 감정과 나를 분리하려고 노력했어요. 간혹 그조차 힘겨우면 일기를 써서 솔직한 감정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그 슬프고 어둡고 분노했던 감정들이 점점 내 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느껴졌어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같은 선상에서 나란히 서 있게 되었죠. 그때 고개를 돌려서 말을 건네 보는 거예요.

 

“잘 있었니? 요즘에는 어때? 가까이 다가오지 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줘.
네가 없어진다면 참 좋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조금 더 머물다 가도 돼.”

 

가끔 슬픈 날이 오잖아요. 그런 날에는 그 상처가 어김없이 다시 튀어나와 평소보다 더 잘 보이는 곳에 서 있을지도 몰라요. 그럴 때는 한없이 껴안은 채 지우려고 애쓰기보다는, ‘너와 나는 분리되어 있다’라는 말을 상기한 채 가끔 안부를 묻는 거죠. 이것도 울면서도 걷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남겨주세요.

 

“가슴에 와 닿는다”는 말을 좋아해요. 제 글과 그림이 독자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닿았으면 좋겠어요. 단 하루라도 따스함을 느끼셨으면, 그 따스함이 어느덧 한 줄기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울면서도 같이 걸어가요.

 

 

* 한여울


어릴 때부터 툭하면 울었다. 슬퍼도 울고 좋아도 울고 행복해도 운다. 그중에서 감동받았을 때 제일 많이 운다. 대학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전공했다. 대표작품으로는 『문어를 그리는 아이』(2013), 『그녀의 속도』(2018)가 있다.

 


 

 

울면서 걷다한여울 저 | 큐리어스(Qrious)
가끔은 몇 방울의 빗방울이, 바람이, 약간의 먼지가, 거친 흙이, 나를 더 단단하고 찬란하게 만든다.”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고난에 울더라도 뒤로 가지는 말자고, 천천히 한걸음씩 나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동시에 그대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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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