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관찰하면 무한하게 깊어져요”
바람이 불어오면 나무는 그냥 꼿꼿하게 선 나무가 아니라 흔들리고 기울면서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는 거라는 생각이에요. 새가 내려와 앉으면 새의 울음소리가 반짝이는 나무가 되고요. 바깥을 받아들이는 거죠.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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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서정 시인 문태준이 10년 만에 두 번째 산문집을 선보였다. 10년이라는 세월은 무언가가 새로이 변화하거나, 혹은 더욱 깊어지기 좋은 시간이다. 문태준 시인은 변하기보단 더 깊어지는 쪽을 택했다. 시인의 마음밭에 천천히 자라난 내밀한 언어들을 세심히 보살펴 키워낸 글들을 묶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에는 깊게 영근 시인의 시선과 언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느릿하고 고집스러운 집념으로 세심히 보듬어 키워낸 그의 글들은 그 자체로 아늑하고 고요한 수행자의 처소와 같다. 번잡한 삶 한가운데 불어오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문장들 속에 머물며 독자들은 어느새 자신의 마음 안쪽을 가득 채운 밀도 높은 평온함을 느끼는 동시에 새로운 풍경들이 활짝 피어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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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지용문학상 수상과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여러모로 바쁜 나날을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셨나요? 남은 하반기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커다란 변화는 없어요. 불교방송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로 일하고 있고, 새로운 시를 짓습니다. 산문도 연재하고요. 강연을 하고, 좋은 시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요. 좋은 시를 골라서 짧게 해설을 붙여 소개하는 일에 보람이 많습니다. 시를 소개하려면 계속 시를 읽어야 해요. 시를 읽다보면 언어들이 제 가슴 속에서 불규칙하게 활동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음악처럼 내면에 뭔가가 움직이고, 물처럼 흐르고 있다고 느낄 때에 신선한 행복을 느껴요. 


책 제목이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인데요. 어떤 의미를 지닌 제목인가요? 책의 부제인 ‘문태준 시인의 받아들여서 새로워지는 것들’의 의미도 함께 설명해주세요.


바람이 불어오면 나무는 그냥 꼿꼿하게 선 나무가 아니라 흔들리고 기울면서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는 거라는 생각이에요. 새가 내려와 앉으면 새의 울음소리가 반짝이는 나무가 되고요. 바깥을 받아들이는 거죠. 수용하면서 변화를 겪게 되고요. 그러는 동안 나무에게도 어떤 진전이 있어요. 예전과는 다른 나무가 되는 거고요. 물론 바람이 지나가면 나무는 바람의 외투를 벗게 되겠지만. 거꾸로 한 시인은 바람이 풀밭에 가서는 풀의 몸놀림을 한다고 썼거든요. 이때에는 바람이 풀을 수용하는 거죠.

둘러보면 모든 게 주고받으면서 성장해요. 몸도 마음도. 교신하고 교유해요. 바람이 들어와 살고, 빗방울이 들어와 살고, 구름과 눈이 들어와 사는 나무는 유연한 나무인 거죠.


10년 만에 출간된 산문집입니다. 이전 산문집 『느림보 마음』『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의 다른 점과 닮은 점은 각각 무엇일까요? 덧붙여 시를 쓸 때와 산문을 쓸 때 각각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첫 산문집은 가족사나 개인사가 좀 많은 편이었다면 이번 산문집은 좀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놓친 인연, 매일매일 읽은 시와 산문의 빼어난 문장들, 행복의 처음과 끝,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 국경을 넘어 가 본 여행의 기록 등을 실었어요. 저는 “향기로운 꽃의 파도를 물결치며 바람의 배가 지나가듯이”라는 문장을 아주 좋아하는데, 우리의 삶이 이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쓴 산문들이 좀 많은 것 같아요. 네루다가 썼듯이 꽃은 스스로 맑게 준비해서 꽃을 피운다고 했는데, 우리들의 꽃핌을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했어요. 시인에게 산문 쓰기는 늘 발을 들여놓지 않은 땅처럼 두려워요. 물론 조금의 설렘도 있지만.     

 
이번 산문집은 좀 짧은 산문들이에요. 잠깐 잠깐 짬을 내서 한 쪽을 펼쳐서 읽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편 한 편 읽을 때 푸른 나뭇잎 같았으면 좋겠다, 부채 바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의 곳곳에 둘레, 넉넉함, 한가함, 맑음, 고요함 같은 순하고 맑은 말들이 가득합니다. 빠르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쁜 와중에도 자신만의 속도와 여유를 지키면서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평소 스스로의 내면을 어떻게 보듬고 지키려고 노력하시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합니다.


걷는 시간이 좋아요. 강변, 바닷가, 동네 뒷산, 이곳 역에서 저곳 역까지 등등 어디로든 걸어가려고 해요. 혼자 걷고 있으면 쓸쓸할 때도 있어요. 장마 때나 너무너무 추울 때, 또는 새벽에 혼자 먼 거리를 걸어가기도 했어요. 빗길과 눈길을. 걷다보면 조용해져요. 심심한 게 좋아요. 내면이 점점 넓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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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을 가득 채운 글귀나 단어 혹은 생각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글 쓰는 후배가 강릉으로 이사를 갔는데 후배가 매일 강릉 송정의 바다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줘요. 어떤 날은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보내줘요. ‘1일 1바다’를 선물해주는 거죠. 보내온 바다는 늘 바뀐 모습이에요. 비가 쏟아지는 바다, 흐린 바다, 파도가 큰 바다, 잠잠한 바다 등등. 수평선이 허리에 걸려 있기도 하고 또 어선이 저만치 지나가기도 해요. 그 바다에 해가 뜨고, 해가 들어가고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느덧 제 마음에 바다가 들어와 살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신선함 같은 것을 느끼는 거죠. 파도 소리와 하얀 조개껍질과 해안선과 포말과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모래사장 등이 제 마음 속을 채우는 거죠. 요즘은 후배가 보내올 바다를 기다려요.


두 번째 산문집을 통해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나요? 또 산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한만 꼽아주신다면?


세계를 접할 때에 우리의 내면에는 공간 같은 것이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한 시인은 우리들 존재를 “냇물 밑에 웅크린 까만 돌”이라고 표현했어요. 우리도 그 돌처럼 있으면서 냇물과 같은 이 세계를 감각해요. 세계를 감각할 때 내 내면에 만들어지는 공간을, 잠시 건축되었다 허물어지는 그 집을 유심히 관찰하는 일은 매우 유익해요. 관찰하면 무한하게 깊어져요. 사랑이 탄생해요. 내면에 무언가가 자라나요.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나인 거인이 깨어나는 거죠.


『바람과 물의 은혜를 받은 보트처럼』 이라는 산문을 추천하고 싶어요. 타고르의 시구에 “나의 마음이여, 바람과 물의 은혜를 받은 보트처럼 세계의 움직임으로부터 당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세요.”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 문장을 읽은 후에 얻게 된 생각을 쓴 글이에요.   


이제 막 이 책의 첫 장을 열었거나, 혹은 마지막 장을 덮고 있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말씀 부탁드려요.


산문집에서 신동엽 시인의 시 ‘너에게’의 한 부분인 “묵은 순 터/ 새순 돋듯”을 인용했는데요, 살다보면 힘든 때가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묵은 순이 있던 곳에서 새순이 돋는 모습을 떠올려보셨으면 어떨까 싶어요. 그러다 보면 마음에 의욕과 빛과 환희가 움트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곳』이 있다. 시 해설집으로 『포옹』,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이 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문태준 저 | 마음의숲
한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문장들 속에 머물며 어느새 자신의 마음 안쪽을 가득 채운 밀도 높은 평온함을 느끼는 동시에 새로운 풍경들이 활짝 피어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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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