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고도’를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앙상한 가지 몇 개가 달린 나무가 힘 없이 서 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옆에는 남루한 차림을 한 두 명의 노인이 서 있다. 두 사람의 이름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아무 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그 황량한 곳에서 두 사람은 실 없는 대화를 주고 받으며 ‘고도’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고도’는 결국 해가 저물 때까지 나타나지 않고, 그렇게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하루를 흘려 보낸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는 프랑스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으로, 그에게 1969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50년의 세월 동안 ‘고도’를 기다리는 두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목적과 이유에 대해 심도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는 세계 2차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희곡의 한 부류 ‘부조리극’의 형식을 가진 작품이다. 부조리극은 현대 문명 속에서 인간의 존재, 삶의 문제들이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소재하는 사조를 뜻하는 것으로, 부조리극 연극 속에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대사는 뚜렷하고 일관성 있게 이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 세계의 질서를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의 힘으로는 이 세계의 질서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부조리극은 관객에게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목적 없이 세계를 표류하는 존재"라는 사상을 전파한다. 그 복잡하고 난해한 세계 속에서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끝없이 해답을 찾아 나서고 삶을 탐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속 두 인물 또한 마찬가지다. 어딘가 어긋난 듯 하고 어딘가 모자른 듯한 그 결핍 속에서 두 사람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는 여정을 이어나간다.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모를 애매한 시간 속에서 언제쯤 ‘고도’를 만나게 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두 사람은 “내일은 꼭 오겠다”던 고도의 말을 믿으며 ‘내일’은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하지만 그 ‘내일’에 고도가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나온 그 시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 받고, 실없는 장난을 치고, 지나가는 이들과 대화를 하고, 서로를 미워했다가 다시 화해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잠을 자는 시간들을 보내며 그렇게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릴 것이다. 그를 기다리는 일이 바로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이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는 대체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에 답을 주지 않는다. 작가 사뮈엘 베케트 역시 ‘고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답은 없다, 그 누구에게나 ‘고도’는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고도’는 누구에게나 다 다른 것이고, 그 ‘고도’를 찾아 나서는 행위 또한 상대적이다. 다만 중요한 건 ‘고도’가 무언인지, ‘고도’를 만나게 되는지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 이르고자 하는 행위, 결핍과 궁핍 속에서 ‘고도’를 만나기 위해 보내온 수 없이 축척된 시간 그 자체이다.
이번에 공연 되는 <고도를 기다리며> 는 극단 산울림 개관 50주년을 맞아 특별 기념 공연으로 46년만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 는 임영웅 연출이 1969년 초연한 이후 약 15000회 공연되며 22만명의 관객을 만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작품으로 유수의 해외 축제에도 초정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공연에는 오랜 세월 산울림, 임영웅 연출과 인연을 맺은 배우들이 합류하여 50주년 기념 공연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정동환, 이호성, 박용수, 안석환, 김명국, 정나진, 박윤석 등 베테랑 배우들의 명품 연기는 다소 난해하고 심오한 작품을 매끄럽게 전개 시킨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를 알게 해주는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 는 6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