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꽤 많은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 <비포 선셋>의 주인공 제시와 셀린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재회하면서 비엔나에서 끊어진 줄 알았던 사랑의 끈을 이어간다. 그러니 <비포 선셋>의 팬이라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파리에 간다면 당연히 들려야 할 성지 중 하나이다. 파리를 흠모하는 우디 알렌은 아예 파리의 벨 에포크에 대한 자신의 동경을 헌정하려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만들었는데, 당연히 이 영화에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은 등장한다. 전지구적인 서점의 위기 속에서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이른바 해리 포터 서점으로 알려진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있는 '렐루' 서점과 더불어 글로벌 핫 플레이스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인기는 독서 문화의 최대의 적(?!)인 인스타그램에서도 확인된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shakespeareandcompany로 검색하면 무려 5만 9천 개의 사진을 구경할 수 있다. #shakespearandco로 검색해도 3만 1천 개의 게시물이 확인된다. 둘을 합치면 9만 여개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서점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셈이다.
<비포 선셋>이나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영화에 등장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지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화제성은 서점을 들락거렸던 단골 손님의 명성과 무관하지 않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단골손님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마음속에서 나만의 성지로 모실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는 셈이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와 자신의 인연을 헤밍웨이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 라는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헤밍웨이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뿐만 아니라 세느 강변에 있는 헌책방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세느 강변의 헌책방 거리는 1845-1849년 사이에 앙리 뮈르제가 연재했던, 파리의 예술가들의 생활풍습을 다룬 소설 『라 보엠』 에도 등장한다. 우리에겐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남자 주인공격인 시인 루돌프가 잘 알려진 소설 속 인물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구입 중독에 빠진 철학자 콜린느의 습관을 설명하는 부분을 놓칠 수 없다. 그는 콩코드 다리부터 생 미셸 다리에 늘어선 중고 책 서적 상인 사이에선 유명인사다. 콜린느는 매일 그 길을 지나가는데, 하루도 책을 사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적이 없다. 콜린느에게 책 구입은 거의 중독에 가까운 습관이다.
습관적으로 책을 사는 사람이라면 콜린느가 왜 그런지 잘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사는 기쁨은 책을 읽는 기쁨 못지않게, 책 사기를 즐기는 사람은 알고 있는 기쁨이다. 책이 잔뜩 꼽혀 있는 서가는 습관적으로 책을 사는 사람에겐 책을 사며 누렸던 기쁨의 기억 전시장과도 같다. 물론 산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 고수들은 읽으려고 책을 사기도 하지만, 책을 사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책을 사기도 한다.
'니은서점'의 마스터 북텐더 또한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모두 다 읽었냐는 질문을 꽤 자주 듣는다. 대답하기에 살짝 까다로운 이 질문에 마스터 북텐더는 이렇게 답한다. “책을 읽기 위해서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책은 산 책 중에서 읽는 것이다”. 누가 제일 먼저 이 근사한 답을 생각해냈는지 모르지만 정말 환상적인 자기 방어 논리이다.
책 구입 중독자는 출판의 ‘벨 에포크’ 이후 사라졌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의 시대에도 콜린느와 같은 사람은 적지 않게 있다. 단지 그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그들은 자신을 츤도쿠(積ん讀/tsundoku)라 부른다. “읽어낼 수 있는 책 보다 더 많은 책을 사는 습관”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츤도쿠는, 오타쿠처럼 일본에서 유래하여 전세계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단어다. 궁금하여 인스타그램에서 '츤도쿠'로 해시태그 검색해봤다. 1만 5천 개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츤도쿠는 인스타그램과 스마트폰이 전세계를 장악한 듯한 요즘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암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신내에 자리한 작은 동네 책방 '니은서점'에도 츤도쿠가 숨어 있다. 니은서점에서 가장 오래된 츤도쿠는 비밀을 털어놓자면 마스터 북텐더이다. 마스터 북텐더가 니은서점에서 사실 가장 많은 책을 사들인다. 서점 오픈한지 8개월 무렵 마스터 북텐더의 아성에 도전하는 새로운 츤도쿠가 니은서점을 방문했다.
뉴 페이스 츤도쿠는 서점 근처에 산다는 지리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시로 니은서점에 들렸고, 수시로 책을 사갔다. 마스터 북텐더는 책을 많이 팔아서 기분이 좋았지만, 곧 뉴 페이스 츤도쿠가 마스터 북텐더의 절대 지존 츤도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 같아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스터 북텐더는 새로운 경쟁자에게 지지 않으려고 책을 더 사들였다. 눈치챘는지 뉴 페이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한 장면
결국 마스터 북텐더는 타협안을 생각해냈다. 라이징 스타 츤도쿠에게 니은서점 시간제 노동 의향을 타진했고, 라이징 스타 츤도쿠는 마치 그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수락했다. 그리하여 니은서점에는 마스터 북텐더와 시간제 노동을 하는 신예 츤도쿠가 암약 중이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처럼 7명의 츤도쿠가 니은서점을 아지트로 삼아도 좋지만,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처럼 40명의 츤도쿠가 전국 방방곡곡의 서점에서 암약하면 더 좋다.
암약하는 츤도쿠가 세상에 있는 한, 책은 인스타그램과도 한 판 대결을 벌일 수 있을 테니까.
노명우(사회학자)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인생극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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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