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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10화 : 새된 여자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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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만은 시장 사거리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늘어나기 시작한 두 칸짜리 서민 한옥들 가운데 제일 구석진 자리의 집을 세 들어 살림을 시작했다. (2019. 0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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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에구머니나!”


이건 또 무슨 새된 여자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돌아보니 속곳만 입은 여자가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난 몰라앙, 하면서 방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아저씨가 몸집은 작아도 완력이 어찌나 센지 백만이의 두 팔을 찍어 누르고 식칼을 그의 목에 대고 있었다. 


 “그러니깐두루 남의 집 귀한 딸과 큼큼 동침하였으니 너 혼인을 할테냐 말테냐 큼.”


백만이는 영문도 모르고 우선 살아야겠으니 예예 장가들랍니다, 하고 캑캑거리며 대답했다. 만이 아저씨는 대답을 듣자 슬그머니 나가버렸다. 이백만은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날이 밝자마자 나가려고 부스럭거리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밥상을 차린 딸을 앞세우고 아저씨가 들어섰다. 


 “저 머시냐 큼큼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깐두루 거시기니 날짜를 멀리 잡을 필요두 웁구, 오늘 당장 자네 형 천만이 찾아가서 통고를 할 테다 큼.”


그러면서 그는 자기 딸 자랑을 하고 나서 에미없이 자란 불쌍한 년이지만 이날 여태까지 속 한번 안 썩이고 살림도 야무지게 잘해 왔다는 것이었다. 또한 자기가 혼수 비용으로 여축한 돈을 줄 터이니 한뎃잠 자고 밥 사 먹으며 살지 말고 영등포에 한두 칸 집이라도 얻으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백만은 얼결에 주안댁을 아내로 맞게 되었는데, 식구들에게는 자신이 만취하여 엄벙뗑 하는 순간에 장인에게 엮이게 되었다는 사정은 말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장인은 외손자 한쇠가 태어나자 술김에 사위에게 속내에 있던 말을 뱉어 놓았다. 


 “큼큼 내가 자넬 첨 볼 때부터 거시끼니 사윗감으루 찍어 놓았다 이 말이야 큼. 어려운 세상에 큼 기술 가진 게 인제 얼마나 큼큼 대견하냐 이거야. 그래서 술 멕여 집으루 데려갔지 큼.”


이백만은 시장 사거리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늘어나기 시작한 두 칸짜리 서민 한옥들 가운데 제일 구석진 자리의 집을 세 들어 살림을 시작했다. 한쇠를 낳고도 두 해가 지나서야 영등포 철도공작창의 정식 고원이 되었다. 그러니 견습 딱지를 떼는데 다섯 해나 걸린 셈이다. 일본인들은 공업중학교만 나와도 견습 기사 자격을 주고 소학교만 나오고도 도제를 거쳐 삼 년이면 기능공이 되었지만 조선인들에게는 절대로 책임 있는 자리를 맡기지 않았던 것이다.


주안댁은 만이 아저씨의 자랑처럼 생활력이 강한 아낙네였다. 고원의 월급으로는 원래가 제 한 몸 살기에도 팍팍했는데 집세에다 이제는 아기까지 세 식구가 되어서 혼자 벌이로는 감당키 힘들었다. 주안댁은 그때부터 친정 동네를 날마다 오가기 시작했다. 친정 동네라고는 하지만 아버지에게 찾아가 손을 벌리는 게 아니라 인천 어시장 출입을 했다는 뜻이다. 생선을 떼어 오기도 하고 오뉴월이 되면 부두에 들어오는 배에서 직접 생새우를 받아다가 집에서 육젓을 담갔다. 소금은 아버지에게서 섬으로 떼어다가 쟁여 두었다. 그래서 집안에 들어서면 언제나 갯비린내가 진동하기 마련이었다. 일본인들이 아침거리로 구이든 조림이든 국이든 생선을 즐겨 찾아서 아지 숭어 청어 정어리 병어나 일본인들에게 고급 생선인 도미 복어 등을 제철에 맞게 떼어 왔고 새우 꽃게 대합 바지락 굴 같은 것도 가져왔다. 마당에 움을 파서 대여섯 개의 큼직한 새우젓 독을 묻어 두었고 초겨울 김장철에 내다 남김없이 팔아 치웠다.


주안댁은 처음에 함지에 생선을 이고 역전 일본인 마을로 가서 집집마다 방문하며 장사를 하더니 차츰 그들의 주문을 받아다 총각 하나를 고용하여 지게를 지워 배달을 다녔다. 얼마 안가서 아예 시장에 목을 잡고 좌판을 벌여 어물가게를 냈다. 나중에 한쇠의 아내가 된 신금이가 시장에 나가 옷 장사를 시작했던 것도 시아버지 이백만이 그때는 진작 죽은 주안댁의 장사 수완에 대한 추억담을 여러 번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식구들 중에 주안댁을 기억하는 것은 남편이었던 이백만 말고는 고모할머니 이막음과 어쩌다가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나타나던 이백만의 장인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장인짜리야 어쩌다 몇 년에 한 번씩 보이다가 안 보이게 되자 작고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진 터여서 그의 존재만으로 주안댁이 예전에 한쇠 두쇠의 엄마였다는 것쯤으로나 기억되었다. 그런데 주안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사람은 역시 막음이 고모였다. 주안댁이 자다 일어나서 고구마 먹다 가슴이 막혀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막음이 고모가 신금이와 한쇠 두쇠 형제에게 해주어서 알려졌을 정도였다.


한쇠가 철도학교를 나오고 철도관사에 살게 되었을 때 이백만은 관사에 들어가 살기를 처음에는 좀 꺼렸는데, 우선 주민의 대부분이 일본인이고 예전에 그를 부리던 상사였던 치들도 있어서 거북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버드나무집에 정이 들어서였다. 버드나무집은 그들이 세 들어 살던 시장 사거리 뒷길에 있던 막다른 구석의 그 집이었다. 대문 바로 옆에 집 지을 때부터 베지 않고 남아있던 버드나무가 해가 갈수록 무성하게 자라났다. 마루를 가운데 두고 안방 건넌방 있고 대문 옆에 변소와 문간방까지 잇달린 집이었는데 문간방은 주안댁이 장사를 벌이면서 일꾼을 들인다고 대어서 지은 작은 방이었다. 두어 평짜리 방구석에는 일꾼 한 명이 누우면 발 뻗을 데도 마땅찮게 늘 소금가마가 쟁여져 있고 마당은 새우젓 독을 묻은 움이 반나마 차지했다. 어쨌든 그 집을 주안댁이 생선젓갈 장수로 돈을 모아 사들였던 것이다. 누군가 찾아올 적에는 집 모퉁이의 버드나무가 목표가 되어서 식구들도 버드낭구집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주안댁이 제 아버지 만이 아저씨와는 달리 기골이 장대하다고 그랬다. 만이 아저씨도 덩치가 작았지만 웬만한 씨름꾼이나 싸움패들을 간단히 기죽여 놓고는 했는데 그게 모두 결기가 담대해서 그렇다고 했다. 만이 아저씨는 입담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사위 이백만에게 늘 일러주던 것이다. 


 “큼큼 쌈할 때 과묵한 건 별루 큼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 말이야. 딱 맞상대 할 때에 이바구가 싸움의 절반이다 큼큼.”


칼 들고 덤비면 태연자약하게 짜식아 집에 가서 애들 참외나 깎아 주지 멀 그런 걸 내밀구 그러냐, 하고 아무튼 연장 들고 덤비는 놈은 한 팔 밖에 못쓴다구 생각하면 된다. 한 방 맞거나 자빠뜨려서 넘어졌다 할지라도 기죽으면 안 되지. 그냥 누워서 틈을 노려두 된다구. 발 들어오면 잡아채구, 일으키려고 멱살 잡으면 머리로 박치기 해주구. 그러면서두 이바구를 빼놓으면 안 된다구. 넌 오늘 일진 망쳤다. 보아하니 발발 떨구 있구나.


그런데 주안댁은 저희 아버지와는 달리 매우 과묵한 여자였다. 키도 벌써 열 살 넘으면서 아버지보다 훨씬 크게 자랐고 어깨가 벌어지고 팔다리도 길고 튼실했다. 기운이 남자보다 세어서 새우젓 독을 혼자서 냉큼 들어다 옮기는 것은 날마다 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경인선 기차를 이용했는데 이백만이 정거장의 동료들에게 말하여 화물차를 얻어 타고 다녔다. 내왕하는 화물차의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새벽에 나갔다가 오후에 돌아오곤 했다. 어떤 때에는 객차를 타고 빈 함지만 싣고 갔다가 내려올 때 화물차를 얻어 타기도 했다. 일주일 내내 그런 것은 아니라서 이삼일에 한 번씩 인천을 오갔다.


화물계 역부가 전해 주어서 백만이 알게 되었는데 한번은 큰 사고가 났다고 한다. 작은 짐은 네 바퀴 달린 구루마에 얹어다 싣기 마련인데 큰 짐들은 말 달구지에 싣고 정거장 구내까지 들어가 화물차 옆에 대고 실었다. 주안댁이 그날도 빈 생선함지를 포개놓고 기다리는데 허벅지와 다리가 튼실하고 갈기털이 뻣뻣한 노새가 끄는 달구지가 들어왔다. 마부는 우선 달구지를 맞춤한 곳에 세우고 바퀴 밑에 돌을 받쳐 놓고 기다리면 역부들이 짐을 화물차량에 부지런히 옮긴다. 짐을 동료들 어깨에 얹어주는 일을 맡은 역부 하나가 달구지 위로 올라갔고 다른 역부들이 주위에 몰려서자 노새가 발을 몇 발짝 옮기면서 동요했다. 혀 차는 소리를 내며 마부가 고삐 줄을 바싹 잡고 섰는데 삐꺽하더니 수레의 바퀴 한축이 부러지며 달구지가 기울어지고 역부가 달구지 아래로 넘어졌다. 노새가 제풀에 놀라 껑충 뛰자 마부는 진땀을 흘리며 재갈 물린 고삐 줄을 더욱 당겼다. 다른 역부가 비틀어지고 불안정해진 다른 쪽 바퀴 아래 돌을 받치려고 하는데 그마저 주저앉으며 깔려버리고 말았다. 위에 짐이 잔뜩 실려 있다가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졌지만 그래도 남은 짐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깔린 인부는 두 다리를 버둥거리다 혼절했는지 잠잠해졌다. 이때 주안댁이 달려들어 수레 밑에 쭈그리고 어깨를 들이밀더니 번쩍 치켜 올렸다고 했다. 그 사이에 역부들이 동료의 두 다리를 잡아당겨 끌어냈다고 한다. 그 일을 전해준 역부가 이백만에게 혀를 차며 말했다. 


 “글쎄 니 마누라 얼굴만 조금 붉어졌더라. 파리 잡아먹은 두꺼비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더라니까.”


이백만은 대충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신혼 때에 셋집 단칸방에서 살 적에 밤중에 방사를 치르는데 백만이가 한창 막바지로 열이 올라 마누라 배 위에서 용을 쓰고 있었다. 그때 뭔가 등 뒤에서 와지끈 뚝딱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짝이 부서져 그를 덮쳤다. 밑에서 요동치던 주안댁이 흥겨운 김에 두 다리를 들어 방문을 걷어찼던 것이었다. 하여간에 백만이는 원래가 집에서는 말이 별로 없었고 주안댁도 과묵한 편이라서 집안은 늘 절간처럼 조용했다. 게다가 백만이가 노는 날에도 집에 앉아 뭔가 작은 공예품들을 만들고 다듬고 하자 주안댁은 더욱 과묵해졌고 무엇이든 우걱우걱 많이 먹고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앉은 자리에서 궁둥이를 한편으로 기우뚱 쳐들고 방귀를 길게 푸다다다 뀌는 것이었다. 막음이 고모가 먼저 깔깔대고 웃으며 말하기를, 아 글쎄 문풍지가 달달달 떨리곤 했다니까.     

                  
 손자 이지산은 자라면서 아버지 이일철이 할아버지 이백만을 따라서 한강으로 물 구경 나가던 일을 여러 번 들었던 적이 있었고 증손자 이진오도 그것을 전해 들었다. 샛말은 물론이고 한강 일대가 오 년 동안이나 홍수가 졌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든 들으면 어떻게 오 년 동안 홍수가 지냐고 믿지 못할 테지만 그건 엄연히 그들 가족이 겪은 일이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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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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