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자 나이 29살에 인생 끝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씀에 너무 가슴 아팠어요. 주위 후진 말들에 휘둘려서 자신을 헐값으로 넘기지 마세요. 그럼 건강하게 자신의 길을 가시길.”
2017년 7월, 합정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몹시 취한 여성분이 승강장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흘끗흘끗 그 여성분을 보면서 뭔가를 수군거리고 있는 남성들이 옆에 있었다. 걱정되었다. 가서 여성분 옆에 앉았다. 잠들어 막차 놓칠까봐, 범죄 표적이 될까봐 말을 걸고 가족에게 전화하라고 시켰다. 그분은 술김에 내게 고민을 털어놓다가 또 만나자며 전화번호를 받아 가셨다. 아침이 되자 커피 상품권과 함께 죄송하다는 사과 메시지가 왔다. 나는 감사 인사 뒤에 위의 말을 덧붙여 답 문자를 보냈다.
이상하다.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익이다. 30살이면 여자도 아니다, 가치가 없어지므로 인생이 끝난다.’라는 말은 보통 듣는 이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한다. 듣는 이가 몇 살이 되든 말하는 사람은 늘 나이가 더 많다. 그렇다면 결국 자기 욕 아닌가? 자기 욕을 이렇게 뇌 맑게 할 리가 없다. 여기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
‘얼마라고요? 에이, 비싸. 이 채소 시들었는데? 이 생선 물 안 좋은데? 안 팔리기 전에 깎아서 얼마에 다 줘요’, 재래 시장에서 하는 ‘후려치기’를 감히 사람에게 하려는 의도. 그러니 상처 받지 말자. 남성들에게 싼 값에 여성을 공급해 주기 위한 목적일뿐이다. 어머니나 할머니 등 나이 많은 친밀한 여성들은 진정으로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아니다. ‘여자는 결혼해서 자식 낳고 남편과 시어른 사랑받고 사는 삶이 최고이니 더 늙기 전에,,,’ 돌이켜보니 희생을 강요당하고 산 것이 허무해서 나는 인생 헛살지 않고 나름 보람 있었다는 말을 본인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자기 위안 용도이니 흔들릴 필요 없다.
내가 다시 20대가 된다면, 여자의 나이와 한계 운운하는 후진 말에 상처받거나 고민하지 않겠다. 영화 <캡틴 마블>의 대사를 빌린다. “내가 왜 당신에게 나를 증명해야 하지?” 나를 싸게 팔아치워서, 내가 괜찮은 상품이라는 것을 왜 증명해야 하지? 여자는 나이 들수록 세상의 틀을 깨고 더 자유롭고 강해질 수 있는데도. “난 여태 통제 아래 싸웠는데 내가 자유로워지면 어떨 것 같아?” 지금 나는 40대이고 여자답게 잘 싸우며 잘 살고 있다.
박신영(에세이스트,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저자)
역사 에세이스트.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가정과 학교 등 일상에서 겪는 성차별의 부당함에 일찍부터 눈뜨고 혼자 고민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적 페미니스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