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전자책을 만드는 일?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1인 출판사 더심플북스로 10여권의 전자책을 만든 문서윤 대표를 만나 전자책 만드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왜 전자책을?
2016년, 문서윤 대표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후 여행을 떠났다. 경력이 있으니 이직을 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지만 그런 고민은 잠시 미뤄두었다. 대신 마음을 붙잡고 있던 단어, ‘디지털 노마드’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해보고 싶었다. 마침 방콕에서 디지털 유목민에 관한 컨퍼런스가 열린다는 정보를 얻었고, 당장 비행기표를 끊었다. 일정이 끝나면 좀더 북쪽, 치앙마이를 찾아 남은 여정을 즐길 예정이었다. 디지털 기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신인류에 대한 비전을 품은 채 찾은 치앙마이, 그곳에서 문서윤 대표는 본격적인 여행을 위해 습관처럼 여행가이드북을 펼쳤고, 블로그의 정보들을 입수했다.
하지만 블로그의 정보는 오류가 많았고, 손에 들린 가이드북에 표시된 주소지를 찾아가기 위해선 다시 스마트폰으로 일일이 검색을 해야만 했다. 쉽고 간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여행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이드북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구글 지도를 연동시킨다면? 고민은 하나의 기획이 되었고 혹시나 하고 챙겨 넣었던 가방 속 아이북스오서(전자책 제작 프로그램) 프로그램 해설서는 당장 시작해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디지털 노마드이기를 꿈꾸고,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문 대표는 그렇게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의 저자가 되었다.
원고 쓰기
전자책을 만들 때 원고를 쓰는 방식은 종이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서윤 대표가 『모바일 여행 가이드북 : 치앙마이』 를 만들었을 때는 원고와 편집을 동시에 진행했다. 한 챕터의 원고를 쓰고 그에 해당하는 편집을 하는 식이었는데, 직접 만든 첫 책이었고 아이북스오서의 전자책 디자인 툴도 익히면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행 가이드북의 특성상 여행지의 이미지도 보여주어야 했기에 텍스트와 이미지를 배열하는데 공도 시간도 많이 들었다. 3박 4일 혹은 4박 5일 정도의 일정에 맞춰 여러 경로를 짜 놓았고 각 경로에 해당하는 구글지도 링크도 만들어 놓았다. 책을 만들었던 2016년 당시만 해도 판형이나 디자인을 고려하지 않은 전자책이 다수였고 텍스트 위주의 책들이 많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고 싶었던 바람은 첫 책에 대한 열의를 북돋워주었고 결과적으로 이 책은 더심플북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편집과 디자인 작업
전자책의 원고는 원고대로 편집하고 거기에 사진이나 이미지를 붙여서 디자인 작업을 진행한다. 원고와 이미지를 연결한 북디자인은 종이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종이책은 인쇄를 고려해 고화질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반해 전자책은 오히려 해상도를 낮춘다는 것이다. 전자책에 사용된 고화질 이미지는 파일의 무게를 높이고 로딩 시간도 길게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더심플북스의 전자책에 사용하는 이미지의 해상도는 1MB이내로 맞춰서 사용했다. 또 디자인 작업 전에 완성된 원고가 있다면 교정 교열을 진행하는데 전자책은 출간 이후 수정이 어려운 종이책과 비교해 오탈자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고 한다. 파일을 업로드하는 방식이다보니 출간 후 오탈자를 발견한다면 수정 후에 파일을 다시 업로드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고 검수 과정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파일을 재업로드 하면 책을 구입한 독자들에게 안내 문구가 가고 독자들은 이를 다시 내려받아 읽을 수 있다.
전자책을 만드는 프로그램
전자책 읽기에 사용하는 파일은 크게 EPUB(Electronic Publication : 이퍼브) 파일과 PDF 파일 두 가지가 있다. PDF는 익숙하지만 ‘이퍼브’라는 말은 생소하다. 전자책 어플에서 다운받은 파일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하단에 파일의 형식이 표시 되어 있는데, 텍스트 위주의 책이라면 대부분 EPUB로 표시 되어 있고 이미지 활용도가 높은 책은 PDF로 되어 있다. 문서윤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EPUB는 국제 디지털 출판 포럼이 정한 전자책 표준, 쉽게 말해 종이책을 디지털로 옮기는 데 충실한 포맷이다. 제작자 입장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EPUB2 버전은 주로 텍스트가 많은 책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고 음악이나 동영상도 첨부할 수 있게 업그레이드 된 EPUB3 버전은 전자책에 멀티미디어 기능을 넣고 싶을 때 사용한다. PDF 파일은 이미지가 많거나 편집 디자인에 신경을 더 쓴 전자책을 만들고 싶을 때 사용하는데 문서윤 대표는 『치앙마이 카페 스토리』 , 『블로잉 웨스트』 등을 PDF 파일로 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미지가 많은 PDF 파일은 파일 용량도 더 무거워서 다운로드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만들고 싶은 전자책을 어떤 파일로 뽑을 지 정했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해 편집을 시작할 지도 결정해야 한다. 전자책 편집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다양한데, 현재 대다수의 전자책 제작자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시길(Sigil)이다. 문서윤 대표에 따르면 이를 이용한 전자책이 90%가 넘을 정도. 무료 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단점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면 코딩 작업을 배워야 한다는 것. 이 코딩 작업이 어려워 전자책 제작을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문서윤 대표도 그랬다. 전자책을 제작하면서 프로그램의 툴을 익히는 일은 당연한 것이지만 코딩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의외의 복병이었다고나 할까?
때문에 문서윤 대표는 워드문서 작업과 비슷한 윙크(WINK)를 프로그램으로 갈아탔다. 유료 프로그램이지만 코딩을 때로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윙크를 내놓은 제작사도 전자책을 만드는 곳인데 출판사의 필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길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시길은 EPUB 전용 프로그램으로 EPUB2와 EPUB3 파일을 모두 뽑아낼 수 있으며, 윙크는 EPUB2 파일만 뽑을 수 있다고. PDF파일은 그 유명한 인디자인이나, 아이북스오서 등으로 만들 수 있는데 거꾸로 생각해서 PDF 파일을 뽑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모두 전자책을 만들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제작에 앞서 내가 만들 책의 성격을 미리 파악하고 어떤 디자인 툴을 활용할 지 정해두는 일은 필수!
표지 만들기
내지 디자인을 완성하고 나면 표지를 만든다. 전자책에서 표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자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노출되는 이미지가 전부이며, 책에 대한 인상이 표지로만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더심플북스의 책들이 표지의 서체도 크고 컬러나 이미지가 눈에 잘 띄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표지 디자인은 주로 템플릿을 활용한다. 북디자이너의 감각으로 따로 표지를 제작하는 출판사도 있겠지만 1인출판사 위주의 경우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라면 비용절감을 위해서 아이북오서나 또 다른 디자인 제작 플랫폼인 망고보드의 템플릿 중 골라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만약 원고 내용과 내지 디자인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따로 찾고 싶다면 이미지 사이트와 계약해서 구매하기도 한다. 제목 서체 역시 구매하거나, 무료 서체를 이용한다.
자체 검수와 업로드 전 준비, 그리고 계약
디자인을 완성한 후에는 검수 작업을 한다. 원고는 따로 출력해서 확인을 거치고 화면상에서 편집에 오류는 없는지 텍스트와 이미지 배열은 잘 맞는 지 등을 페이지 별로 확인하며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는 절차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로 읽히는 전자책의 특성상 태블릿 PC나 핸드폰 상에 파일을 띄워 기기별 테스트도 진행하는 것도 필수다. 어찌됐든 직접 편집한 책의 페이지를 화면에 띄워 놓고 살펴보는 단계야말로 새내기 전자책 출판업자들에게 묘한 성취감을 주는 과정일 것이다.
꼭 전자책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책을 출간하고 싶은 이들이 꼭 거쳐야 하는 업무들이 있다. 바로 ISBN(도서등록번호)받기와 출판사 등록, 사업자등록증 받기!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을 참조하면 되는데, 문서윤 대표가 전하는 팁이 하나 있다. 모든 과정을 책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에 동시에 하면 좋다는 것. 책은 만들어 놓고 파일만 업로드하면 되는데, 꼭 필요한 서류나, ISBN이 누락되어 급하게 준비한다면 시간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업로드와 판매
전자책은 유통사에 파일 형태로 업로드 하면 바로 판매할 수 있다. 현재 전자책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한국이퍼브에 올리면 예스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까지 유통할 수 있으며 리디북스, 교보문고, 밀리의 서재, 리딩락(영풍문고), 북큐브 등은 각각의 사이트에 마련된 양식에 따라 ISBN, 가격, 서비스 시작일 지정 등 책에 관한 정보를 입력하고 파일(내지 파일, 표지파일)을 업로드 하면 된다. 이후에는 유통사마다 유효성 검사를 진행하는데 리디북스의 경우 수정사항이 없을 경우 하루 정도면 유통이 가능하고 다른 곳은 2~3일 정도 소요된다. 업로드 하기 전 미리 유통사와의 계약을 마쳐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종이책은 출간 전에 계약을 진행하기 어렵지만 전자책은 책이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미리 출간일을 정해 계약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만든 후
전자책을 만들었다면 나름의 방식으로 마케팅을 진행한다. 책의 기획 단계부터 텀블벅 같은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한다면 출간 전 책을 홍보할 수도 있고 얼마간의 독자도 확보할 수도 있다. 문서윤 대표도 첫 책을 만들 때 텀블벅 펀딩을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든든한 독자들을 만났다. 다양한 SNS 활동도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다. 첫 책 이후 더심플북스에서는 셀프웨딩 정보를 실속 있게 담은 웨딩 가이드북 시리즈를 만들었고, 치앙마이의 카페 정보를 담은 『치앙마이 카페 스토리』 , 책 작업을 통해 알게 된 카페 주인의 일러스트를 글과 함께 모은 『따뜻해 따뜻해』 , 역시 치앙마이에서 만난 색소폰 연주자의 이야기인 『블로잉 웨스트』 등을 만들었다. 이중 일부는 종이책으로도 만들어 북콘서트,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플리마켓에서 책을 팔기도 하고 엽서북, 오디오북도 제작했다.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모두 책을 통해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고 책이라서 가능한 시간이었다. 혼자 책을 만드는 일이 마냥 수월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삶의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힘이 생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