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를 찾아간 이야기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 이 시대에 여성의 글쓰기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책 『알고 싶지 않은 것들』 , 5초마다 한 명의 아이가 굶어 죽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를 준비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로렌스 앤서니, 그레이엄 스펜스 공저/고상숙 역 | 뜨인돌
이 책은 2009년에 한국에서 출판이 됐었고, 제가 가지고 온 책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개정판입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바그다드에 있었던 동물원의 이야기인데요. 로렌스 앤서니 작가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에요. 줄루란드라는 원주민 자치주에 있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관리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다가 이라크 전쟁 소식을 들은 거예요. 사실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동물원을 챙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잖아요. 그게 너무 걱정이 된 거죠. 그래서 어떻게든 이라크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민간인이었는데 결국에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안 돼서 최초의 민간인으로 이라크에 들어가게 돼요. 동물들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마음 때문에 사비를 들여서 갔던 거예요.
워낙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안 된 때라 난리도 아니었던 거죠. 호텔에 묵을 수는 있는데 정리가 되어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고, 미국 군인들이 쉬는 곳이었던 거예요. 상수도가 다 파괴되고, 변기도 쓸 수 없고, 엄청 더럽고, 모기가 몰려오고... 그런 곳에 있으면서 바그다드 동물원을 돌보기로 결정한 거죠. 그리고 동물원에 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거예요. 직원들도 거의 없이 몇 남은 직원들만 고군분투 하는데, 펌프 시설도 다 고장 났고, 상수도 안 되고, 동물들한테 당장 물을 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니까 사람들이 모든 걸 약탈해가요.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가리지 않고 떼어갈 수 있는 건 다 떼어가고, 먹을 수 있는 동물들은 다 잡아간 거죠. 도저히 동물원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인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동물원을 재건하는 내용이 책에 담기는데요.
굉장히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재밌는 내용도 많고 새드엔딩은 아닙니다. 전쟁 상황에서도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주제도 있고, 동물도 있고, 서스펜스도 있고, 스릴도 있고, 리얼리티도 있고... 손에서 책을 못 놓고 읽게 되는 게 있어요. 진짜 재밌고요.
톨콩의 선택 -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데버라 리비 저/이예원 역 | 플레이타임
박연준 시인이 인스타그램에 이 책의 사진을 찍어서 ‘올해 읽은 책 중에 최고’라고 올렸어요. 그걸 보고 저도 읽기 시작했는데 아주 아주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분이 자꾸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요. 이 분은 영국에서 어떤 위기를 맞았어요. 그러다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가 버려도 되겠다’ 해서 ‘팔마 데 마요르카’라고 하는 지중해 연안의 스페인의 섬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찾아간 숙소는 자신이 20년 전에 첫 소설을 썼던 곳이에요. 숙소의 주인은 마리아라는 여자인데, 이번에도 지친 기색의 마리아가 그대로 있었어요. 그곳에서 짐을 풀고 이런 저런 자신의 예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요. 이 분이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면서 많은 정체성 위기와 혼란이 시작돼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여성주의적 가치에서도 소외되는 것 같고, 너무 혼란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 부분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어떤 여성 작가가 굉장히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여행을 가서 자신의 인생과 작가로서 살아온 때를 반추하는 식의 상념적인 책이 되려니’ 정도로 생각했는데요. 2장으로 넘어가면 남아공이 펼쳐져요. 어린 시절에 남아공에서 살았던 때의 이야기들이 나와요. 글쓰기의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들도 나오고요. 그리고 3장으로 넘어가면 가족들과 잉글랜드로 떠났을 때가 나오는데, 자리를 잡지 못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나는 남아공 사람도 아니고 영국 사람도 아니고, 나는 이 집에 속해있지 않은 것 같고, 이 주변의 모든 문화는 쿨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런 부유하는 느낌을 계속 갖고 살게 되는 거죠.
그러고 난 뒤에는 다시 첫 번째 장에 있었던 ‘팔마 데 마요르카’의 숙소로 돌아오게 되는데, 거기에서 숙소 주인이었던 마리아는 지친 채 어딘가로 떠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데버라 리비가 이런 표현을 써놨어요. “우리는 모두 도망치는 중이기도 했을 테다.” 그러니까 처음 이야기부터 계속 이어지는 것들은, 뭔가 단단히 딛을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지거나 혼란이 찾아오거나, 그러면서 계속해서 사람을 어딘가로 옮겨놓는 기계인 에스컬레이터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그런 것인 거죠. 소설의 마지막에서 다시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시대에 여성의 글쓰기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냥의 선택 -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장 지글러 저/양영란 역 | 시공사
장 지글러 저자는 스위스의 사회학자이고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입니다. 사회민주당 의원직을 맡은 적도 있는데요. 당시 조세 관련해서 많은 발언을 하면서 화제가 됐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이력이라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유엔 인권위원회 최초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한 건데요. 그때 쓴 책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입니다. 아주 유명한 책이죠. 저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어서 이번 책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를 주저 없이 골랐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의 저자로서, 이번 책은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유엔에서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기아 문제를 목격했잖아요. 거기에 세계의 자본, 특히 그 자본의 대다수를 독점하고 있는 소수가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거죠. 실제로 책을 보면서 많은 부분 놀랐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냥 ‘자본주의는 나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났고 누구를 향해서 어떤 짓을 벌이는지를 아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는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는데요.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는 손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책에 실린 저자 인터뷰에 따르면, 아이들은 모호하게 이야기하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해요. 아이들에게 말할 때는 명확하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은 경제, 사회, 정치 등의 정보를 잘 모르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해요.
우리가 ‘통계로 보는 현실’에는 이미 익숙한 것 같은데요. 85명의 부자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만큼의 부를 차지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 익숙해서 실감이 안 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려줍니다.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인간은 말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건 확실하게 알아. 이 할아버지는 5초마다 10세 미만 어린이 1명이 배가 고파서 혹은 배고플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걸린 병 때문에 죽어가는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 이 말에 공감하는, 이런 세상은 잘못됐고 이런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두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42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연꽃폴라리스
201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