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알림장에 하얗고 작은 메모지가 붙어 온다. 특별활동비 1만 5천원을 입금하라는 안내와 계좌번호가 작은 글씨로 쓰여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어린이집 기본 보육료는 앱에서 아이행복카드로 결제하면 끝이다. 정부와 어린이집 사이에서 입출금이 이뤄진다. 특별활동비는 다르다. 양육자가 어린이집 계좌로 직접 입금해야 한다. 그 일을 잊지 말라고 어린이집에서는 매월 10일을 전후해서 메모지를 붙여준다. 작년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정확히 11번의 메모지를 받았다.
12번째 메모지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왔다. 1월 20일을 전후한 어느 날 붙어왔다. “어린이집 운영에 관한 긴급한 사항이 있어 부모님들께 알려드리려 한다”며 며칠 뒤 어린이집으로 모여달라는 공지였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다가 떠오른 것은 며칠 전 아내가 한 이야기였다. 어린이집에 있던 [서울형 어린이집] 이라는 간판이 갑자기 안보이더란 것이다. 어떤 요인에서 결격이 발생해 탈락하게 되었고, 아마 그 사실을 공지하려는 게 아닐까 추측했다. 지안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민간 어린이집으로, 서울형 어린이집에서 탈락할 경우 대개 보육료가 오른다.
공지된 날짜에 다녀온 아내는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해왔다. 서울형 어린이집 탈락 정도가 아니었다. 어린이집을 폐원한다는 소식이었다. 운영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아이들이 한 해를 채우는 2월까지만 아이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당황 당황 당황스러웠다. 폐원 소식을 들은 날은 지안이가 태어난 지 천 일이 되는 날이었다.
당장 3월부터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대개의 어린이집들은 이미 3월에 입소할 아이들이 확정된 뒤였다. 아이사랑 앱으로 동네 어린이집들의 대기자 수를 보고, 몇몇 곳엔 혹시 자리가 없는지 직접 전화를 해봐도 당장 자리가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2년 전부터 대기신청을 해둔 어린이집이 한 곳 있었지만 올 3월까지는 순번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일단은 그나마 대기자가 적은 어린이집에 입소대기 신청을 해두고 앞 순번에서 이탈자가 생기길 기다려야 했다. 화가 났다. 몇 주만 일찍 알려줬어도 이렇게까지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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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이 아니었고, 번듯한 사립도 아니었던 이 작고 낡은 어린이집은 우리가 보기에도 재정상태가 좋을 리 없어 보였다. 아이를 맡길 때도 우리 눈에 차지 않았다. 건물은 겉과 안이 고루 낡았고, 아이들 공간은 비좁았으며, 교구나 장난감도 집에 있는 것보다도 부실해 보였다. 식사만은 친환경 재료로 괜찮게 나온다는 평이 있었는데, 과거자료를 보니 감독기관에 식재료 관련해 주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조금 찜찜했으나 주의를 받았으니 잘 챙기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여기에 가지 않았을 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탓이다. 지안이의 순번은 이곳 말곤 모든 곳에서 너무 뒤에 있었다. 어린이집 신청을 준비성 있게 챙기지 못한 우리 탓에 지안이는 이 곳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엉엉 서럽게 울었다. 아내는 그런 아이를 놓고 돌아서는 마음에 대하여 내게 얘기해주었고, 나는 아이의 마음과 아내의 마음을 짐작하며 때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누구나 겪는 일이라 대수로울 것은 아니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들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정도는 출렁이게 한다.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내 마음은 자주 출렁였다.
첫 주는 한 시간만 있다가 오고, 그 다음 주엔 두 시간, 그 다음엔 밥도 먹고 오고, 그 다음엔 낮잠도 자고 오고, 그리고 나서 마침내 풀타임을 있게 된 건 두 달 가까이 되어서였다. 그 즈음의 지안이는 아침에 일어나 어린이집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 가끔 가기 싫다며 찡찡대긴 했지만, 다녀와선 즐거웠다고 했다. 하지만 내 짐작엔 어린이집을 편하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한 번씩 올려 주시는 사진을 보면 아이는 거의 늘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서고 웃고 뛰는 사진이 올라올 때, 지안이는 행동도 표정도 다소 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한여름 정도가 되자 지안이는 확연히 달라졌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들려 주었다. 날이면 날마다 새 노래를 들려주고, 누가 아파서 어린이집에 못 왔는지, 누가 장난감을 뺏으려고 했는지, 어떤 친구는 말을 하고 어떤 친구는 말을 못하는지, 오늘은 얼마나 큰 고구마를 캤는지 등 묻지 않는 것도 술술 풀어 놓았다. 어린이집에서도 달라진 것 같았다. 맨 앞으로 나와 활짝 웃거나 힘껏 뛰는 사진이 늘어갔고, 알림장에 선생님이 써주시는 말씀에도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지안이가 느껴졌다. 집에서의 모습과 상당히 가까울 정도로 적응한 것 같았다. 때로 투 머치 토커가 되기도. 지안이는 조심스러워서 조금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 같다. 어릴 적 나도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거쳐온 지안이가 대견하면서도 짠하게 느껴졌다.
원래는 일 년만 보내고 주변의 크고 평이 좋은 어린이집으로 옮기려 했는데 옮기는 게 망설여질 정도로 지안이의 모습이 흡족했다. 아이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아마도 선생님들께서 세심히 보살펴주신 덕분일 것이다. 갑작스런 폐원 결정에 당황스럽고 화도 나지만 마음 한 켠에 감사함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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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다닐 날이 얼마 남지 않은 2월의 어느 날. 아이가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를 집에서 곧잘 부르는 편이라, 또 새 노래 배웠구나 했는데, 가사가 귀에 꽂혔다. ‘떠나가게’ 같은 말도 나오고 ‘안녕히 계세요’ 같은 말도 들렸다. “지안아 그거 무슨 노래야? 아빠한테 들려줄래?”하고 관심을 보이니 아이가 신이 나서 환한 얼굴로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 주었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그건 분명, 이별의 노래였다. 아이가 너무 즐겁게 불러서 노래가 너무 슬펐다. 검색해보니 어린이집 졸업가였다.
아침마다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던
사랑하는 OOO 떠나가게 되었네
우리 우리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어깨동무 내 동무 잘 있거라 또 보자
며칠 후 하나의 메모지가 도착했다. 마지막 메모지였다. 어린이집 수료식을 알리고 있었다. 아마 수료식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리라. 지안이는 이 노래를 웃으며 부르게 될까, 울며 부르게 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수료식이 있던 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지안이는 아빠 아빠 부르며 어린이집에서 받은 선물을 자랑했다. 마지막이라고 선생님이 선물을 여럿 챙겨주셨다. 아이들마다 상장도 하나씩 받았는데, 지안이가 받은 상은 ‘이야기꾼’ 상이었다. 지안이의 이야기에 대해 알림장에 몇 차례 따뜻하게 써주셨던 게 기억나서, 그 상장을 보니 또 마음이 출렁였다. 선생님은 마지막 인사를 알림장에 빼곡히 마음을 담아 적어 주셨다. 우연이겠지만 수료식 사진에서도 지안이는 뒤에 있는 선생님에게 안기듯 서 있었다. 조금 울컥한 내 앞에서 지안이는 활짝 웃으며 선생님이 좋다고 했다. 이제는 만나지 못할 선생님을.
폐원으로 인해 새 어린이집을 찾는 수고도 수고지만 지안이가 선생님과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너무 아쉽다. ‘사회’에서 만난 첫 인연들과 이런 방식으로 헤어지는 것이, 어른인 내 시각에선, 정말 짠하다. 다들 다른 어린이집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지안이는 새 어린이집을 찾았다. 운이 좋게도 원래 마음에 두고 있던 곳에 결원이 생겨 막차로 들어갈 수 있었다. 2년을 대기한 보람이 있는 걸까. 아이도 어린이집이 처음이 아니어서, 처음처럼 적응에 오래 걸릴 것 같지 않다. 사실 시설도 장난감도 너무 급격히 업그레이드 되어 아이 입장에서도 좋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규모가 있는 곳이다 보니 예전 어린이집처럼 살가운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일이 잘 풀려서 한시름 놓고 3월을 맞이한다.
새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도 마쳤다. 수료식은 했지만, 선생님을 한 번 더 찾았다. 아내와 지안이가 방문해 선생님께 선물도 드리고 그간 감사했습니다 인사도 드렸다. 충분히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했다.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을 아내와 지안이가 챙겨주어 고마웠고 새삼 배웠다. 폐원에 대처하는 것은 새 어린이집을 구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간의 인연에 합당한 감사를 전하고 잘 이별하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달리, 친구들과 부모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나마, 친구들과 그 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안녕을 빈다. 덕분에 지난 한 해, 무탈했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우리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어깨동무 내 동무 잘 있거라 또 보자.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coro80
2019.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