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문학의 현재를 보여주는 문제작
전쟁이 끝나고 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돌니 실롱스크로 강제 이주해 온 폴란드인들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가 지금껏 발표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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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한 신화적인 마을 ‘태고’. 허구와 현실이 절묘하게 중첩되는 공간인 이 가상의 마을은 기이하면서 원형적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 올가 토카르축은 세계의 소우주인 이 마을에서 20세기의 야만적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시간을 기록한다.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로부터 분할 점령당했던 시기, 1ㆍ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과 전후 폴란드 국경선의 변동, 사유재산의 국유화, 냉전 체제와 사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폴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이 마을 주민의 신화적 삶과 어우러져 장엄한 우화를 빚어낸다.


실제 역사적 현실과 신화적ㆍ환상적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낸 구성이 흥미롭다. 이런 구조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이 작품은 어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상당히 구체적이면서 매우 동화스러운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그려낸 가족사다. 리얼리즘과 동화적인 요소를 버무리지 않으면, 이 괴상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미시 서사는 우리 할머니가 내게 이야기해주신 것이다. 나머지 일부는 저절로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늘 미크로코스모스(소우주)와 마크로코스모스(대우주)는 서로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왔다. 나이가 들수록 커다란 사건이나 현상들 속에 투영되어 있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우리의 작은 흔적들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발견(혹은 느낌)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아찔한 체험 중 하나이다. 내게 있어, 자연은 우리 인간을 포함하는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이며, 인간보다 훨씬 지혜로운 대상이다. 나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게노베파, 미시아, 크워스카, 플로렌틴카, 루타, 아델카 등 역사의 비극 뒤편에서 잊힐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삶을 복원하고 그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 읽었다. 여성의 삶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다.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역사 속에서 여성의 자리는 남성의 그것과 비교할 때, 늘 턱없이 부족했다. 여성의 흔적이 사라진 기독교의 복음서에서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항상 그래왔다. (예를 들어 폴란드에서는 1980년대 자유노조의 민주화 운동을 조명할 때, 여성의 참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역사라는 것이 일상의 내밀하고 사적인 측면으로도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이 전쟁을 기록할 때나, 평화를 기록할 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게임, 특히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설정은 어떤 의미인가?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증과 상실감을 앓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종교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과거의 인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초월성이나 형이상학 따위는 제쳐놓은 현대인도 아니다. 그 경계선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가 몰두하는 게임은 세상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은유적이고, 축약된 버전의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보드게임이라는 구성을 통해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내러티브 형식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이런 게임이 진짜로 만들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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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은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세계 2차대전 직후, 돌니 실롱스크(Dolny Slask) 주(州) (옮긴이 주 : 폴란드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체코, 서쪽으로는 독일과 국경을 접한다. 인구는 약 290만 명으로 주도는 브로츠와프(Wrocław)이다. 현재 토카르축은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대하소설을 쓰고 있다. 이 시기야말로 전후(戰後)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선의 변동 (옮긴이 주: 동맹국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패배로 세계 제 2차 대전이 종결되면서 폴란드의 국경선은 얄타회담과 포츠담 회담을 통해 새롭게 조정되었다. 얄타 회담으로 인해 폴란드는 동쪽에서 약 18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영토를 상실했고, 포츠담 회담의 결과로 오데르와 나이세, 두 강(江)의 동쪽에 있는 옛 독일 영토 10만 2700제곱킬로미터가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이에 따라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등에 거주하던 폴란드인들에 대한 송환협정(送還協定)이 체결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현재 폴란드 영토의 남서부와 북서부 지역에 강제 이주 당했다)과 더불어 이 지역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상당히 흥미로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돌니 실롱스크로 강제 이주해 온 폴란드인들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가 지금껏 발표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신에게 있어 글쓰기란?


내게 있어 글쓰기란 정직한 행위다. 뭐든 생생하게 겪고 느껴야만 글로 옮길 수 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감흥이 솟아나지 못하면, 자연히 할 말도 없게 된다. 글로는 절대 속일 수가 없다. 그렇기에 글쓰기야말로 가장 정직한 행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다른 존재 혹은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려는 시도다. 공감의 가능성, 바로 여기에 글쓰기의 본질과 매력이 있다. 어떤 인물을 창조하려면, ‘나’라는 인물에서 빠져나와 그 인물의 감정을 느껴야 하고,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사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본성이며, 모든 사람이 다 이러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글을 쓰는 덕분에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을 경험할 수 있고,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굴레로부터 빠져나와 생의 범주를 넓히려는 시도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타진이며, 타인과의 경계선, 거리, 혹은 단절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관심 있는 한국 작가 또는 작품이 있다면?


폴란드에는 한국문학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동양의 꽃(Kwiaty Orientu)’이라는 출판사가 있다. 덕분에 폴란드어로 한국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읽을 수 있다. 한강의 소설은 물론이고, 박태원이나 황석영과 같은, 이제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읽었다. 최근에는 김수키(Kim Suki)가 쓴, 북한에 대한 소설을 읽었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작가님의 장편소설이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국에서  『태고의 시간들』 이 출판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부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저의 다른 책들도 한국에서 계속 선보일 수 있기를, 무엇보다 이 책이 꼼꼼하고 사려 깊은 독자분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 번역: 최성은(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 번역가)

 

 

 

 


 

 

태고의 시간들올가 토카르축 저/최성은 역 | 은행나무
냉전 체제와 사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폴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이 마을 주민의 신화적 삶과 어우러져 장엄한 우화를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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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