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의미 있게 관찰하는지”를 ‘부사와 형용사의 세계’에서 조금 더 생각하는 것이 작사가의 일이라고 말하는 작사가 심현보는 지난 12월 『가볍게 안는다』 라는 제목의 에세이와 곡을 동시에 발표했다.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가볍게 안는 일이 어쩌면 살아가는 일의 전부가 아닐까”라고 말하는 그는 여러 계절 동안 책과 노래를 만들고 다듬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순간들을 정성스럽게 담아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는 심현보는 봄이 오면 모습을 보이는 동네 식당의 야외 테이블, 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몽상에 잠기는 시간처럼 구체적인 순간을 기록했다. 그것은 단지 좋아하는 것들의 나열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안하는 일이었다.
아주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들, 나중에 보면 “왜 썼지, 싶은 것들”까지 담아놓은 매일의 기록은 “그럼에도 이런 것을 쓰는 게 그때그때를 의미 있게 바꿔주는” 일이라 좋다. “지나고 나서 보면 별것 아닐지언정 그냥 ‘좋았다’ 하고 지나치는 것과 어떻게 좋았는지를 조금이라도 써놓는 것은 아주 다를 것”일 테니 좋은 것이다. 좋은 것들이 모여 근사한 어떤 것이 된다고 믿는 심현보. 그의 목록을 엿보다가 자꾸 자신의 순간을 돌아보게 되는 사람이 나뿐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커피를 내리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당신과 지구 사이의 무게축이 오른쪽 다리에서 왼쪽 다리로 조용히 옮겨가는 순간이라든가, ‘세탁’을 외치며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도는 세탁소 아저씨의 목소리가 어쩐지 조금 더 활기차게 느껴지는 순간. 자동 세차기를 통과하고 나왔을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왠지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19쪽)
더 자질구레하게 더 자주 좋아하는
책 쓰면서 좋으셨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는 글쓰기 자체가 기분을 좋게 하잖아요. 어떠셨어요?
일 때문에 쓰는 글이 있죠. 그런 글도 어찌 보면 일상적인 소회나 경험이 조금씩 들어가는 것 같긴 해요.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두는 것은 저의 익숙한 생활 패턴이고요. 다만 그동안 키워드나 장면 위주로 짧게 적었다면 에세이를 쓰고 싶단 생각은 쭉 했었어요. 짧은 글이 좀 있었고, 그것들을 어떤 식의 글로 모을까 생각하다가 이 책이 되었죠. 일상에서 포착하는 것 중 제일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가 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이 다른 분들과 다를 수 있겠지만요. 제 글을 통해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글을 시작한 계기도 그거였어요.
좋아하는 것들이 아주 자세해서 흥미로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좋아하는 게 많은데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지나가게 마련이죠. 저도 그렇고요. 그런데 좋아하는 것들은 사실 각자의 시간과 일상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런 걸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쓰고, 읽으시는 분들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생각했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자신과 달라도, 비슷해도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걸 안 좋아하시면 자신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남들과 비교해서도 좋아하는 것이 많은 편인 것 같단 생각은 들거든요.(웃음)
더 자질구레하게 더 자주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웃음) 저는 진짜 파란색 야외 테이블 좋아하거든요. 편의점 앞에 늘 있는 그 테이블 있잖아요. 그게 편의점 앞에는 늘 있지만요. 제가 좋아하는 건 동네 조그만 술집에서 봄이 되고, 사람들이 바깥에 앉을 법한 날씨가 됐을 때 딱 내놓는 그 테이블이에요. 그걸 어느 날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요. 그러면 적어두죠. 단어나 문장을 수집하고 적어두는 것은 가사를 쓰면서 생긴 꽤 오랜 습관인데요. 어떤 것들은 가사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좋아하니까 적어두는 것들이 있는 거죠. 그것들이 이번 책에는 담긴 것 같고요. 좋아하는 게 많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별 거 아닌 것들이 나한테는 별 거여서 그것을 기다리거나 보는 것이 좋으면 좋잖아요. 그것들을 삶에 잘 배치해두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점점 더 자주하게 돼요.
“자질구레한 것들을 좋아한다”(18쪽)는 문장도 적으셨는데요. 그 자질구레한 것들의 매력이나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음악하고, 가사 쓰면서도 많이 생각하는데요. 사실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동화하게 되는 이야기는 대부분 이런 일상적인 것들 같아요. 물론 큰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겠지만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자질구레한 것들에 더 많이 공감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나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들 말이에요. 또 그런 것들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시간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드라마와 달리 대부분 우리는 비슷한 일상을 지내는 것 같고요. 노래 가사에는 그런 일상성이 담보된 경우에 훨씬 더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얻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모여서 무언가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일상에서는 해야 하는 것들,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들이 놓여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두 개 배치하면 한결 낫겠죠.
하루짜리 일상들
일상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여행을 가도 그 안에는 또 일상이 있잖아요. 여행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서 일상을 살면서 여행하는 나를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거든요. 가기 전에 설레고, 기대도 되고요. 그런데 또 막상 가보면 거기의 일상이 있죠. 그런 것들이 다 사람에게는 행복감을 주는 것이고요. 그게 모여서 자신이 의미 있어진다고 느껴야 하는데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일상에 자질구레한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무언가 근사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267쪽)고 에필로그에 적었는데요. 아마도 이 문장이 작가님의 중요한 주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계획들이 있죠. 꿈이라고 해도 좋고, 계획이라 해도 좋은데요. 이것들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가 돼요. 저도 계획 세우는 거 되게 좋아해요.(웃음) 1월 1일에 하는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계획 세우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것들을 잘게 나누면 또 다시 하루짜리 일상들인 거잖아요. 계획들에 너무 부대끼고,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 하루라서 오늘이 의미 없는 것 같으면 과연 좋은 걸까 싶어지는 거죠. 하루 단위의 나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쉽지 않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는 일도 많고요. 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을 성취해서 얻어지기도 하지만 성취와 상관없이 내가 무언가에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매일 식물을 돌보는 마음과 그렇지 않는 마음은 다를 것 같아요. 일상 속에 배치되어 있는 것들은 내가 좋아하고, 마음을 쓸 수 있고요. 그것들만 조금씩 만들어둬도 좀 나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작가님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체를 즐기는 것도 같고요.
그런 것 같아요. 겨울이 참 힘든데요. 겨울에도 좋아하는 것을 만나거나 좋아하는 것을 하러 가면, 좋아하는 것을 먹으러 가면 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속 편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없잖아요. 일상이란 게 그리 녹록지가 않고요. 좋아하지 않는 것을 훨씬 더 많이 만나야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의미를 조금이라도 더 두는 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덜 힘들게, 덜 무너지게, 혹은 덜 아프게 할 수 있는 방법 말이에요. 다른 사람이, 외부 세계가 어떻게 날 대하는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정성과 시간, 마음을 잠깐이라도 쓰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좋아하는 게 많은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늘려나가는 노력이야말로 각자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 책이 어찌 보면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떻게 보면 취향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조금 크게 보면 어떤 사람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혹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거든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는 것, 좋은 것 같아요. 어떤 것은 좋아하다 말 테고요. 어떤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끝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에도 크게 의미 안 두고 ‘나랑 안 맞나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좋으면 하는 거죠, 뭐. 저는 동네 공원에 가는 걸 진짜 좋아해요. 다만 30분이라도 잠깐 앉아 있는 건데요. 이건 저의 생활 방식이고요. 각자에게 그런 것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너무 내 위주 말고 조심스럽게 내 위주로
낮술 에피소드가 참 좋았어요. 내키지 않는 낮술 약속에 가는 길, 여행자를 보고 잠깐 ‘이렇게 살아도 좋은 걸까?’ 생각에 잠기는데요. 막상 약속 자리에서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죠. 그리고 이렇게 적었어요. “그냥 각자의 시간을 살면 된다”(119쪽)라고요. 매번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닌 거예요.
매 순간 해야 하는 사소한 선택이 너무 많죠. 사소한 것이 모여서 근사한 것이 된다고 한다면 뭔가 선택을 더 잘해야 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어요. 부담스럽고, 마음 편하게 좋아할 수가 없을 것 같아지고요. 그런데 책 제목이 『가볍게 안는다』 잖아요. 선택해야 하는 것, 놓치면 안 되는 것, 잘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는데요. 저 역시 높은 경지에 못 다다라서 그런지 둘 다 너무 어렵거든요. 대범하게 놓아버리지도 못하고, 노심초사 하며 부여잡고 있지도 못한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냥 일상이나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과하지 않은 강도로 가볍게 쥐고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목도 이렇게 정한 거예요.
사소한 순간과
소소한 기억
사사로운 찰나들과
자질구레한 일들
내가 사랑하는 이 모든 것들을 가볍게 안는다.
너무 움켜쥐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놓아버리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가볍게 안는다.(21쪽)
이 생각은 삶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해당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것을, 어떤 관계를 너무 꽉 부여잡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공간이 있는 상태로 하지만 마음 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정도로만 가볍게 아는 거죠. 말로 하니까 좀 어려운 것 같지만(웃음) 그래요.
결국은 태도의 문제겠어요. 삶을, 사람을, 그리고 나를 대하는 태도 말이에요. 서두에도 ‘나의 나’라는 표현을 쓰셨잖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덜 드러내는,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을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저도 어른들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고요. 한편 요즘은 나를 지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 이야기가 다 맞는 것 같아요. 다만 함량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중요하니까 남에게 피해를 줘도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를 망쳐가면서 사람들에게 애쓰며 살 필요도 없죠. 함량의 문제일 뿐이고요. 그것은 비단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에도 해당하는 말일 거예요. 나를 잘 지키면서도 다른 것과의 관계도 무너지지 않게 잘 가져갈 수 있는 게 어떤 것인가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들 내 위주로 사는데요.(웃음) 너무 내 위주 말고 조심스럽게 내 위주로 사는 거죠. 그런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너무 내 위주 말고 조심스럽게 내 위주, 너무 좋네요.
“그래그래,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이렇게 되는 거 있잖아요. 한 사람이 “전부터 먹고 싶었던 게 있는데 너만 괜찮다면 그거 먹으러 가면 좋겠어”라고 조심스럽게 그 사람 위주로 얘기를 하면 나도 기분 좋게 “그래, 오늘 그거 먹자”가 될 수 있는 거죠. 점점 그런 게 더 중요해지고, 의미 있어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러려고 애를 쓰고 있고요. 또 제 선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단추를 꿰는 작업이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배치하는 일인 것 같아요. 어찌됐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위주로 배치할 수 있으면 그렇지 않았을 때와는 다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찾아내려고 너무 애쓰며 살 필요는 없는 것 같고요.(웃음)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더라고요. 신기할 정도로 그래요.
“삶의 재미와 의미의 차이는 형용사와 부사 같은 것들에서 나온다”(43쪽)고 한 말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봄이 아니라 ‘어떤’ 봄인지, 또 봄을 ‘어떻게’ 좋아하는지 생각하면 조금 쉬워지더라고요.
가사 쓸 때 제가 제일 중요하게, 그리고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거예요. 사실 노래 가사가 대부분 사랑 얘기 아니면 이별 얘기죠. 동사는 정해져 있어요. 그 수많은 노래 가사는 결국 부사나 형용사가 바꿔주는 이야기거든요. 어떤 사랑을 했는지, 어떻게 헤어졌는지, 어떤 식으로 아픈지 말이죠. 그런 게 삶을 풍성하게 해주고, 다양한 색깔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각자에게는 그런 게 분명히 다 있더라고요.
일상적인 것들이 중요해요
곡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와 생활하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가사를 쓰기 이전부터 저는 그런 사람이었겠죠. 그런데 이런 형태의 일을 하다 보니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가 됐을 테고 그게 다시 저에게 영향을 주는 걸 텐데요. 노래 가사를 쓰고, 글을 쓰는 게 관찰하거나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것들을 즐기기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떨 땐 넋 놓고 있기도 한데요. 뭔가 보이거나 생각이 나면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으려는 노력이겠죠.
관심이나 애정, 성의일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너무 시큰둥하게 살지 말자는 내용이었어요. 시큰둥한 것이 가장 시간을 의미 없이 사용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시간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것도 습관 같아서 그냥 계속 시큰둥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 시간을 줄이면 좋겠다는 메모를 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습관이나 삶의 태도 비슷하게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작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기도 할까요?
많이 하는 말이에요. 본인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이 가사에 분명히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사는 생활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글이 그렇겠지만요. 저는 작사에 관심 있다고 하시는 분들한테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평소에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이나 어떤 이야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려고 애쓰는지가 중요하다고요. 같은 상황을 보고도 각자 포인트라고 하는 것을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니까요. 가령 강남역을 지나가요. 남녀가 대치하고 있고요. 이때 ‘아, 헤어지지 말지’라고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거죠. 저한테는 그런 상황들이 가사가 되거든요. 강남역이라는 장소와 사람들이 다니는 시간대, 그들의 모습과 풍경이 가사가 될 수 있어요. 같은 장면을 보고도 누군가는 다른 상상을 할 것이고요. 그래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의미 있게 관찰하는지 많이 생각해보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조의 <좋아해> 가사가 떠오르네요. 공감을 일으키면서도 잊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 작사가의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 가사 쓰면서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어요.(웃음) 사람들에게는 잘 안 물어보니까 모르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때는 정말 그랬는데요. 좋아하는 영화를 몇 번씩 보는 거예요. 대사를 따라하면서 보는 거죠. 그래서 나온 가사가 ‘몇 번이나 본 로맨틱 코미디’였어요. 사람들 다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 쓴 건데 실제로도 그렇더라고요. 그게 결국은 내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들이 많다는 얘기일 거예요. 가사에 그런 공감의 요소들이 잘 발췌되면 사람들이 더 빨리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진짜 노래 가사는 일상적인 것들이 중요해요. 가사 쓰는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서도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생각해보는 건 제게 아주 중요한 일일 거예요.
자주 행복한 게 최고
앞서 1월 1일에 계획 세우는 것도 좋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올해는 어떤 계획 세우셨어요?
2주 이상의 여행을 올해 두 번 꼭 하겠다고 적어뒀는데요.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작년에도 긴 여행을 못 갔거든요. 사실 계획도 세웠다가 못 갈 수 있잖아요.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게 너무 좋아요. 어떤 것들은 되고, 어떤 것들은 안 되겠죠. 이것 역시 좋아하는 것들을 배치하는 것과 비슷해요.
최근에 한 시인이 쓸데없는 다짐을 하는 것이 계획이라고 쓴 걸 봤어요.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으니 재미있네요.
다들 그렇겠지만 그냥 해보면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되게 많은데 안 해도 별 상관이 없으니까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건 굳이 해서 또 괜찮은 것들이 있거든요. 말씀처럼 별 의미 없고,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고, 하다가 말 수도 있는데요. 그냥 떠오르는 것들을 그때그때 해보는 것도 괜찮은 게 아닌가 싶어요. 해보니까 의미 없네, 안 할래, 할 수도 있죠. 그것도 자연스러운 거고요. 어떻게 사람이 일관성 있게 하나의 태도만 가지고 살 수 있겠어요. 다만 그것들이 본인이 흥미롭고 행복한 쪽으로 변해가면 좋겠죠. 요즘 정말 많이 하는 말인데요. 자주 행복한 게 최고 같아요. 좋은 게 많으면 자주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때로 시큰둥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순간에 나를 다시 깨우는 작가님의 방법은 뭔가요?
매번 다른데요. 어떨 땐 여행이기도 하고요. 어떨 땐 다 끊고 한동안 혼자여야 할 때도 있어요. 또 어떨 땐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할 때도 있죠. 그런 방법도 점점 경험의 수가 쌓이면서 만들어져요. 목욕도 엄청 좋아하는데요. 그것도 매해 다르더라고요. 어떤 해에는 유독 더 목욕이 필요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되게 힘들었을 때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만 낫는 느낌이어서 그랬던 것 같거든요. 그런 방식이 각자에게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각자가 나름의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할 거예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좋아지는 건 무엇인지도 듣고 싶어요.
피부가 너무 건조해져서 힘들어요.(웃음) 글쎄요, 모르겠어요. 각 연령대가 좋기도, 힘들기도 한 거겠죠. 그런데 요즘은 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조금 하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자주 만나고 즐겨 만나는 사람들이 30명쯤 있다면 그 중 서너 명은 되게 좋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인데, 다섯 번쯤 만나면 두세 번은 힘들었던 거예요. 이럴 때 그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잖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은데요. 요즘은 그냥 내가 너무 부대끼고 힘들면 덜 만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로 인해 잃는 것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들을 감수하면서 힘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유연해지는 건지 실제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요.
처음에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해주신 것 같은데요. 어떤 상황에 있는 분들이 읽었으면 하시는지 궁금해요.
누군가가 어떤 것을 의미 있어 하며 사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에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에세이 읽기를 아주 즐겨 하는 편인데요. 이 책은 제 일상의 구성 요소들, 제가 살면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은 것이고요. 쓰면서도 한 생각이지만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은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지금 부대끼는 분들, 내가 너무 흔들리는 분들이요. 행복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점점 더 많이 생각하고, 행복에 근접해 가는 게 사는 일의 거의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돼요. 살면서 그 요소들을 몇 가지라도 더 발견하는 게 매일의 아주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도 결국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계단 같은 것들이니까요. 내 시간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써나갈지 생각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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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안는다심현보 저 | 미호
오늘의 사소한 순간들과 소소한 일들을 가볍게 안았듯이 ‘나’ 역시 가볍게 안아야 한다. 버거움이 차오르면 울어도 보고, 시간을 죽여서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에서 벗어나보기도 해야 한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