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가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라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토마스와 함께 성장해온 친구 앨빈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세월의 흐름 속에 잊고 지낸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인데요. 이번 시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스팅은 역시 초연부터 함께한 배우 이창용 씨가 아닐까 합니다. 역대 모든 토마스와 호흡해온 ‘이창용만의 앨빈’이 궁금했는데요.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이창용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자부심은 있어요. 형들이 ‘스토리 장인이다, 시조새다’ 하시는데, 놀리는 것 같지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 작품에 큰 부분을 차지한 거니까요.”
초연이 2010년이니까 이창용 씨 배우 인생과 함께 한 작품이기도 하죠. 그런데 시즌마다 제작사에서 연락이 오면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번 시즌에는 또 무엇을 찾아내야 하나 부담이 될 것도 같습니다.
“그런 마음도 있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토마스에 따라 디테일한 부분만 조금 달리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새로운 시즌이라고 무언가 하려는 건 오히려 욕심인 것 같아요. 이번 시즌의 포인트는 좀 더 어른스러운 앨빈이에요. 극 중 앨빈과 토마스의 나이가 서른다섯 살이거든요. 제가 27살에 처음 앨빈을 연기했는데, 이제 제 나이를 찾은 거죠. 지금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타이밍인 것 같아요. 제 삶에서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 기간 동안 성숙된 부분도 있을 테니까 그런 모습이 좀 더 섬세하게 무대에서 나오면 좋겠어요.”
나이가 들면서 앨빈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앨빈은 어떤 사람인가요?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요(웃음)?
“비현실적이죠. 이런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어릴 때부터 저의 끼나 재능을 알아봐준 앨빈 같은 친구들이 저에게도 있고요. 사실 앨빈도 똑같은 사람이라 분명히 섭섭함도 느낄 텐데, 제가 생각하는 앨빈은 그 섭섭한 마음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토마스가 좀 더 훌륭한 작가가 되도록 배려하고 도와주는 친구예요. 때로는 토마스의 엄마 같은 친구죠. 엄마들은 자녀들의 말에 상처받지만 티내지 않고 희생하고 잘 키워내잖아요.”
이창용 씨는 극단적으로 나눴을 때 앨빈과 토마스, 어느 쪽에 가깝나요?
“이런 질문 많이 받아왔는데, 아무래도 토마스에 가깝죠. 제 일 하느라 주변 사람 못 챙기고. 이 작품을 하면 친구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전화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만 착한 척 하는 거죠(웃음).”
같은 2인극에 여러 시즌 참여하면 간혹 인물을 바꿔서 연기하기도 하잖아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하면 잘할 것도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토마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요. 저의 앨빈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앨빈에 더 애착이 생겨서 나만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어서 이제는 놓치기 싫어졌어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신춘수 대표가 연출까지 맡는 작품인데,
이창용 씨의 어떤 면이 앨빈과 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2인극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이번 시즌 토마스들은 어떤가요?
“(강)필석이 형은 작품 분석하고 이런 면에서는 워낙 트인 사람이에요. 집중력이 뛰어나서 지난 시즌에도 연습을 몇 번 안 했는데도 잘 맞았어요. 이번 시즌에는 첫 공연을 같이 했는데 역시 형다운 포근함이 있더라고요. (조)성윤이는 시즌 2, 지난 시즌도 같이 했는데, 원래 친구라서 전혀 불편함이 없어요. (송)원근이 형과는 <쓰릴 미> 10주년 때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페어로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공연하면서는 정말 잘 맞았고, 형과 저의 보이스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2인극은 서로 배려하면 할수록 합이 잘 맞는데, 그래서 모든 페어가 편하고 좋아요. 토마스는 표현해야 할 것이 정확하게 있는데, 앨빈은 캐릭터 자체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토마스가 맞춰주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창용 씨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습니다.
“많이 빠졌다, 좀 쪘다, 다시 빼고 있어요. 이제 체력 관리를 해야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다음날 공연이 없으면 야식도 먹고 술도 마시고 놀았는데, 이제는 관리를 하는 편이에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요즘은 노래도 다시 배우고 제 몸도 인지하면서 배우로서 공연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려고 해요. 오래도록 무대에 서는 선배님들 보면 철저히 관리하시더라고요.”
제가 데뷔 때부터 인터뷰해서 쭉 봐왔잖아요. 어른이 된 것 같은데요(웃음)?
“돌이켜보니 제가 무대에 선 지 10년이 넘었더라고요. 2017년 연말에 10주년 팬미팅을 했는데, 많은 걸 깨달았어요. 즐겁게 준비하면서도 관객이 얼마나 오실까 걱정도 되고, 예전 일들도 생각나고. 그때 두 가지 생각을 했는데, 하나는 ‘10년 동안 사고 없이 다치지 않고 이렇게 공연을 해왔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더 열심히 했으면 더 올라갈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었어요. 지금도 감사하고 행복하지만, 요즘 레슨 받고 관리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의 실력을 다 보여드리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앞으로 더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앳된 모습을 벗어나 남성미 있는 이미지도 어울릴 것 같은데, 도전하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이 있나요?
“저는 얘기하면 안 되더라고요.”
말하면 다들 실제로 하던데요?
“그래요? 그래도 저는 얘기 안 할래요(웃음). 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발전할 수 있는 작품은 다 해보고 싶어요. 대중적인 공연들도 해보고 싶고요.”
앞서 앨빈 같은 사람이 현실에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앨빈을 연기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차례 만나온 앨빈인데, 마지막으로 지금 가장 와닿는 대사나 장면은 어떤 건가요?
“늘 같았던 것 같고요. ‘This is it, 이게 다야, 이게 전부야’라면서 ‘Angels In The Snow’가 완성되는 순간인데, 요즘은 그중에서도 ‘알 수 없어 톰’이라는 말도 와닿아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계획대로 살 수도 없잖아요. 토마스도 또 다른 작품을 써나가야 하고요. 꿈을 꾸되 그 꿈에 너무 실망하지 않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또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와닿는 것 같아요. 저도 소박하고 꾸준하게 그런 배우로 걸어가고 싶고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