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 “내 음악은 가요, 케이팝에 포함된다”
따지고 보면 팬으로서 시작한 것이 많다. 보아,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폼라드까지. 성덕(성공한 덕후)이다.
글ㆍ사진 이즘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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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과 신선함을 갈구하는 음악계가 이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재주를 전설 속 '젊음의 샘'처럼 여기는 것도 과한 일은 아니겠다.' 리뷰의 말미에서 수민을 소개한 문장이다. 표현 그대로 수민은 2018년 한 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메이저 씬과의 협업은 물론 독창적인 첫 솔로 앨범,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린과의 협업 발매까지 그의 족적은 화려하고 넓었다. 성실한 확장을 꿈꾸는 수민을 11월 18일 경리단길 카페 프레지던트(Cafe President)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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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수민이다. 근황을 알려준다면.

 

콘서트 마무리 후 8일 정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다녀왔고, 이후로는 쭉 작업 모드다. 너무 많은,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 풀고 콜라보레이션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행은 음악 작업을 위해서였나.


8일 내내 작업만 했다. 하루에 작업 2개씩, 잼도 많이 하고, 밤에는 신나게 놀았다. 쉬려고 갔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많이 하게 됐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얼마 전 발매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수록곡 '미끄럼틀'에 참여했다.


원래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오랜 팬이라 항상 밴드에게 곡을 주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나잠수 오빠가 동네에 술 마시러 와선 'X나 어려운 걸로 빨리 내놔!'라고 해서 열심히 만들었다.

 

어려운 곡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노래는 간결하고 멜로디도 잘 들리는데.


멜로디는 쉽게 쉽게 풀면서도 괴상하고, 후렴부에서는 야한 느낌도 넣고 싶었다. 실제로 이 노래를 야한 노래라 생각하고 만들기도 했다. 잠수 오빠가 말하는 '어려운' 느낌은 화성이나 보이싱, 세련된 코드부터 시작해서 BPM 변화나 트랜지션(장르 혼합) 등을 일컫는데, 다행히도 잠수 오빠가 굉장히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워낙 까다로운 사람인데.

 

실제로 '포장을 벗기다' '딱딱하다' 등 다양한 성적 은유가 내포되어 있다. 수민이 '딱딱하다'라 노래하는 부분은 젠더 관념을 뒤집는 재미도 있다.


사실 이 곡은 제 피처링이 계획에 없었다. 잠수 오빠가 남자 입장에서 써본 가사인데 그 파트를 '네가 불러!' 해서 부르게 된 거다.

 

나잠수는 의 마스터링을 맡기도 했다. 나잠수와의 작업은 어땠나.


보통 믹스와 프로듀싱까지 내가 하는 편인데, 워낙 자극적인 사운드를 좋아한다. 담백한 타입도 좋아하지만 거칠 때도 많고, 그런 즉흥적인 면이 작업 과정에서 많이 묻어난다. 잠수 오빠는 반대다. 수치로 보이는 걸 좋아하는, 딱 이공계 스타일이다. '수치상 데시벨 몇을 내리고 피치를 몇 올려줘'라 말하는 게 평소 잠수 오빠라면, 나와의 작업 과정에선 '조금만 이렇게 해줄 수 있어?'라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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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으로는 보아의 수록곡 'U&I'에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2016년 에프엑스 멤버 루나의 'Free somebody'를 좋아한다. 그 당시 들었던 가요 중 최고였다. 뮤직비디오, 프로듀싱, 비주얼 세팅 모든 것이 완벽했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사운드클라우드에 그 곡을 내 스타일로 해석해서 올렸는데 그게 대박이 났고, 그 버전을 오리지널 작곡가 패밀리(The Family)라는 부부 팀에게 들려줬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그렇게 SM 송 캠프에서 함께 작업하게 됐다.

 

처음 SM에서는 레드 벨벳과 보아 둘을 가이드로 제시했는데 보아를 염두에 두고 곡을 만들었다. 나는 보아 팬클럽 점핑보아 출신이고, 팬을 넘어 보아의 보컬 프로덕션, 영향, 톤을 모토로 잡았던 사람이었기에 보아의 스타일을 미리 머리에 넣었던 것 같다. 보아가 될지 레드 벨벳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는데, 'U&I'가 보아에게 가는 걸로 결정이 되고 디렉팅을 하게 되자 정말 긴장했다. 웬만해서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보아와의 작업에선 '다다다다 다시 갈게요!' 이럴 정도였다. (웃음)

 

'U&I'는 콜라보레이션 곡 중에서 제일 템포가 빨랐던 곡 같다.


패밀리의 린네아 뎁, 조이 닐 미트로 뎁 부부는 스웨덴 출신이다. 스웨덴 특유의 BPM 구역과 사운드의 특징 - 컴프레스와 리미트도 거의 걸지 않는 스웨덴 특유의 BPM과 청량하고 깔끔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덕분에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다. 나와 진보가 멜로디, 가사를 만들었다.

 

케이팝 프로덕션과 많은 작업을 했다. SM과의 작업은 물론 2016년 방탄소년단의 'Lie'에도 참여했는데, 케이팝이 수민의 음악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나는 한국사람이고 내 음악은 가요, 케이팝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 경험이 적었을 땐 케이팝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다 스무 살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를 보고 충격을 받은 거다. 테디 라일리, 마이클 잭슨이 생각나면서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팀이?' 싶었다. 그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노력하는 모습, 끈기, 열정 등에서도 매력을 느꼈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처럼 자유로운 입장이 아니다. 지정된 시간 안에 많은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듣는 자세도 열정적이고, 훌륭한 음악을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뭘 해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덕션 부분도 항상 주목한다. UK, US차트에 있는 노래들을 다 들어보지만 한국처럼 구성이 오밀조밀한 노래가 없다. 3분 30초 내에서 지루함을 느낄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 음악이 케이팝이다. 백반집에 갔는데 반찬이 많아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거랄까. 그런 다채로움을 수용한 노래가 'Seoul, Seoul, Seoul'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은 케이팝의 영향이 크다. 차가운 보컬 프로덕션, 믹스 스타일도 나의 성격과 잘 맞다.

 

케이팝이 글로벌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최근 MNEK, 바찌(Bazzi)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케이팝으로부터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케이팝 자체가 애초에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보니 비디오도 잘 나올 수밖에 없다. 지루할 틈이 없다. 무대 연출도 음악에 맞춰서 수준이 더 높아지고 카메라, 조명 등 음악에 관여하고 있는 분야들이 동시에 발전하는 거다.

 

레드 벨벳의 데뷔곡 '행복(Happiness)'에 N.E.R.D의 채드 휴고가 참여한 것도 굉장한 충격이었다. 이후에도 송 캠프 참여 뮤지션들의 리스트를 보면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아티스트들이나 프로듀서들이 있다. 이렇게 하는 곳이 SM밖에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방탄소년단과의 작업은 어땠나.


빅히트와 작업을 했다기보다는 당시 프로덕션 팀을 하고 있던 닥스킴(DOCSKIM)에게 요청이 와서 리드대로 작업했고, 메인 프로듀서 피덕(Pdogg)과 몇 번 만나 회의도 했다. 아무래도 방탄소년단이다 보니까 수정 사항이 많았는데, 살짝 힘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나왔고 재미있었다.

 

'Lie'의 스타일은 독특하다. 비장하고 어둡다. 수민에게는 낯선 모습인데.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음악이 살짝 어둡다. 작업은 사랑을 찬미하는 청량한 가사가 주였고 당시 인터뷰도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했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여러 모습이 나오게 된다. 아직도 밝고 사랑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운드는 어두운 느낌이 늘었다. 음악적으로는 다크 하지만, 드럼 베이스는 여전히 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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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리뷰 서두에 융합, 보컬과 멜로디, 메시지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먼저 융합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상당히 다채로운 장르가 공존하는 앨범인데.

 

사실 음악적인 테마는 없었다. 'Seoul, Seoul, Seoul'만 빼면 사랑이라는 주제, 그 안에서 발생하는 애증, 슬픔, 헤어짐…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이다. 새롭게 쓴 노래들도 있지만 'Mirrorball', 'In dreams' 같이 전에 만든 곡들도 있다.

 

앨범 발매 직전에 트랙 리스트를 쭉 봤는데 '일치감이 든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모든 곡이 일맥상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장르적으로도 마찬가지고. 보컬이 모든 곡을 아우르고 있으니 음악적인 부분은 조금 달라도 기틀을 잡아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물론 세세하게 보면 보컬 믹스나 코러스의 유사함을 찾아낼 수도 있겠다. '다채로움'이 매력인 앨범으로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타이틀 곡 '너네 집'은 1980년대 복고풍 신스팝 풍이고, 신세하(Xin Xeha)의 버전과 솔로곡이 다른 인상을 준다.


한동안 신스팝 음악을 듣기는 했지만 영향을 받아서 만든 건 아니고, 갑자기 빠르게 쓴 곡이다. 작업 과정에서 신디사이저가 들어가면 좋겠다 생각했고. 의외로 노래를 만들 때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건 아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이 첨가됐다.

 

신세하와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피처링 자체를 많이 하는 친구가 아니라서 연락 전에 많이 고민했지만 세하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1절을 만들고 바로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 후 너무 마음에 든다는 답이 왔다. 사실 나 자신이 신세하의 팬이기에 세하에게 보다 많은 파트를 주려 했는데, 작업 과정에서 세하가 자기는 딱 여기까지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도 N.E.R.D 이야기가 나왔는데, 'I hate you'의 미니멀하면서 파편화된 리듬 파트는 넵튠스를 떠올리게 한다.


N.E.R.D의 작년 12월 새 앨범이 한국에 풀리자마자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로 달려가서 미친 듯이 듣고 만든 곡이다. 지금의 넵튠스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초창기 넵튠스의 비욘세,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들을 들어보면 기타 싱글 노트나 리프 하나에 드럼, 보컬 코러스를 중심으로 곡을 전개한다. 'I hate you'의 경우는 감칠맛을 내기 위해 후렴구 전까지는 베이스라인을 하나도 넣지 않았다. 2000년대 음악의 확실한 각인을 담아보고자 한 곡이다.

 

'설탕분수'는 벨기에 프로듀서 폼라드(Pomrad)와 함께했다. 리듬이 변칙적이고 베이스 조작도 많이 들어간 독특한 곡이다. 인연이 궁금한데.


나는 폼라드의 광팬이다. 그분은 천재다. 재즈, 가스펠은 물론 트랩도 섭렵한다. 노래를 잘 만드는 건 물론이고 기계를 워낙 잘 다뤄서 공연까지 혼자 다 한다. 한동안 이태원 소프(Soap)에 공연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폼라드의 팬이라는 걸 말하고 다녔는데, 어느 날 소프 앨범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폼라드 내한 소식을 들었고 지인 분이 폼라드의 오프닝 아티스트로 나를 추천했다. 어떻게든 폼라드에게 나를 알리고 싶어 오프닝 셋리스트도 폼라드가 좋아할 만한 리스트를 짰다.

 

공연 마치고 일부러 한 마디도 안 하고 집에 갔다. 다음날 다음 날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안 오는 거다. 열흘이 지나도 답이 안 오다가 메일함을 정리하는데 답장이 와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메일 보낸 같은 날에 작업 제안을 보냈는데 내가 확인을 못한 거였다 (웃음). '설탕분수'라는 제목은 폼라드가 'Sugar fountain'을 그대로 번역한 거다. 따지고 보면 팬으로서 시작한 것이 많다. 보아,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폼라드까지. 성덕(성공한 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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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컬 파트로 넘어가 보자. 과거 '박수민'으로 활동할 때와 지금의 수민은 분명 다른 보컬이다. 알앤비 보컬로부터 보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성을 확보한 인상이다.


아무래도 당시엔 곡을 쓰지 않았고 보컬리스트에 국한돼있던 시기였다. 제 음악이 아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스스로 음악을 만들게 되면서 나를 표현하려다 보니 여기에 어울리는 적재적소 이펙트를 사용하게 됐다. 보컬 자체도 변했다. 과거는 지금보다는 좀 퍼져 있다고 해야 하나. 모든 아티스트들이 다 그런 것 같다. 1-2년 정도 차이는 눈에 확 띄지 않지만, 5-6년 정도가 지나면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나 나는 많이 변한 축이다.

 

진보(Jinbo)와의 콜라보도 뺄 수 없다. 'U&me' 싱글부터 에 참여했다.


진보도 엄청난 팬이다. 모두가 진보의 팬이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언젠가 진보와 꼭 작업을 해보겠다는 로망이 있었다. 진보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신비로운 인상이었는데, 세상에 얼굴도 잘 안 비추고, 혼자만의 세계관이 있었다.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러브송즈 레코드 시절 진보에게 'Fxxk me'라는 노래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거절당했다. 당시 진보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노래 '봄이 오는 소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어둡고 선정적인 노래를 부탁했던 거였다. 이런 음악을 준비하는 사람한테 어둡고 선정적인 노래를 부탁했던 거다. 전후 사정을 몰랐던 때라 기분이 살짝 상하기도 했다. 나 같아도 거절했을 텐데 (웃음)

 

진보를 포기할 수 없어서 다음에 써서 보낸 곡이 'U & me'고 드디어 콜라보를 하게 됐다. 그 인연으로 앨범에도 참여했다. 진보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음악을 듣고 어떤 부분을 왜 만들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진보는 알고 있다. 그렇게 음악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최근 얼터너티브 알앤비 장르는 멜로디 힘 자체가 약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수민의 곡은 멜로디 라인이 선명하다.

 

다른 아티스트에게 곡을 줄 때는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내 앨범을 만들 땐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멜로디 라인이 많든 적든 내 귀에 잘 들리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한다. 물론 가사를 쓰는데 멜로디에 공백이 생기면 그때는 좀 쪼개기도 한다.

 

보컬 이펙트를 많이 활용했다. 어떤 트랙에선 보컬을 사운드 샘플로 쓰는 느낌이다.


맞다. 완전 의도적이다. 보컬리스트로 인식되는 전형적인 개념을 없애고 싶었다. 보컬은 음악을 표현하는 하나의 부분이다. 그게 주도적으로 나오는 곡들도 있고 아닌 곡들도 있는 거다.

 

메시지 차원으로 넘어가 보자. '통닭'은 신선한 비유를 보여주는데, 쿤디 판다의 랩이 직설적이라면 수민의 파트는 은유적이다.


남성의 몸을 비유한 게 맞다. 노래를 만들 때 항상 섹슈얼한 요소를 염두에 두는데, 처음 나오는 훅 가사가 'You're so slippery / Your tan skin'이다. 내가 좋아하는 남성의 몸을 표현하고 싶었다.

 

슈퍼프릭 레코즈(Superfreak Records)의 프로듀서 비앙(Viann)과 통닭집에서 통닭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맛있는 거다. 마침 그 친구에게 곡을 받자마자 이 노래 제목은 무조건 '통닭'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치킨이란 주제 아래 이중적인 메시지를 넣었고 쿤디가 랩으로 확인사살을 해줬다. 잘 모르고 들으면 그냥 치킨에 대한 노래다.

 

이중적 메시지 활용이 두드러지는 반면 'Woo' 같은 직접적 표현도 있다.


사실 모든 노래가 훅 빼고는 다 직접적이다. 관계를 할 때 내가 아래일 수도 있고 위일 수도 있다. 벌스에서는 상황을 묘사했고 훅에는 도끼로 찍어버리듯이 확실하게 갔다.

 

'Seoul, Seoul, Seoul'의 메시지도 독특하다. 서울을 노래하는 여러 곡들 중에도 수민의 서울은 좀 다르다.


나는 서울 길동에서 태어났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느낀 서울의 이미지는… 서울 사람들 혹은 한국사람들은 감정에 대해 교류하지 않는다. 지하철 타면 모두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골목길에서 차가 마주하면 무조건 빵빵거린다. 만약 그 둘이 서로 알고 있는 사이라면 결코 그렇게 경적 울리지 않을 텐데. 조금만 참고 양보하면 되는 건데도 말이다. 처음부터 가사가 '왜 그렇게 화가 나있어'다. 다들 인상 쓰고 있고, 자기 공간을 침범하면 바로 화내고. 옛날엔 이렇게 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땐 이 상황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가사가 한 번 바뀐다. '지하철 바깥 한강을 봐 그리고 하늘을 봐'. 부정적 인상도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편리한 도시라는 모순적인 감정도 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서울처럼 제반 시설 잘 갖춰진 도시가 드물다. 한국의 독특한 특징을 표현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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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의 하루 작업량이 대단할 것 같다. 하루에 얼마나 작업하나.


하루에 1절씩은 꼭 만든다. 마음 같아서는 쉬지 않고 계속 만들고 싶다. 때로는 하루 안에 한 곡을 다 쓰기도 한다. 'Sparkling'이 그런 곡이다. '너네 집'도 사실은 세하한테 일단 보내야 하니까 빨리 작업에 들어갔다. 세하가 거절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1절까지만 생각해 둔 건데 세하가 좋다고 해서 다 만든 거다.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분들도 많다(웃음).

 

발매 예정인 차기작이 있나.


기린과의 작업은 끝난 지 오래됐다. 지금은 음악 외적으로 비주얼적인 것들에 신경 쓰는 단계다(12월 9일 발매). 이제 막 곡을 준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평소에 좋아하는 뮤지션들이거나 성향이 반대인 아티스트들도 있다. 그게 세상에 나왔을 때 어떤 반응을 얻을지 너무 기대가 된다.

 

나 스스로도 내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앞으로 뭘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내년 초에도 다양한 음악이 나온다. 여러 가지 협업들도 예정되어 있고. 내 차기작에 피쳐링 아티스트가 많지는 않겠지만, 그중에도 반전 아티스트가 있다. 작업은 항상 재미있다. 예상 가능한 아티스트들과도 작업을 하지만 나와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의 작업은 더 기대가 된다.

 

최근 1-2년 사이에 젊은 아티스트들이 씬을 형성하고 있다. 예전에는 각자의 바운더리가 명확했고 독립된 형태였다면, 최근에는 하나로 묶여서 무형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단순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아니라 얼터너티브, 대안적 음악으로 자리하는 모습인데.


조금은 단독적이고 싶은 것이 내 생각이지만 현상 자체는 긍정적이다. 장단점이 있지만 확실한 건 예전보다는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포함한 예술 계통의 모든 것들이 가면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기획자들 중에도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 많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교포 출신 아티스트들의 수도 늘었다. SNS의 발달로 국제적 협업도 가능하며 다양한 예술 레퍼런스를 접할 수 있다.

 

길고도 유익한 인터뷰였다. 마지막으로 수민이 추구하는 음악을 정의하자면.


하고 싶은 음악은 너무 많아서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최대한 모든 것들을 건드리고 싶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겠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N.E.R.D가 자기들 음악은 별종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고 프로듀서로 참여했을 때 뮤지션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 덕분이다. 이런 아티스트가 되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서 N.E.R.D의 존재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된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하나의 답을 내는 게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보고 얘기 하고 싶다. 애증 역시 사랑이듯이.

오랜만에 돌아온 이즘 공식 질문이다. 최근 수민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잘 들었던 앨범을 추천해달라.
아노말리에(Anomalie)의 . 폼라드 주니어 같은 느낌이다. 굉장히 유연하다. 제임슨(Jamson)도 좋아하고.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도 잘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N.E.R.D의 는 명반이다.

 

 

인터뷰 : 김도헌, 정연경
사진 : 최관호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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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