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소와 엄이 좋아하는 젊은 마케터들의 특징이 있다.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수줍은, 그러나 일은 무척 정확하고 빠르게 하는 사람. 어크로스 마케터 K도 그 중 한 명이다. K는 언제나 신간 미팅 전 메일을 보내온다. 어떤 이유로 언제 미팅하기를 원한다고 정확히 밝힌다. 과한 친근감을 표시하지도 무작정 “이 책은 너무 좋은 책”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핵심을 잘 꿰고 상대를 배려한 적절한 속도로 말한다. 지난 11월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의 『일하는 마음』 이 출간됐을 때, 나는 이미 K에게 ‘북관리사무소’ 인터뷰를 요청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일 센스가 좋은 마케터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지 무척 궁금했다.
북관리사무소에 초대된 소감은.
세어보니 ‘프랑소와 엄의 북관리사무소’가 시작한지 꼭 1주년이 된 2019년 1월의 인터뷰이가 바로 나더라. 흡사 어벤저스 같은 11명의 출판인을 모아놓은 자리에 이만큼 묻히고 얹혀질 기회를 주시어 감사하다. 참고하고자 모든 인터뷰를 읽었는데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 모르게 낄낄거리며 읽었다. 다른 인터뷰들을 워낙 재미있어 읽었기 때문에 벌써 노잼일까 내심 걱정이다.
노잼이라니, 노잼일 것 같은 사람은 이 코너에 초대될 수 없다. 그나저나 당신은 어떤 마케터인가? PR이 필요한 시대! 한 번 PR 해보시라.
그렇게 느낌표를 발산하며 확신에 차 단정짓지 마시라! PR의 시대라니… (눈물) 이런 시대에 나 같은 사람은 좀 살기가 힘들어진다. PR 같은 것과 당최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생애에 쓸 수 있는 PR력(?)의 대부분을 책 소개에 끌어 써야 할 만큼 용기가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고로 이 인터뷰가 실려도 절대 사내에는 공유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사람이고!
아아. 마케터가 그러면 어찌하나. 공유는 곧 사랑인데. (웃음) 그럼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간다. 제현주의 『일하는 마음』 을 가제본으로 읽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대충 살자! 어차피 유노윤호가 이미 내 몫까지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같은 말이 유행하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자책이 유쾌함으로 포장되는 시대 정서에 나는 좀 환멸을 느꼈다. 유쾌한 자책에 취해 사는 것, 아무렴 좋겠지만 그 취기가 사라지면 남을 허무가 두렵기도 했다. 그때 내 앞에 나타난 원고가 바로 『일하는 마음』 이었다. 내겐 일에 대해 ‘좀 제대로 말해줄 수 있는, 인생 선배' 필요했던 시점이었으니까. 가제본 속 텍스트 안에는 일에 대한 저자의 다정하고도 단단한 조언이 곳곳에 녹아있었다. 나보다 몇 걸음 정도 먼저 앞서 걸어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트렌드와 반하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콕 집어 맞는 말 투성이의 텍스트를 누구보다 먼저 읽고 있다는 데서 오는 희열 같은 걸 느꼈다.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의 전작이 모두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나왔다. 어떤 저자인가?
제현주 저자에 대해 감히 말하자면, 일정 수준을 저만치 뛰어넘은 사람들 대개가 그렇듯 남들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는 사람 같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상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주해 강연을 듣거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가 지금 같은 시공간에서 나란히 공기를 마시고 있는 사람이 맞나, 정말?’ 하는 의문이 든다. 비유하자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낀 채 전동 퀵보드 위에 올라 서 있는 현인(賢人) 같달까. 실제로 그는 겨울이면 퀵보드가 아닌 스키를 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올 때 붙는 가속도의 두려움마저도 기꺼이 즐거워하면서.
어흑, 스키장 공기를 마시지 못한지 실로 오래됐다. 『일하는 마음』 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문장이 있나?
물론! "나는 애호하는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겹겹의 우주가 있다는 걸 ‘안다’. 믿는 것이 아니라 안다. 그리고 나의 그 우주 안에서 깊은 안정감을 느낀다.”(107쪽)라는 문장. 위 문장을 읽고 한동안 ‘나의 애호하는 것들' 생각하는데 몰두했다. 너무 아끼고 좋아해서 그 대상, 혹은 세계가 나에게만 열리는 황홀한 경험, 그리고 그것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안정감에 대해서. 저자는 본인이 좋아하는 ‘스키’를 두고 쓴 문장이지만 나에게 그것은 ‘일’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카드 뉴스를 만들었던 것 같다. 고양이가 물끄러미 식물을 바라보고 있는 이미지를 배경으로 사용했는데, 저자께서 트위터에 직접 “이것 볼 때마다 생각하는데, 여기에 고양이 이미지 넣은 거 너무 절묘하다. 마케터님 역시 대단하심”이라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클라우드에 저장해놓고 오래도록 들여다 볼 거다.
책 사진을 잘 찍더라. 사진을 잘 찍어서 취직이 됐나 싶게.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나?
대학생 때 매일 DSLR을 들고 등교했을 정도로 카메라를 좋아했다. 한데 (하필이면)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놓인 피사체는 늘 책이었고, 그래서 책을 참 많이도 찍었다. 그후 DSLR을 매일 들고 다닐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고, 지금은 가벼운 하이엔드 기종의 카메라를 잘 쓰고 있다. 책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피사체 중 하나임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진 프랑소와 엄의 책 사진이 나는 훨씬 더 좋다고 느끼는데! 비결을 말해달라.
역습이군. 나에게 사진 잘 찍는 비법 같은 건 없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DSLR이 있었으나 최근 생활비를 벌고자 팔았고 지금은 그냥 미러리스로 찍는다. 조명이 중요하다. 그리고 구도,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헤드룸(head-room)을 신경 쓰는 편이다. 그런데 잘 찍는 건 정말 아니다. (ㅠ,ㅜ)
겸손은 이제 그만!
『일하는 마음』 을 읽고, ‘일하는 마음’이 변했나?
일종의 확신을 얻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이 일을 하는 지금의 내 마음 상태는 어떤지, 어디쯤 와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었달까. 불확실함의 시대에 자기 확신을 얻게 된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운데, 그게 다름 아닌 '일'에 대한 부분인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이렇게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 하나를 더 가지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일에 대한 모두의 마음은 각기 다르겠지만 모두가 다를 그 '일하는 마음’에 이 책은 유효하다.
『일하는 마음』 을 한 줄 카피로 표현한다면?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기준 안내서.
출판 마케터로 일하면서 행복할 때는 언제고, 우울할 때는 언제인가?
마케터로 일하며 가장 좋은 순간은 서점이나 강연장에서 ‘나만 보거나, 알아챌 수 있는 좋은 그림’과 마주했을 때다. 이를테면 한 권의 책이 나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소개했을 때, 듣는 이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
최근에는 강연이 참 많았는데 독자 한 분이 강연 내내 깊이 경청하고,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이고, 많은 사람이 선 줄을 끝까지 기다려 저자의 사인을 받는 거다. 거기서 예상되는 다음 그림은 기쁜 얼굴로 강연장을 나가는 모습이겠지만, 내가 본 그림은 독자가 이전보다 한층 더 모호해진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퇴장하는 모습이었다. 그 갸웃거림 속에 어쩔 수 없는 기쁨 같은 게 새어 나오는듯 했다. 무표정인 듯, 웃는 듯한 모나리자 같은 미소. ‘방금, 저 사람 안에서 하나의 세계가 알을 깨고 나왔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모습. 이런 그림과 마주할 때 때 나는 무지 행복해진다.
가장 큰 고충은 역시나 독자와의 온도 차를 실감할 때다. 우리와 독자의 생각이 이만큼 다를 수 있구나 - 를 판매량이라는 절대적인 기준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일. 으으... !
2018년에 나온 책 중 가장 탐났던 타 출판사 책은 무엇이었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는 평소 운동이라면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 내게, 녹색 그라운드를 위에서 낯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공 하나를 좇으며 살갗이 여기저기 까지더라도 한바탕 몸을 구르고 싶은 용기를 준 책이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어크로스에서 나왔다면 저자와의 만남을 그라운드에서 유니폼을 입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고!
김혼비 작가님은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 인터뷰도 서면만 하시는 걸로 안다.
이런, 아쉽군!
앞으로 어떤 마케터가 되고 싶은가?
강하고 단단하되 일정량의 수줍음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 모든 성과가 자신이 시작하여 자신이 끝내는 것이 아님을 체득하고, 성과에 대해 과시하는 일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물론 이 모든 것은 『일하는 마음』 읽은 직후에 생겨난 마음이다.
와, 지금 닭살 돋았다. 당신 생각보다 더 멋진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채널예스 ‘북관리사무소’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현주 저자는 책에 사인을 하실 때 '행운을 빕니다'라고 자그맣게 써 주시곤 한다. 가만히 바라보면 정말 행운이 스밀 것 같은, 기분 좋은 서체로. 물론 나는 저자도 아니고 타인에게 행운을 빌어줄 만큼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이 지면 내내 한 권의 책을 이야기 하였으므로 어쩌면 내게 당장 써버리지 않으면 사라질 미량의 좋은 기운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여, 나눈다. 행운을 빕니다, 모든 일하는 마음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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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마음제현주 저 | 어크로스
치열하고 냉정한 글로벌 엘리트들의 세계에서 익힌 일의 기준과 태도, 그리고 직장을 나와 다양한 기준과 욕구를 가지고 ‘자신만의 일’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만나며 익힌 새로운 일의 감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프랑소와 엄
알고 보면 전혀 시크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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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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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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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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