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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없어요 (G.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김하나의 측면돌파 (61회)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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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의 정의 자체가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호의적으로 지각하는지, 자신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 평가거든요. 자존감이라는 건 자기만 평가할 수 있는 거예요. (201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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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불행감을 가져오는 사건들은 많은 경우 당신의 노력이나 기대와는 상관없이 운과 상황에 의해 좌우됩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한다고 했습니다. 수백 번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일으켜가며 어떻게든 끝까지 해 보려 했습니다. 당신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주인공이 당신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따위는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억지로 만들어 낸 가치가 아니어도, 당신과 나는 이대로 충분합니다. 기대하세요. 내일의 날씨, 이따가의 점심 메뉴, 오랜만의 시내 외출, 개봉할 영화와 새로운 드라마. 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는 힘은 지치지 않는 기대에서 나옵니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달걀 샌드위치가 형편없었대도 저녁에 먹을 소고기덮밥은 괜찮을 수 있습니다. 이번의 성과가 형편없었대도 내일 보기로 한 영화는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취미는 '기대하는 것'. 백 번을 실망한대도.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의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의 측면에서 마음의 문제를 살펴보는 분인데요. 그 이야기를 담아,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를 쓰셨습니다. “자꾸만 스스로에게 무례해지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어쩌면 틀렸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셨대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허지원 저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하나 : 교수님은 임상심리 전문가이기도 하고 뇌과학자이기도 하시잖아요. 이 둘을 같이 하는 경우는 드문가요? 

 

허지원 : 한국에서는 아직 많이 안 하고 계신데요. 사실은 MRI 연구를 하는 데 돈이 많이 듭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죠.


김하나 : 아, 뇌를 MRI로 찍어 보고 연구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군요.


허지원 : 네. 예를 들어 한 명을 촬영하면 50만 원 정도예요. 보통 60명을 찍으니까, 논문 한 편을 만드는 데 MRI 촬영하는 비용만 3,000~4,000만 원이 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심리학자나 다른 연구자들이 MRI 연구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김하나 : 그렇군요. 그러면 임상심리를 전공하신 뒤에 뇌과학 쪽으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허지원 : 지금 한국에 심리 치료 관련된 자격증이 약 3000개 정도 있어요. 아마 동네에 있는 많은 심리상담소는 한국심리학회에서 파악도 못하는 자격증을 가지고 개소한 곳들일 거예요. 김하나 작가님도 오늘 저녁에 당장 개원하실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에 법이 마련이 안 되어 있습니다. 미국 같은 곳은 ‘심리’라는 단어를 제한해 놨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어서요. 한국심리학회에 소속돼서 수련 받는 분들은 학부 때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수련을 받거든요. 그런 분들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잘 입증된 것을 가져다 써도 일반인 분들은 조금... 말씀드리기가 되게 조심스럽네요. 일반인 분들이 아무래도 무자격자 분들이 운영하시거나 이런 상담센터를 많이 다니다 보니까 심리 치료 효과에 대해서 많이들 부정적으로 생각하시거든요. 다녀봤자 효과 없다더라 하는 식으로 심리 치료가 과학적인지 생각을 잘 못하시는 부분들이 있어서, 저는 뇌그림(MRI)으로 설득을 시키려고 시작한 측면이 있었어요. 심리 치료를 해보면 과학적으로 뇌의 기능이나 구조가 바뀐다는 걸 설득하기 되게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뇌과학을 도구적인 측면에서 접근했고요. 아니신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김하나 : 더듬더듬 문고리 잡듯이 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차이가 시각적으로 증명된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거군요.


허지원 : 네.

 

김하나 : 뇌학을 전공하기도 하셨고 임상심리학자이기도 하시니까, 책에서는 두 사람의 다른 자아로서 한 에피소드에 대해서 상담을 해주듯이 쓰셨잖아요. 뇌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쪽과 임상심리 쪽에서 이야기하는 게, 물론 같은 치료 목적의 이야기를 하지만, 톤이 꽤 다른 것 같아요.


허지원 : 네. 뇌과학 쪽이 어렵죠.


김하나 : 네, 어려웠어요(웃음).


허지원 : 다시는 이렇게 안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김하나 : 뇌과학 쪽을 읽어보면 ‘내측 전전두피질’, ‘복측선조체’, ‘백질 회로’ 이런 말들이 끝도 없이 나오잖아요. 교수님은 들으시면 어디인지 다 아시는 거죠?


허지원 : 네, 알지만 그걸 기대하고 쓰지는 않았어요. 독자 분들이 이게 어디인지, 이런 영역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주시길 기대하고 쓰지는 않았고요. 다만 뇌가 하는 일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고, 뇌에게 책임을 조금 전가하시기를 바랐어요.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 뇌가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고, 뇌에게 책임을 전가하되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신다든가, 그런 자잘한 팁들에 대해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싶었죠.

 

김하나 : 뇌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목이 부어서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처럼 ‘뇌의 어느 부분이 약간 저하되어 있어서 그럴 수 있어요’라고 증명이 가능한 거군요.


허지원 : 네.

 

김하나 : 책 제목이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예요. “그러니 자신에 대해 함부로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쓰시기도 했는데요. 자신한테 그렇게 큰 문제가 없는데도 비정상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스스로 잘못된 라벨링을 하거나 정체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시나요?


허지원 : 네. 큰 문제가 없다기보다는, 누구나 문제는 있는데, 문제에 너무 몰두하면서 자기비하 하는 표현들을 쓰는 걸 많이 봐요. 자기를 낮추는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시고요. 자신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자신한테 너무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들을 봐요. 특히 ‘망했어, 죽어야지, 자살각, 이번 생은 망했다’는 표현들을 많이 쓰는데, 저도 우스갯소리로 가끔씩 쓰기는 하지만, 말의 힘이라는 게 굉장히 강력하기 때문에 그 프레임에 자꾸 갇혀버리는 게 너무 걱정스러워요. 그래서 제가 수업할 때 항상 하는 이야기는, 비밀번호 같은 걸 설정할 때 ‘건물주’ 같은 걸로 해놓으라는 거예요(웃음). 자신이 어떻게 성공하게 될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쓰면 그런 것들이 힘이 돼서 돌아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할 때, 사실 제가 나서서 옹호하기는 참 쉽지 않아요. ‘너는 그런 사람 아니야’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저도 살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에너지도 없고요. 알아서 챙겼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죠.


김하나 : 이제 책을 주시면 되겠네요.


허지원 : 그리고 어차피, 자신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들의 굴레에 이미 들어가 있으면, 제가 설득해봤자 안 들려요. 본인이 할 수 있는 지점은 본인이 해줘야 돼요.

 

김하나 :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이런 식의 자조적인 말들도 하지 않아야 되고...


허지원 : 네.

 

김하 : 라벨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애착 장애’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허지원 : 생후부터 주양육자가 꾸준히 관심, 특히 신체적인 접촉 정서적인 접촉 같은 것들을 생후 2년까지 지속적으로 해주면 ‘안정 애착’으로 들어선다는 연구들이 많았는데요. 우리나라에 안정 애착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 큰 문제가 됐던 게 죄책감이에요. 주양육자들은 본인들이 안정 애착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너무 커졌고, 그래서 20~40대의 양육자들 특히 헤테로 섹슈얼 여성분들이 ‘어떻게 하면 더 완전무결하게 키울 수 있을까’에 너무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죄책감 때문에 지금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좌절할 수 있는 기회를 자꾸 잃고 있고요.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최적의 좌절 경험’이 없이요. 또 주양육자들이 완벽한 환경을 제공하려다 보니까 ‘그러느니 비혼을 하자, 비출산을 하자’라는 쪽으로 가는 측면도 있어요. 가상의 아이에 대해서 죄책감이 너무 큰 거예요.


김하나 : 아직 키워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실패할 것 같은 느낌, 불안감이 있는 거죠.


허지원 : 네. 지금 사는 집도 전세이고 아이한테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아이를 낳고 싶은데도 ‘안 되겠다, 비출산을 하자’ 하는 식으로 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에 잘못 적용된 부분이고요. ‘내가 불안정 애착이었구나, 주양육자들이 나를 충분히 돌보지 못했네’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불안정 애착을 보상 받으려고 하는 케이스들도 많아요.


김하나 : 그런 분들을 상담하기도 하시겠군요? ‘저는 불안정 애착인 것 같아요,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저렇게 키웠어요’라고 이야기하는.


허지원 : 네, 그렇게 생각들을 많이 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라벨링인 건데요. 본인이 불안정 애착이기 때문에 어떤 증상이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서 고군분투할 거라고 예측들을 많이 하시죠. 그런데 그렇지는 않거든요. 많은 심리학 연구들과 그 외의 다른 연구 결과들을 보면 불안정 애착이었다고 하더라도, 성인이라면 누군가 5년 정도 안정적으로 애착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환경을 제공해주면...


김하나 : 그게 ‘재양육’이라는 거군요. 다 성장한 뒤에도 재양육 될 수 있다는.


허지원 : 맞아요. 그러면 안정 애착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어요. 그런 게 참 중요하죠. 그런데 많이들 놓쳐요. 왜냐하면 나는 불안정 애착이니까.


김하나 : 그런 식으로 라벨링을 해버리는 거죠.

 

김하나 : 책에서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잖아요. 저를 비롯해서 자존감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자기계발서 같은 데에서 자존감이 높아야 된다고 외침으로 인해서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저렇다면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사실은 높낮이라고 하는 게 더 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무조건 자존감이 높은 게 좋다, 자존감을 키워라’라고 말하는 것의 문제점도 있잖아요.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동안 지켜보면서 우려가 많이 되셨나요?


허지원 : 찾아오는 친구들은 다 본인들이 자존감이 낮다고 이야기를 하니까요. 한결같이.


김하나 : 그러면 뭐라고 이야기하시나요?


허지원 : ‘저도 낮아요’ 그러죠(웃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 해요. 자존감이 높으냐고 물어보면 높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없어요. 한국인 평균 자존감을 조사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은데, 다들 낮다고 지각하실 거예요. 자존감의 정의 자체가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호의적으로 지각하는지, 자신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 평가거든요. 자존감이라는 건 자기만 평가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보통 자신에 대해서 낮게 평가하죠. 그게 우리나라에서 미덕이기도 했고요.


김하나 : 겸손이 되게 중요했고, 나대면 안 됐고.. 말이 정말 중요하네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그럴 텐데, 자존감에 대해서 왜곡돼 있는 부분이 클 것 같아요.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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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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