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6시 퇴근>이 공연 중입니다. 평범한 직장인들의 일상과 숨은 꿈을 무대에 옮긴 데다 직장 내 밴드를 소재로 삼아 흥겨운 라이브 연주로 객석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데요. 특히 플라워의 고유진, 이브의 박웅, 파란의 주종혁과 최성욱 등 실제 그룹 활동을 하는 배우들이 한껏 열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고유진 씨의 경우 그동안 <모차르트 오페라 락>, <마리아 마리아>, <파리넬리> 등 대극장 뮤지컬에서만 봐왔던 터라 소극장 무대에 선 모습이 더욱 반가운데요. 올해는 유독 대학로에서 자주 만나는 것 같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공연이 시작되기 전 고유진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작품 때문에 계속 대학로에 있었더니 이제 대학로가 편해요(웃음).”
그러게요, <언더그라운드>, <투모로우 모닝>, <6시 퇴근>까지. 대극장은 보조 장치들이 많지만 소극장은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어서 용기가 꽤 필요했을 텐데요.
“기대와 함께 두려움이 있었죠. 그런데 연기적으로 좀 더 발전하고 싶어서 소극장 공연을 해보고 싶었어요. 2년 정도 음반활동 때문에 뮤지컬은 참여하지 못했는데, 성열석 연출과 인연이 있어서 <투모로우 모닝>에 이어 <6시 퇴근>에도 참여하게 됐죠. 잘한 것 같아요. 팬들도 이제 저를 배우로서 편하게 보시더라고요.”
예전에는 ‘고음’을 비롯해 뛰어난 가창력을 드러낼 수 작품에 주로 참여하셨잖아요. <파리넬리>도 하셨고. 음역대가 어떻게 되는지요?
“소극장에서도 높게 불러요(웃음). 특히 <6시 퇴근>은 커튼콜이 백미라서 콘서트처럼 놀고요. 제 음역대는 따로 모르겠는데, 일정 음 이상에서는 발성을 바꾸죠. 호흡에 가성을 섞는 건데, 카운터테너 영역이에요. 저는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고 대학 때 성악을 전공하면서 소프라노 여자 선배들 흉내 내다 생긴, 어떻게 보면 개인기였어요. 플라워로 데뷔하면서 1집 ‘눈물’이란 곡에 그 창법이 쓰이면서 ‘한국의 파리넬리’라는 별명을 얻은 거예요.”
<6시 퇴근> 같은 경우는 지난 공연에도 참여해서 누구보다 작품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습니다.
“내부 사정까지 잘 알죠(웃음). 지난 시즌보다는 극장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커지고, 극이나 제작진도 전체적으로 다듬어졌어요. 배우가 알아서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좀 더 극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돼서 훨씬 편안하게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작품으로 보면 <6시 퇴근>은 드라마가 심오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 7명이 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캐릭터가 살아 있고, 직장인뿐만 아니라 아버지, 엄마, 아들, 딸 등 우리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고요. 무엇보다 관객 친화적인 작품이죠. 밴드 라이브가 있어서 관객들이 신나게 즐기면서도 드라마 안에서 감동할 수 있는 극입니다.”
그 안에서도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장보고’를 연기하시잖아요.
“장보고는 제 예전 모습 같아요. 가수를 꿈꾸던 시절이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크고, 먹고 살기 위해 회사를 다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 여러 여건 때문에 회사 내에서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꿈의 크기는 그 누구보다 크지 않나 생각돼요. 제 성격이 장보고와 비슷해요. 주위에서도 딱 장보고라고 해요. 약간 소심하고, 열정은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지 않다 무대에 올라가면 표출하고. 그래서 연기를 따로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함께 하는 배우들도 ‘그래서 무대 위에서 장보고가 더 잘 보인다, 진짜 장보고 같다’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같이 하는 배우들한테 칭찬받으니까 인정받는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웃음).”
직장 생활 경험이나 가수로서도 많이 힘들었던 적은 없지 않나요?
“직장 생활은 해보지 않았죠. 그런 조직 세계는 군대에서 세게 배웠고(웃음), 직장 생활은 주변 친구들의 고충을 많이 들었어요. 가수로서는 1집이 바로 인기를 얻은 게 아니라서 고생을 꽤 했어요. 플라워 세 번째 앨범이 2.5집인데, 그 음반에 수록된 ‘Endless’로 사랑받게 됐거든요.”
그런데 장보고라는 인물 설정이 아무래도 사회 초년생에 가까운데...
“저와 좀 갭이 있죠? 그렇잖아 장보고 솔로 중에 ‘서른을 앞둔 남자죠’라는 가사가 있어요. 연습하면서 ‘굉장히 불편하다’고 했더니 전혀 이질감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몇 년은 더 할 수 있다고(웃음). 다른 배우들,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영향을 받죠. 긴장하게 되고. 그렇다고 무작정 어린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직접 봬도 외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웃음). 특별히 관리하시나요?
“철이 없어서 그런가, 따로 관리하는 건 없어요. 잘 자고 웬만하면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하고요. 아무래도 가수들은 노래를 해서 그런지 다들 동안인 것 같아요. 노래하면 자연스레 호흡도 신경 쓰게 되고, 물도 많이 마시고요.”
실제로 밴드 활동을 하는 만큼 작품과 닿아있는 부분도 많을 텐데요.
가수와 배우 사이 고유진 씨의 실체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플라워가 내년에 20주년인데, 밴드는 나름의 상징성이 있는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 주관이 뚜렷한 다수가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게 쉽지 않잖아요.
“맞아요. 10~20년 된 밴드 가운데 원년 멤버 그대로 가는 팀이 거의 없는데, 형들한테 고맙죠. 저희도 불화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서로 상처받지 않도록 상대방 입장에서 조금씩 양보한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얼마 전엔 ‘히든싱어’에 참여했는데, 결혼과 육아로 떠났던 팬들이 돌아오기도 하고, 새롭게 10대 팬들도 생기더라고요. 10대 관객인데 플라워 팬이라면서 <6시 퇴근>을 보러 오신 분도 있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 좋죠.”
연말에는 플라워 공연도 있습니다. 아직 11월이지만 올 한 해는 뿌듯하시겠어요.
“알찼던 한 해 같아요. 좋은 작품 만나서 배우로서도 어느 정도 성장한 것 같고, 가수로서도 방송을 통해 많은 팬들이 생겼고요. 지난 10월에 콘서트를 했는데 불안한 맘에 작은 데서 했더니 금방 매진돼서 연말에는 큰 공연장에서 2회 공연하거든요. 오랜만에 부산 공연도 잡혀 있고요. 내년은 플라워 20주년이라 좀 더 활동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대학로를 비롯한 뮤지컬 무대에서는 또 뵙기 힘들어지는 건가요?
“사실 회사 입장에서는 뮤지컬 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스케줄 잡기도 힘들고 하니까. <6시 퇴근>은 <투모로우 모닝>을 같이 했던 김경선 배우가 추천하면서도 ‘오빠, 돈은 다른 데서 벌어!’라고 했으니까요(웃음). 뮤지컬은 제가 좋아서 고집하는 면이 있어요. 처음 시작할 때도 1년에 한 작품은 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내년에도 기회가 되면 작품은 하고 싶어요.”
그럼 언젠가 하고 싶은 작품이나 배역을 마지막으로 들어볼까요?
“글쎄요,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와르는 해보고 싶더라고요. 매력적인 캐릭터고 그 넘버가 정말 욕심나요. 그리고 제가 <모차르트 오페라 락>으로 데뷔했는데,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참여했던 작품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기회가 된다면 그 작품도 다시 해보고 싶고, 저한테 맞는 작품, 맞는 역할은 모두 해보고 싶어요(웃음).”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soo56184
2018.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