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란의 눈꼬리 : 더 자주 휘어지는 게 보고 싶은
라미란이 대중의 레이더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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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주말사용설명서> 제작발표회에서 라미란은 말했다. 친구인 김숙이 같이 출연한다고 하니까 참여했지, 사실 매 촬영마다 하차를 고민한다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주말을 즐겁게 보낸다는 핑계로 밖에 나가서 이런 저런 일을 벌이는 <주말사용설명서>는 잘 안 맞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가 주말에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보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허기를 느낀 그는 혼자 먹는 끼니임에도 정성 들여 김밥을 말고 낙지파스타를 뚝딱 차려내어 먹고, 창고 안에 모셔 둔 산더미 같은 캠핑 장비들을 혼자 척척 챙겨 좋은 볕에 텐트를 펼친다. 어쩌면 라미란에게 그건 정말 별 일이 아닌 건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이 얼마나 에너제틱한 사람인지, 그래서 자기 기준으로 아무 것도 안 하며 쉬는 게 남들이 보기엔 얼마나 활기차 보이는지 스스로 알지 못할 뿐.
 
라미란이 대중의 레이더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금자의 권총 손잡이에 붙일 장식품을 만들어 주는 은세공사 오수희로 출연하며 영화데뷔를 했지만, 그 뒤에도 그는 오랫동안 배역의 이름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단역을 오가야 했다. 옆집 아줌마 역, 중년 여선생 역, 미시 아줌마 역, 유 간호사 역…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그 이름이나 인생을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아줌마’라는 단어로 존재를 함축해버리는 수많은 중년 여성의 배역이 그를 거쳐갔다. 사람들이 그의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매치시키기 시작한 건 tvN <응답하라 1988>(2015)의 쌍문동 치타 라여사를 연기한 이후부터였고, 그제서야 라미란은 다시 이름이 제대로 주어진 배역들을 맡을 수 있게 됐다. 알고 보면 이렇게나 뜨거운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기까지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이 라미란 하나뿐일까? 저 길 위를 걸어가는 수많은 이들이, 이름을 잃어버린 채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가려진 이들이 사실은 얼마나 뜨거운 온도로 타오르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얼핏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3시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tvN <주말사용설명서>가 반가운 건 그래서다.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여성 연예인들에게 그간 하고 싶었지만 도전해 본 적 없었던 꿈에 도전해보라는 핑계를 걸고는 자기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웃고 떠드는 멤버들의 모습을 선보였던 것처럼, <주말사용설명서>는 주말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을 소개한다는 핑계로 웃고 떠드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혼자 있을 땐 좀처럼 무표정을 벗어나지 않던 라미란의 눈꼬리도, 멤버들과 카약을 타고 갯벌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순간이면 신라 얼굴무늬 수막새 기와처럼 휘어진다. 나는 라미란의 눈꼬리가 더 자주 휘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이 하는 일이 별로 없노라 말하며 너무나 많은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뚝딱뚝딱 해치우고 있는 세상의 많은 ‘아줌마’들이, 라미란의 휘어진 눈꼬리를 보며 자신이 얼마나 뜨거운 사람인지 새삼 실감했으면 좋겠다. 그가 친구들과 보낼 다음 주말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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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