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성별 상관없이 그림을 좋아하고 배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그림이 주는 위로와 행복이 크다는 얘기일 터. 그렇다면 그림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재미동포 화가 한순정이 펴낸 그림 에세이 『바람개비 정원』 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저자는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82세의 서양화가로 유화뿐 아니라 판화, 종이엮기, 종이접기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고 일러스트까지 섭렵했으며, 한국 현대사만큼이나 격동적인 개인사를 겪어냈다. 『바람개비 정원』 은 그러한 삶과 작품이 어우러진 ‘인생 전시회’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얼마 전 출간을 기념하여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실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에서 『바람개비 정원』 이란 책을 내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책 제목이기도 한 바람개비와 정원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지난해 남편의 유언대로 모국에 재를 뿌려주기 위해 16년 만에 귀국했다가, 저의 작품 파일을 본 친척의 권유로 책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림 그리듯 글을 쓰고, 글 쓰듯 그림을 그려”오면서 막연히 언젠가는 책으로 묶고 싶었는데, 이렇게 결실을 맺어 기쁩니다. 우리 세대에게 바람개비는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이자 ‘꿋꿋한 의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또 저는 어려서부터 화초 가꾸기를 좋아해서 미국 집에도 정원을 꾸며놓았고, 그곳에 제가 직접 만든 바람개비들을 장식했죠. 정원 가득한 바람개비와 꽃들이 함께 빙빙 돌아가는 광경을 보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거웠어요. 저의 종이엮기 작품에서도 이러한 ‘율동감’이 느껴진다고들 합니다.
유화_루이즈호수
6ㆍ25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화가의 꿈을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으셨나요?
전시에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나라도 가난했으니 어쩌면 미술 공부 자체가 사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화가’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저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술대에 진학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으나 남편만 공부하고 저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지요. 꽤 오랫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데다 아들을 낳은 뒤 ‘워킹맘’까지 되자 제 꿈과 점점 멀어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40대 후반에 다시 판화 공부를 시작했고 꾸준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생계를 위해 상업 미술을 접했기 때문에 그만큼 시야도 넓어진 셈이지요.
이 책을 보면 유화, 판화, 종이엮기, 종이접기 등 매우 다양한 작품이 나옵니다. 여러 분야를 섭렵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늘 새로운 것을 찾으라”는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늘 새로운 작업에 도전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기질적으로 호기심 많고 일 욕심도 많다 보니 드로잉과 유화로 시작해서, 한국미술사에 대한 관심은 ‘전통 탈’ 같은 민속공예로 발전하고, 재미삼아 배운 종이접기에도 점점 아이디어를 보태는 식이죠. 또 종이엮기 작품은 바구니 짜듯 종이를 교차시켜 만드는데, 이것도 제가 다작을 하다 보니 나온 결과물입니다. 그리다 망친 수채화, 수북이 쌓인 판화들을 활용해서 발전시킨 것이니까요. 한 우물을 파지는 못했지만, 대신 할 일이 많아서 지루할 틈이 없답니다.
유화_마지막한장
82세에도 현역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신데, 이처럼 뜨거운 ‘열정’을 유지하시는 비결이라면?
저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밤잠 못 이루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한 편입니다. 저 역시 노년에 남편이 머리를 다쳐 10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할 때는 힘들었습니다. 남편이 4차례나 큰 수술을 받는 동안 꼼짝없이 보호자 자리를 지켜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여의치 않을 때는 종이접기를 했습니다. 작업에 몰두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었다고 해서 미술 활동을 못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면이 많다고 봐요. 다만 작업을 계속하려면 건강해야 하는데, 다행히 저는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 서서 움직이며 작업하는 편이라 운동 효과도 얻고 있습니다.
종이접기_기수들
출간을 기념하여 60여 년 만에 모교에서 다시 개인전을 하셨습니다. 느낌이 어떠셨는지요?
처음 개인전을 열었을 때가 대학교 2학년, 한국 나이로 스무 살 때였죠. 그런데 이렇게 책을 출간하고 전시회까지 열게 되어 꿈만 같습니다. 사실 매일 출근하듯 전시장에 나와 앉아 있어야 돼서 피곤하긴 했지만 덕분에 선물도 받았어요. 까마득한 후배들이 전시장을 방문하여 제 작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더욱이 “대선배님, 존경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또 미국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이 깜짝 방문도 해주었구요. 여러모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종이엮기_자화상
1960년대 초 미국 이민 1세로서 바라보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 책에도 나오다시피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 음식이 귀해서 등심 스테이크 한 조각과 명란젓 두 쪽의 가격이 같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이야 완전히 달라졌죠.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니까요. 한데 정작 우리 한국인들은 자국의 문화와 역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미국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홍산문화’ 등 우리 한민족의 고대 문화와 역사에도 좀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지난해부터 홍산문화 출토품을 소재로 한 판화 작품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종이엮기_춤추는나무들
이제 다시 모국을 떠나 미국으로 복귀하시는데,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림과 글이 함께하는 일상을 이어가겠지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제 나름의 작업 노하우가 담긴 종이엮기, 종이접기 과정을 동영상으로 남겨보고 싶습니다. 요즘 세대한테는 긴 설명보다 한 번의 영상이 더 효과적일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국의 팬들과 소통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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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개비 정원한순정 저 | 오르골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된 고령사회와 노년의 삶. 이 책의 저자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통해 ‘그림(꿈)과 함께라면 노년의 삶도 나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